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엔 시사주간지 리뷰 12월 첫째주] ‘박대통령 시위대 IS 발언’ ‘YS 서거’ ‘응답하라 1988’

[아시아엔=정용인 <주간경향> 기자] 12월 첫째 주 시사주간지 리뷰입니다. 이번 주 시사주간지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이슈는 ‘YS 서거’와 ‘대통령의 IS 폭력시위대 발언 후폭풍’ 그리고 ‘응답하라 1988’이었습니다. 커버스토리는 6개 시사주간지 모두 엇갈렸습니다. ‘시사IN’이 ‘굿바이 YS’라는 이름으로 YS서거를 다뤘고, ‘주간조선’은 1000억의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1억 이상 기부자가 참여하는 아너소사이어티를 커버스토리로 다뤘습니다. ‘주간경향’은 손해배상청구 소송으로 집회?시위의 자유를 옥죄는 경찰의 문제를 다뤘습니다. ‘시사저널’은 비트코인 이후 난립한 유사 가상화폐 신종사기를, ‘주간동아’는 네이버 중고나라 운영자가 설립한 법인을 계기로 인터넷커뮤니티의 영리화 무제를, ‘한겨레21’은 터키에서 독일까지 2000km 난민루트 종단 르포를 표지 기사로 삼았습니다.

1. YS서거부터 보겠습니다. YS의 인생역정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는 앞으로도 역사에서 그가 호명되어 나올 때마다 다를 수 있겠죠. ‘시사IN’이 “굿바이 YS”라는 표제로 커버스토리로 다루고 있지만 YS기획 중 눈이 가는 기사는 ‘시사저널’의 기획입니다. 1980년 5월 17일 밤, 시사저널 김현일 대기자(당시 중앙일보 기자)는 이미 수경사 군인들이 짓밟은 동교동 DJ저택을 빠져나와 상도동으로 갑니다. 상도동 집에는 YS 내외와 홍인길?장학로 비서 이외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김 기자가 “이제 어떻게 하실…”라고 묻자 침묵하던 YS는 “내(가) 이긴다”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그날 밤부터 YS의 가택연금이 시작됩니다. YS서거 후 화제가 된 “나를 감금할 수는 있어도 내가 걸으려는 민주화의 길, 내의 양심과 마음은 전두환이 뺐을 수 없어.”하는 영상이 이 때 찍힌 것이지요. 김 기자의 회고에 따르면 이 시기, YS의 유명한 ‘대도무문(大道無門)’ 붓글씨는 이전과 경지가 다르다고 합니다. 기사에 따르면 당시 YS는 붓글씨를 써서 주위에 나눠줬다고 하는데, 수십 년 지나면 저 글씨는 진품명품 같은 코너에서 보게 되는 걸까요.

2. 계속 ‘시사저널’입니다. “우리가 국장을 한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우리를 지지하겠어?” MB의 말입니다. 그 사람들은 야당지지자들을 지칭하는 겁니다. 역시 이 잡지가 전하는 DJ 현충원 국장 비화(?話)입니다. MB 김두우 비서관의 회고를 담았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 DJ가 MB정부를 민간독재정권이라고 맹비난하자 청와대 기류가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DJ 상태가 위중해지자 최규하?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국민장으로 할 것이냐, 아니면 국장으로 할 것이냐를 두고 청와대 수석회의에서 설전이 벌어졌는데, 국장으로 결정하는데 MB의 결심이 있었고, YS의 결단이 있었다는 겁니다. 8월 10일, YS는 DJ가 입원해 있던 신촌세브란스 병원에 문병을 갑니다. 서거 8일 전입니다. 문병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기자들이 “두 분이 화해한 것으로 봐도 되느냐”고 질문하자 YS는 “그렇게 봐도 된다”고 답합니다. MBC 라디오 드라마 ‘격동30년’을 집필해온 다큐작가 이호씨의 기고입니다. 이 잡지는 1985년 11월 10일, 정보사 북파공작원 출신인사들이 YS의 상도동 자택에 침입, 금고를 털었던 사건도 전하고 있습니다. “YS의 정치자금 리스트 확보가 목적이었다”고 이 잡지는 전합니다. 역시 80년대 당시에는 보도통제로 언론에 나오지 않았던 이야기입니다.

3. 지난해 11월, 경찰청은 ‘시위현장에서 당당한 법집행을 하는’ 경비3계가 신설됩니다. “주요 집회?시위 현장에 진출해 지휘관 보좌 및 경찰 조치에 대한 이의제기 등 발생 시 현장에서 대변인 역할 수행”이 이 조직의 목적이라고 합니다. 다음으로 만들어진 것이 ‘민사소송 TF팀’입니다. 변호사 자격증이 있는 경찰관 15명으로 구성됐습니다. 파손된 차량수리비, 경찰관 치료비를 추산해 집회를 주최한 단체와 시위 주도자에게 물리는 것이 주 임무입니다. “살림살이 규모가 얼마 되지 않는 시민단체에 적게는 몇 천 만 원 많게는 몇 억 원씩 물어내라고 하면 작은 단체들은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 ‘주간경향’이 전한 우려입니다. 경찰의 손해배상소송은 백전백승입니다. 정확히 지난 10년간 총 27건의 소송이 진행되었고, 전체 소송액 23억 3458만원 중 승소해 배상받은 금액은 3억 6587만원입니다. 미국산쇠고기 반대 집회 소송에서 패한 경찰은 새로운 논리를 만들어내는데, 집회가 다양한 단체와 대중이 모인 것이 아니라 ‘○○○사단’과 같은 조직화된 집단이 주최한 것이라는 논리입니다. 예를 들어 “(지난 세월호 집회 때) ‘박래군 사단’이 모든 의사결정권을 확보했고, 정부?여당에 타격을 줌으로써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 진보정권 수립을 최종목표로 하고 있다”와 같은 공동불법행동 논리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겁니다. 개인의 머릿속을 들여다봐 법 위반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현대판 관심법(觀心法)인 국가보안법도 아니고 이게 말이 되는 논리일까요. 외국의 경우 국가가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경우 ‘전략적 봉쇄 소송’, 즉, 피해보상 목적이 아니라 소송제기로 입을 막기 위한 것으로 판단해 각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이 잡지는 전합니다.

4. “민주국가의 행정부 수반은 보통 능숙한 다원주의자다. (…) 그래서 정권을 잡으려는 사람은 여러 블록의 지지를 통합해내는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박근혜식 도발 통치는 독특한 예외다. 박 대통령은 다원적인 지지 기반을 유지하는데 거의 과심을 두지 않는다. 대신 반대 블록에서 결집된 강경파를 골라 도발한다.” 누리꾼에게 “믿고 보는” 이라는 수식어를 얻은 ‘시사IN’ 천관율 기자의 분석기사입니다. 이번 분석기사도 역대급입니다. 개인적으로 추천합니다.

‘민주화 이후’ 민주화 단일 전선이 어려운 국면을 비집고 들어가는 통치술을 박근혜 대통령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고 기사는 지적합니다. “이런 국면에서 반대 블록의 ‘전면전’이 좋은 대응전략이 되지는 않는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이번 주말 2차 민중총궐기에서 지휘부가 ‘차벽 돌파’를 목표로 설정한다면 또다시 ‘당한다’는 결론입니다. 그렇다면 대응전략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의 발언에 결정적 힌트가 숨어있습니다. “이런 권력의 최대 약점은 농담하는 사람을 다루지 못한다는 점이다. 동유럽 사회주의권 붕괴를 다룬 연구를 보면, 권력은 증오받을 때보다 조롱받을 때가 더 위험한 때다.”

5. 12월 5일 집회와 관련 ‘시사IN’에 실린 방송인 김제동의 ‘긴급제언’도 일독을 권합니다. 김제동씨의 말을 ‘시사IN’ 고재열 기자가 정리한 내용입니다. 간단히 요약하겠습니다. “우리의 적은 저 앞에 서 있는 경찰들이 아닙니다. 우리의 분노는 차벽 그 뒤에 숨어있는 분들에게 전달할 분노입니다. 경찰들에게 전해야 하는 것은 분노가 아니라 우리의 따뜻한 마음입니다. 자식을 의무경찰로 보낸 부모님, 전?의경 출신이 후배에게 보내는 편지 등을 낭독할 수 있는 발언권을 줘야 합니다. 민주노총, 전농에게도 부탁합니다. 12월 5일에는 깃발을 내리고 사람이 보이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민중총궐기 대회’를 하더라도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대통령님 우리 할 말 있어요’라는 제목의 발언대를 만들면 어떻겠습니까. 복면 안 쓸테니 겁내지 말라고, 우리 IS 아니라고. 대통령님께 이야기 좀 하자고 말하게 하고 ‘복면 이야기왕’을 한번 선발해보면 어떨까요. 부드럽게 말한다고 말의 힘이 약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더 힘이 셀 수도 있습니다.”

6. 다른 커버스토리 기사도 보겠습니다. 한겨레21의 유럽난민 루트 2천km 기획은 터키에서 시작해 그리스, 마케도니아, 세르비아…를 거쳐 베를린에 이르는 길을 찾아 떠나는 여행입니다. 3주간 진행되는 기획입니다. 이번 주 커버스토리로 소개되었지만, 본격적인 연재는 새해부터 4~5회에 걸쳐 연재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기사에 따르면 유럽에서 ‘난민의 역사’는 오래되었습니다. 1648년, 베스트팔렌 평화조약으로 독일 30년 전쟁이 종지부를 찍으면서 신성로마제국이 300개의 연방으로 쪼개지면서입니다. 베스트팔렌 조약은 역설적으로 근대국민국가의 모델을 만들어낸 경우입니다. 결국 근대국민국가는 태동기부터 난민과 함께 태어난 셈이지요.

난민의 역사에서 가장 큰 사건은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러시아 귀족 100만 명의 이주, 그리고 독일에서 1933년 나치당의 집권입니다. 1956년 헝가리 사태 이후에도 약 20만 명의 헝가리 난민이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난민의 형성에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은 1991년 소련해체?냉전체제의 붕괴입니다. 러시아 연방에서 독립한 세력들, 민족?종교 갈등으로 인한 전쟁이 뿌리입니다. 아프리카나 중동, 동남아시아의 난민 역시 유럽의 식민지배와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한겨레21’의 이번 기사는 일종의 개괄적 정리에 해당합니다. 새해 연재분부터 생생한 현장 이야기를 담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잡지는 카카오의 다음포털 ‘스토리펀딩’으로 독자의 후원금도 모은다고 합니다. 후원금은 세이브더칠드런을 통해서 중동 난민 어린이에게 전달된다고 합니다.

7. ‘주간조선’의 커버기획은 1억 원 이상 개인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아이어티’를 다루고 있습니다. 누적 금액 1000억원을 돌파했습니다. 아너 소사이어티가 생긴지 8년 만입니다. 기부자 규모만 보더라도 미국의 토크빌 소사이어티에 이은 2위라고 합니다. “한국이 기부에 인색한 나라”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그게 이제는 편견이 되었나봅니다. 잡지가 소개하는 아너 소사이어티 자료에 따르면 기부액 상위 1위는 익명의 재일동포입니다. “저소득층 노인을 위해 써달라”고 맡겨왔다고 합니다. 2위는 최신원 SKC 회장으로 약 28억 원입니다. 3위는 정몽준 전 새누리당 대표로 약 20억 원 규모입니다. 당초 사회복지공동모금회(‘사랑의 열매’)에 아너 소사이어티가 생겼던 2007년 당시만 하더라도 성과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고 합니다. 잡지에 따르면 지난 2012년부터 급물살을 탔다고 합니다. 지난해 경비원 김방락씨의 가입이 다양한 계층의 회원을 끌어들이는 기폭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11월 24일 현재 아너소사이어티 모임은 935명인데, 지난해 12월 70명이 한꺼번에 가입한 추세를 보면 올해 안에 1000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이 잡지는 전합니다. 935명 중에 익명 회원이 123명인데, 왜 익명으로 기부할까요. 잡지에 따르면 “주위의 시선 때문”이라고 합니다. 가족이나 친지, 교회나 직장 등에서 ‘그럴 돈이 있으면 나(우리)나 주지’라는 반응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익명의 기부자가 줄어드는 것이 기부문화 성숙의 척도라고 이 잡지는 덧붙입니다.

8. ‘주간동아’의 표지엔 ‘수상한 커뮤니티’라는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기사의 메인은 1400만 회원이 참여하고 있는 국내 최대 커뮤니티 네이버 ‘중고나라’의 행보입니다. 중고나라의 운영진들은 지난해 외부 전문가들과 손잡고 서비스 개선과 모바일 앱 출시를 위해 벤처회사 ‘큐딜리온’을 설립했습니다. 이 회사가 40억 규모 투자를 유치받았다는 것이 기사가 전하는 의혹의 시작입니다. 사실 모순적으로 들리겠지만 ‘비영리의 수익모델’에 대한 고민은 대부분의 대형 커뮤니티의 고민입니다. 내홍도 겪는 일이고요. 잡지가 제기하는 ‘비영리 인터넷 중고물품 장터’의 성격으로 만들어진 커뮤니티가 어떻게 벤처기업 소유가 될 수 있느냐’ 는 의문은 상식적으로 제기할 수 있는 질문이긴 합니다. 기사에서 조금 아쉬운 것은 취재의 깊이입니다. 의문은 가질 수 있지만, 법적으로 논란이 안되는 것, 네이버와 중고나라의 관계설정 등에 대한 부분에서 중고나라 측이나 네이버 측은 ‘준비된 답변’을 하는데 비해 취재는 단순 의혹 제기입니다. 뒤에 붙어 있는 커뮤니티 매매와 양도 같은 은밀한 거래 사례 기획도 실제 실태 보다는 “적발이 쉽지 않다”는 포털 관계자의 말만 인용이 되어 있는 듯 해 아쉬움이 남는 기획입니다.

9. 일반 기사를 보겠습니다. ‘독점강화 종속심화 테제’. 기억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어느 정도 연륜이 있는 분이겠죠. 흔히 NL/PD그룹으로 양분되어 있었던 한국의 사회운동에서 PD그룹의 핵심명제였습니다. 논쟁의 계기가 되었던 것이 1985년 창비에 실렸던 박현채-이대근 논쟁입니다. 한국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국독자 명제를 제시했던 박현채 선생은 지난 1995년에 타계했고, 논쟁의 또 다른 주역으로 ‘주변부 자본주의론’을 제기했던 이대근 교수는 그 뒤 뉴라이트의 길을 갔습니다. PD그룹의 이른바 반제반독점 신식국독자론 정립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윤소영 교수가 논쟁 30년을 맞이하여 입을 열었습니다. 사실 윤 교수가 입을 다물어왔던 것은 아니죠. “기자는 기사로 말한다”는 말처럼 과천연구실에 은둔(?)하면서 꾸준히 책으로 자신의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인권, 금융위기, 기존의 사회과학, 역사, 문학 비판 등을 통해 꾸준히 이론적 입장을 다듬어온 윤 교수가 이번에는 한국개발연구원(KDI)와 하버드대학교의 한국 현대 경제사 연구나 재벌 순환출자구조에 대한 학계의 비판적 연구, 대만경제와 낙성대 학파와 팔레학파 등의 연구를 개괄하면서 자신이 정립과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독점강화 종속심화, 신식국독자론의 문제의식과 테제들을 재검토했습니다. ‘주간경향’에 실린 인터뷰는 1980년대 사회성격논쟁 당시의 뒷이야기에서부터 최근의 금융위기에 이르는 윤 교수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쉽지 않은 기회이기도 합니다. 이 기사의 박스기사에 보면 NL진영의 ‘식반자 이론’의 유래와 실체에 대한 그동안 알려져 있지 않는 이야기도 덧붙여 있습니다.

10. 응팔, 당연 화제지요. 응답하라 1988의 선풍적 인기는 시사주간지도 비껴갈 수 없는 소재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도 제 세대 또래의 이야기라 유심히 보고 있는 드라마라 이번 주 시사주간지 대부분에 실린 응팔 관련 기획들에 눈이 갔습니다. ‘한겨레21’의 “응팔이 미처 다루지 못한 1988년 4월의 김영삼”기획은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기획이었습니다. YS의 부정적 유산인 망국적인 지역구도가 처음 잉태된 것이 그해 4월 치러진 총선에서 (YS로선) 충격적인 통일민주당의 3위 기록이었으니까요. 처음으로 ‘여소야대’라는 국면이 만들어졌지만 YS로서는 탐탁치않았고, 그것이 보수대연합이라고 칭하는 민자당 탄생으로 이어졌습니다. 아이디어가 돋보인다는 것은 ‘응팔’의 인기를 업기 위한 제목이었지만 응팔 이야기가 아니라, YS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입니다. 눈여겨본 것은 ‘주간동아’의 응팔 기획입니다. “응답하라 1988 다시보자 운동권”이라는 제목으로 되어 있는데, 극중 보라가 “시위주동자임에도 훈방조치된 것은 리얼리티가 떨어진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글쎄요. 응팔을 보면 보라가 주동자 급인가요? 민정당사 점거농성에 참여했고, TV에 얼굴이 비쳤다고 해서 주동자가 되는 것은 아니죠. 보라가 읽고 있는 책들-‘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라던가,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같은 책은 당시를 회상해보면 ‘주동자급 2학년’(보라는 87학번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이 읽을 책이 아니죠. 당시 공안대책기구 식으로 분류하자면 주동자급이라기보다 핵심동조자급 정도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 리뷰 글은 ‘주간경향’ 정용인 기자가 작성해 ‘주간경향’ 페이스북에 등록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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