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화단 선도한 두 여류, 박래현과 천경자

박래현 ‘빛의 향연2’, 1972년작 <청작화랑 제공, 연합뉴스>

화가 박래현(朴崍賢, 평남 진남포 출생, 1920-1976)과 천경자(千鏡子, 전남 고흥 출생, 1924-2015)는 일본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 동창으로 박래현이 천경자의 1년 선배이다. 박래현은 1956년 제5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작품 ‘노점'(露店)으로 대통령상을 수상했으며, 천경자는 1955년 대한미협전에서 ‘정'(靜)으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박래현은 1976년 암으로 타계했으며, 천경자는 2015년 뇌출혈로 별세했다.

우향(雨鄕) 박래현은 근대 여성화가 첫 세대 작가로 동·서 미학을 아우르는 독창적인 세계를 일궈냈다. 박래현은 1950년대와 60년대 초에는 동양화의 평면성과 반추상성을 결합하는 독자적인 시도를 하였다. 그 후 1960년 중반 이후부터 완전한 추상화 단계에 들어섰다. 그리고 60년대말부터 1974년까지 미국 뉴욕에 머물며 판화와 타피스트리(tapestry, 여러 가지 색실로 그림을 짜 넣은 공예) 작업에 몰두하였다.

박래현은 6세 때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전라북도 군산으로 이사를 가서 군산보통학교를 졸업했다. 경성여자사범학교 졸업 후 보통학교 교사로 2년간 재직했으며 1940년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

박래현(왼쪽) 김기창 부부

1947년 운보(雲甫) 김기창(金基昶, 1913-2001) 화백과 결혼했으며, 1971년까지 총 12회 부부전(夫婦展)을 열었다. 1967년 상파울루비엔날레 출품을 계기로 남미, 미국 등을 여행했다. 1974년 신사임당상을 수상했다.

천경자(千鏡子, 본명 千玉子)는 일본 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현 도쿄여자미술대학)에서 유학하고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면서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일본 유학 후 귀국하여 1946년 모교인 전남여고 미술교사로 부임하여 학교 강당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자전적인 주제와 화려한 채색기법으로 독자적인 양식을 확립하였고 전통적인 한국화의 범주에 벗어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였다.

1949년 서울에서 개인전을 치르면서 장래가 촉망되는 여류화가라는 평가를 받았고 조선대학 미술과 강사로 임용되었다. 이 무렵 동생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과 삶의 역경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뱀(蛇)과 인골(人骨)을 소재로 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1951년 수십 마리의 뱀이 뒤엉킨 모습의 ‘생태(生態)’는 화단의 큰 주목을 받았다. 1954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임용되어 새로운 한국화를 모색해 나갔고 1963년 도쿄 개인전을 계기로 일본에도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천경자 ‘미인도’

천경자는 1969년 유럽과 남태평양을 여행, 1972년 베트남전 종군화가단 참여, 1974년 아프리카 여행 등 1990년까지 세계 각국을 여행하면서 이국적인 풍물화를 신문과 잡지에 연재하여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인 ‘미인도’를 둘러싸고 미술관과 진위 논란이 불거졌고, 이 사건을 계기로 천경자는 절필을 선언하고 1998년 미국 큰딸 집으로 이주했다.

천경자 화백 

미국으로 떠나기 전 1995년 호암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열었다. 1998년 서울시에 작품 93점을 기증하면서 서울시립미술관에 ‘천경자 상설전시실’이 설치되었다. 천경자는 1971년 서울시 문화상(예술부문), 1975년 3·1문화상(예술부문)을 받았다. 1983년에는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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