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도’에 ‘ㄴ’ 하나 더 붙는 ‘돈’···”도 깨달아야 제대로 된 돈 많이 번다”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회 명예회장] 도(道)와 돈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 필자가 처음 ‘맑고 밝고 훈훈한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덕화만발운동‘을 시작한다고 하니 사람들이 비웃지는 않았지만 혼자 떠들어봐야 그런 세상이 오겠느냐고 반문을 해왔다. 그렇다. 돈만 알고 메마르며 이 각박한 세상에 맑고 밝고 훈훈한 세상이 가당키나 한 일이겠나? 그러나 필자 한 사람이 실천하면 나 한 사람만큼, 열이 실천하면 열 사람만큼 세상이 살만해지지 않을까?
도는 진리의 깨달음을 말한다. 도와 돈은 아주 비슷한 글자다. ‘돈’은 ‘도’라는 글자를 먼저 써야 쓸 수 있다. 그래서 도를 이루고 나면 저절로 그 다음에 돈이 벌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돈과 전혀 관계가 없는 도라면 그 도는 쓸모 없기 때문이다.
도를 닦는 진정한 이유는 돈을 잘 벌고 잘 쓰기 위해서다. 이 돈을 잘 부려서 사람들이 맑고 밝고 훈훈한 세상에 살게 하기 위해서다. 흔히들 도와 돈은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다. 도인들은 애써 돈이나 물질에는 초연하려는 듯 행동한다. 그러나 중생들은 돈이라면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는 것이라며 때로는 돈에 환장하기도 한다.
도와 돈의 분리는 이판(理判)과 사판(事判)의 분리요, 성(聖)과 속(俗), 부자(富者)와 빈자(貧者) 등 모든 것을 이분법적으로 분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은 도를 실행하면 돈이 따라오는 법이다. 그래서 도가 산에서 세속으로 내려와 세속이 도판(道判)이 되는 세상이 와야 한다.
원불교 3대 종법사를 역임한 대산(大山) 김대거(金大擧) 종사의 ‘도와 돈’에 대한 법문이 있다.「“와 돈을 같이 알되 도를 더 알게 하며, 돈도 도로 알아 세계주의 실현에 큰 힘이 되도록 하자”는 말씀이다.
도와 돈은 니은(ㄴ) 자 하나 차이다, 그러니까 돈을 벌기 위해서는 먼저 도를 통하고 복(福)을 지으면 저절로 돈이 굴러들어온다. 그렇게 복덕(福德)이 구족하려면 이웃과 세상을 위한 보시(布施)의 공덕을 쌓아야 한다,
어느 산골의 외상값 이야기가 바로 이 도와 돈의 상관관계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관광객을 상대하며 살아가는 마을이 있었다. 그런데 메르스로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겼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여행객 한 사람이 와서 민박집에 방을 잡았고 20만원의 숙박료를 지불했다.
민박집 주인은 정육점으로 달려가서 그 동안 외상으로 밀려있던 고기값 20만원을 갚았다. 정육점 주인은 세탁소로 달려가서 그 동안 밀려있던 세탁비 20만원을 갚았다. 세탁소 주인은 맥주 집으로 달려가서 그 동안 외상으로 마신 맥주 값 20만원을 갚았다. 맥주집 주인은 민박집으로 달려가서 빌려 쓴 차용금 20만원을 갚았다.
돈이 순식간에 마을을 한 바퀴 돌고 돌아 다시 민박집 주인에게 돌아온 것이다. 그런데 여행객이 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20만원을 돌려받고 떠나 버렸다. 돈을 번 사람은 아무도 없고 돈을 쓴 사람도 없다. 그러나 마을에는 이제 빚진 사람이 아무도 없어졌고 맑고 밝고 훈훈한 동네가 됐다.
돈은 돌고 돌아야 돈이고, 구름은 흘러가야 구름이듯이 돈을 잘 써야 아름답게 보이는 법이다. 많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돈을 잘 쓰는 것’이다. 돈 잘 버는 방법을 알려준다고 하는 곳은 많으나 ‘돈을 잘 쓰는 법’을 알려주는 곳을 거의 없다. 돈 잘 쓰는 법을 모르니 애쓰고 번 돈을 ‘탕진’한다. 돈으로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돈으로 죄를 짓는다.
부처님은 우리들에게 분명하게 “돈을 벌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왜 “돈을 많이 벌라”며 무소유에 역습을 가하셨을까? <잡아함경>에 보면, “많은 재물을 얻으면 즐거이 스스로 쓰고, 부모를 공양하며 처자와 친척과 권속을 돌보며 종들을 가엾이 여겨 돕고 여러 벗들에게 보시하라. 그리고 때때로 사문이나 바라문에게 공양하라”고 설하셨다.
또한 “넓은 들판에 못이 있어 맑고 깨끗하고 시원해도 그것을 즐겨 쓰는 이가 없으면 이내 그대로 말라버리고 만다. 훌륭하고 값진 재물도 나쁜 이가 지니게 되면 자신도 즐겁게 쓰지 못하거니와 불쌍한 이들에게 유용하게 쓰이지도 못한다. 부질없이 스스로 괴롭게 모으기만 하고 그렇게 모았다가 허무하게 스스로 잃고 만다. 지혜로운 사람은 많은 재물을 얻으면 즐기면서 기분 좋게 잘 쓸 줄 알고, 가여운 이들을 위해 널리 보시해 공덕도 지으면서도 차곡차곡 더욱 알차게 번성해 나가리라.”
도를 깨쳐야 돈도 잘 벌 수 있다. 천하만사가 다 본말(本末)과 주종(主從)이 있다. 도를 아는 사람은 근본을 알아서 근본에 힘을 쓴다. 그럼 자연히 끝도 좋아진다. 그러나 도를 모르는 사람은 끝을 따라 끝에만 힘을 쓰기 때문에 근본이 자연 매(昧)하여 진다.
도를 깨친 사람은 주(主)를 알아서 주에 힘쓰기 때문에 종(從)도 자연히 좋아질 것이나 도를 모르는 사람은 종을 따라 종에만 힘쓰기 때문에 주도 자연 매하여 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