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김영하 목사 ‘하늘을 담는 사람들’의 사부곡(思婦曲)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회 명예회장] 요즈음 내가 옮겨준 감기 때문에 심한 기침을 하는 집 사람을 보니까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저렇게 일구월심(日久月心)으로 오로지 자신의 안위(安危)는 잊은 채 못난 남편을 위하다가 허망하게 가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과 회한이 구름처럼 일었기 때문이다.
당송 팔대가의 한 사람이었던 소동파 아내 왕불(王弗)은 재색을 겸비한 여인이었다. 내조에 살뜰했으며, 시서(詩書)를 익혀 지적인 소통까지 가능했으니 사랑스러운 아내로 인한 동파의 행복감은 각별했다. 그러나 왕불은 동파와 부부의 인연을 맺은 지 11년 만에 세상을 떠난다. 관직에 나가 객지생활을 한 것을 제외하면 함께한 세월이라야 고작 4년 남짓했다.
동파의 슬픔은 곡진(曲盡)했다. 책을 읽을 때도 아내의 자태가 떠올랐고, 일을 처리할 때도 아내의 목소리가 귓전을 맴돌았다. 황망히 가버린 아내를 생각하며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았다. 동파는 아내의 무덤가에 3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아내가 죽은 뒤 10년 후 꿈에서 보고는 단숨에 일어나 시 한 구절을 적었다. “서로 바라보며 그저 말이 없고, 오로지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네.”(相顧無言 惟有淚千行)
조선 후기의 대학자 추사(秋史) 김정희도 아내를 여읜 슬픔을 ‘도망’(悼亡)이란 시에 담았다. 추사는 여기서 “다음 세상에서는 남편과 아내의 자리를 바꿔 달라”고 기원했다. “내가 죽고 그대가 살아 천 리 멀어지면, 내 이 슬픔을 알게 될 것”이라는 울먹임이다. 자신의 유배 시절, 남편도 없는 집안의 대소사를 건사하느라 고생만 하다가 떠나는 아내의 임종도 지키지 못한 무력감과 자책감이 절절히 배어 있다.
조선시대 선비 임재당의 도망시(悼亡詩) ‘나 죽어서 당신 만나면 이 슬픔 그치겠지요’란 사부곡(思婦曲)이 있다. 약 300년 전 전남 보성에서 살았던 선비 임재당이 남긴 <갑진일록>에 있다. 임재당이 먼저 세상을 뜬 아내 풍산 홍씨를 그리는 애틋한 마음을 담은 일기 형식의 한시 구절이 가슴을 에인다.
“책상 위에 농 한 짝, 시렁에 놓인 함/ 시집오는 그날 함께 가져온 것/ 함과 농 그대로이나 주인이 없으니…” 유교문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사대부나 선비의 입장에서 애처(愛妻)의 사연을 표현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망막에 여울진 사부곡을 그렇게라도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문자 향(香)과 예술성 짙은 선비의 절절한 심사가 아니었을까?
김영하 목사님이 쓴 책 <하늘을 담는 사람들> 속에 나오는 감동스러운 사부곡 이야기다.
86세 할아버지는 아침마다 일찍 일어납니다. 일어나 손수 수프를 만듭니다. 그걸 들고 20 km 떨어진 아내 묘(墓)를 매일 아침 찾아갑니다. 바이올린도 가지고 갑니다. 수프를 아내 묘 앞에 놓고 바이올린 연주를 하며 묘를 어루만집니다.
그리고 아내를 목메어 부릅니다. 그리고 돌아옵니다. 이렇게 56살부터 30년간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유를 물었습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날 때 그렇게 하여 주기로 약속하였기 때문이지요.”
이 할아버지는 한번 한다고 한 것은 죽기까지 지키겠다고 말합니다. 86세가 되었어도 그렇게 합니다. 아내를 위한 사부곡이 그렇게 애달프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건강의 비결이 되고, 슬픔을 이기는 길이 되었습니다.
세계적으로 사진을 중심으로 기사를 작성하는 잡지가 둘 있다. <National Geographic>과 <Life>다. 얼마 전에 라이프지에 실린 사진이 한 장 있다. 공항 대합실에 아주 가난하게 보이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앉아서 비스킷을 먹는 장면이다.
가난하기에 비싼 음식 대신 비스킷과 차를 한잔 주문했다. 그리고 비스킷 반을 잘라 할아버지가 먹었다. 그리고 틀니를 빼어 닦아서 할머니에게 주었다. 할머니가 그 틀니를 끼고 나머지 반을 먹는 장면의 사진이다.
너무나 가난하여 따로따로 틀니를 하지 못 하고 하나를 가지고 교대로 사용하는 장면이다. 비스킷도 하나, 차도 한 잔, 틀니도 한 개, 몸도 하나, 생각도 하나, 모두가 하나다. 이런 뜨거운 사랑으로 살다가 어느 한 쪽이 먼저 가면 그 슬픔 어떻게 견딜까?
옛날 중국의 장자(莊子)에 얽힌 이야기다. 장자가 부인의 애정을 시험하기 위하여 둔갑술(遁甲術)로 부인을 희롱하려 하였다. 그 시험에 속아 잠시 외간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겼던 부인이 남편의 얼굴을 더 이상 볼 면목이 없어 날이 밝을 무렵 부엌 천정에 줄을 매고 물동이를 밟고 올라가서 목을 매달아 목숨을 끊었다.
날이 밝으면서 조문객이 하나 둘 찾아와 장자에게 부인이 세상을 떠나서 얼마나 애통하냐고 인사를 하자 장자는 물동이를 두드리며 울었다. 그 후부터는 상처(喪妻)한 사람에게는 물동이를 두드리면서 아픔을 달랬다 하여 “고분지통(鼓盆之痛)에 얼마나 당혹(當惑)하십니까?”라는 인사말을 하였다고 한다.
“여보, 걱정 마! 내가 아프더라도 당신만큼은 끝까지 내가 책임 질 꺼야!”라는 나의 아내 정타원(正陀圓)은 이 말에 책임지려는 듯 잘 걷지도 못하는 못난 남편의 지팡이 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아내보다는 내가 먼저 가야 할 텐데, 그런 의미에서라도 제발 아프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
“여보! 당신과 함께 걸어온 수십 년 세월 당신은 나의 유일한 길이었소. 여보, 미안하오. 그리고 힘내시구려! 아프지 마오! 그래야 당신 품에 안겨 내가 마음 놓고 열반의 길을 떠날 수 있지 않겠소? 그때가 언제일지 모르지만 내가 먼저 가면 장자처럼 물동이나 두드리며 사부곡(思夫曲)이나 한 곡조 불러 주시구려!”
“내생에는 반드시 당신의 지팡이가 되고 안경이 되어 이생에서 못 다한 ‘사부곡’이나 실컷 불러 당신의 사랑에 보답하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