자기가 낳은 자식도 구타하는 세태···’아동학대 징후’ 5가지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회 명예회장] 작년 12월12일 한 아이가 빌라 2층 세탁실 작은 창문에서 머리를 내밀었다. 그보다 더 작을지도 모르는 몸을 구겨 빠져나와, 벽에 붙은 가스관에 매달린 지 몇 분. 땅에 닿은 발에 신발은 없었다. 무릎까지도 안 오는 바지를 입고 한겨울 골목을 걷던 소녀의 머리에 떠오른 것은 무엇일까?
골목 모퉁이 슈퍼마켓 앞에서 발길이 멈췄다. 가죽만 남은 몰골로 제 몸집만 한 바구니를 든 아이는 꿈에서나 먹던 빵이며 과자들을 집어 담았다. 가득 넘칠 정도로 먹을 것을 쌓은 노란 바구니를 두 손으로 집어 들더니 휘청거리던 아이. 놀라 달려온 가게 주인이 깔아 준 박스 위에 주저앉아 뼈만 남은 손가락으로 과자 포장을 벗겨내고, 눈길도 돌리지 않고 입으로 가져갔다.
소녀가 2년 동안 겪은 끔찍한 학대는 그렇게 세상에 드러났다. 슈퍼 바닥에 앉아 과자 까먹는 아이는 나이 11살. 키 120cm, 몸무게 16kg이었다. 구조 당시 아이의 몸무게 16kg은 4살 여아 수준이다.
경찰 조사에서 이 아이는 감금이 시작된 2년 전부터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아버지가 온종일 게임만 하다 일주일 넘게 밥을 주지 않은 적도 있다. 배가 고픈 나머지 남은 음식을 찾아 먹으면 아무 음식이나 먹는다며 아버지에게 심한 폭행을 당했다.
폭행은 일상적이었다. 쇠파이프로 맞기까지 했다. 구조된 이 어린이의 갈비뼈엔 금이 가 있었고 팔과 다리 곳곳에도 멍이 든 상태였다. 잔인한 학대에도 이 어린이는 집 밖으로 탈출하려는 시도를 감히 하지 못했던 것도 실패했을 때 찾아올 폭행이 두렵기 때문이었다.
비극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더욱 끔찍한 사실은 소녀가 당한 일들이 아동 학대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지난해 일어난 아동학대 가운데 82%는 이번 사건처럼 가해자가 부모였다. 또 학대의 86%가 피해 아동이 사는 가정에서 벌어졌다. 가장 의지해야 할 사람에게, 가장 안전해야 할 가정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동 학대의 가장 큰 비극인 것이다.
이같은 어린이 학대 범죄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에서 1만27건의 아동학대 사건이 일어났다. 2004년 3891건보다 2.5배 넘게 높은 수치다. 소풍 가고 싶다던 딸을 마구 때려 숨지게 한 ‘울산 계모’ 사건이나 8살 의붓딸을 폭행해 숨지게 한 뒤 다른 딸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 한 ‘칠곡 계모’ 사건 등 엽기적인 학대 사건이 최근 들어 잇따르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이와는 반대로 남의 아기를 기르는 데서 보람과 기쁨을 누리는 사람도 있다. 대한사회복지회는 지난달 17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부페 웨딩홀에서 ‘위탁모의 날’ 행사를 개최했다. 150여명의 위탁부모와 100여명의 아기가 한자리에 모였다.
서울 중랑구 면목동 김영분(53)씨는 위탁모가 된 지 벌써 9년째다. 그녀는 말한다. “나를 엄마라고 부르는데…아기가 커서 ‘엄마! 아빠!’라고 부르는데…다 키워서 입양을 보낼 때가 가장 무섭다”고 했다. 쌓인 정을 떼내는 것만큼 가혹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아이입양을 보낼 때 어떤 집으로 가는지 꼼꼼하게 점검하고 점검한다고 한다. 그나마 마음에 위안을 삼기 위해서다.
김씨는 “이별이 예정된 아이를 키우다 보니 보낼 때마다 매번 지독하리만큼 서운함을 느낀다”면서 “입양할 생각도 가끔 했지만 교육의 벽에 가로막혔다”고 말한다. “교육비 문제만 해결된다면 오갈 곳 없는 아이들을 더 많이 가정으로 돌려보낼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게 그의 호소다.
25년차 위탁모 김계숙(63)씨는 “아이와 이별할 때마다 다시는 위탁받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도 사무치는 ‘마음앓이’를 달래기 위해 다시 아기를 맡아 키운다. 위탁받아 키운 아이만 200명이 넘는다.
지난해 자신이 키워 입양 보냈던 동민(22·가명)이와 동준(20·가명)이를 미국에서 만났다. 반가움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미국인 가정에서 서툴게나마 한국말을 하는 모습이 대견하기도 했지만 마음이 몹시 아팠다고 한다.
위탁모 신명숙씨는 5년 전 미국으로 입양해 보낸 은석(9·가명)이를 최근 직접 만난 이야기를 들려준다. 4년 동안 키운 아이를 떠나보냈을 때가 위탁모로서 느낀 아픔이 말도 못한다고 울먹인다. 은석이는 신씨를 또렷이 기억했다고 한다. 은석이와 만났을 때, 은석이의 어릴 적 사진을 내보이자 양부모와 은석이와 신씨 모두 울었다. 신씨는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안 될 만큼 기쁜 만남이었다”고 했다.
세상에 남의 아기도 제 자식처럼 기르는데 어찌하여 자기가 낳은 자식을 학대할 수 있는 것인지? 우리 사회에서 어린이 학대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 비극을 막는 길은 우리가 적극적으로 아동학대 신고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국민들의 지속적인 감시와 신고가 뒤따라야 한다.
어떤 경우에 학대를 의심해 신고를 해야 하는지는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공지하고 있는 몇 가지 징후를 참고할 만하다.
① 아동의 울음소리, 비명, 신음소리가 계속되는 경우
② 아동의 상처에 대한 보호자의 설명이 모순되는 경우
③ 계절에 맞지 않거나 깨끗하지 않은 옷을 계속 입고 다니는 경우
④ 뚜렷한 이유 없이 학교에 지각이나 결석이 잦은 경우
⑤ 나이에 맞지 않은 성적 행동을 보이는 경우
이같은 상황이나 학대를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을 보게 되면 112로 신고하면 된다. 우리가 수만 생을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서로 부모자식 간으로 만날 수도 있다. 만약 우리가 학대했던 상극의 인연을 만나게 된다면 그 상극의 인연이 끊어질 날이 없을 것이다. 악연도 선연도 내가 짓는 것이다. 선연을 지어야 영원한 복락을 누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