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 칼럼] 천경자 은관문화훈장 유감···”활화산처럼 뜨겁게 산 인생, 바람처럼 잘 가시오”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활화산처럼 뜨겁게 살다가 바람처럼 가다.” 천경자의 추모식에 바쳐진 글이다. 그녀의 예술인생을 이만큼 잘 요약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천경자는 91세까지 살았지만, 젊은 시절에는 에디뜨 피아프, 전혜린 같은 천재였다. 전남 고흥의 부호 집안에서 태어나 일본 유학을 했고, 일찍 선전(鮮展. 당시 국전)에 입선했다. 그의 색과 구도는 피카소, 샤갈과 같은 파격이었다. 한국 화단에서 이만한 재질과 열정을 가진 화가를 찾기는 앞으로도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천경자에 추서된 훈장이 금관문화훈장이 아니라 은관문화훈장이어서 의외다.
훈장을 추서하기 위해서는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그 전에 차관회의를 거쳐야 한다. 그 구성원 중 누구 한 명이라도 “천경자 화백에 2등급 문화훈장이라고요? 이것은 조수미에 2등급 문화훈장을 주는 것과 같은 것 아닌가요?”라고 이의를 제기하고, 누구 하나라도 재청했다면 심의가 다시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런 상식과 수준을 가진 사람이 그 중에 아무도 없었다는 말인가? 이것이 대한민국 정부의 수준인가! 매월 마지막 수요일은 문화의 날이라고 하는데 먼저 차관회의, 국무회의 구성원부터 문화의 기본부터 갖추어야 하겠다.
이런 결정이 이루어지게 되는 과정은 주무관과 사무관, 과장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들 중에 천경자의 비중을 아는 사람이 없었거나, 혹시 천경자에게 개인적 유감을 가진 사람이 있어 일부러 누락시켰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두 번째 가능성과 관련해서는 국립현대미술관에 걸린 천경자 작품-미인도-의 진품 여부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소동이 생각난다. 그때 천경자의 고집에 골치를 알아서 이번에 이렇게 보복을 하였는가? 이런 행패를 국 실장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는가? 참으로 한심한 관료들이다. 문체부의 곳곳을 꿰뚫고 있던 유진룡 장관이 새삼 아쉽다. 고시 출신이라고 해서 수준이 하나같지가 않다. 집안의 배경이 중요한 이유다.
예술가에게 작품은 자기 배에서 낳은 새끼와 같다. 자식을 몰라보는 어머니가 어디 있는가? 설사 문서증거가 있고 수십 수백의 증인이 있더라도 어머니가 내 새끼가 아니라는데 이를 반박할 논리가 어디 있겠는가? 혹시 치매에 다다르면 그런 착오도 있겠지만 당시 천경자는 그런 상태도 아니지 않았는가? 작가는 터치 하나로 직감한다. 화랑협회 화가들이 확인했다지만 그들은 이미 전설이 된 천경자보다는 눈앞의 관료들의 주장에 손을 들어주었을 가능성도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와 체육과 관광을 합친다? 문화관광부에 체육을 합친 것이 어느 정권인가 기억도 안 나지만 납득이 별로 안 간다. 하기야 별별 산하단체가 많아 관료들이 갑질하기는 좋다고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문화부장관은 앙드레 말로와 같은 최고의 지성인, 예술 경영자가 맡는다. 문화도, 체육도, 관광도 모두 한 부처가 담당해야할 만큼 업무가 방대하다. 정권 출범 초기에 부처를 줄여야 된다고 하니 인수위에서 칼질한 때문이다.
작은 일 같지만, 여기 하나에서도 정부의 수준과 행태가 곳곳에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