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정호승 시인의 ‘아버지의 나이’를 소개합니다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회 명예회장] 그렇게 보고 싶던 큰 딸애가 이달 말 1년 만에 잠시 귀국을 한다. 너무 바빠 겨우 3일간 머물다가 돌아간다고 하니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둘째 딸 애는 우리 아파트 같은 동에 산다. 자꾸 노쇠하고 있는 우리 부부의 만약을 위해서 지근거리에서 보살피기 위해서란다.
하루에 한번 이제 갓 돌 지난 손자 녀석이 온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간다. 그래도 그 재롱에 마냥 흐뭇한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우리네 늙은이들이 가장 행복해 하는 것은 아마도 부모마음 잘 알아주고 살펴주는 자식들의 효도가 아닐까 한다.
홀로 8남매를 키우신 어느 어머니의 칠순잔치가 있었다. 사회에서 제법 성공한 자식들 모두 칠순잔치 선물로 여러 가지를 가져왔다. 선물 대신 많은 돈을 주는 자식이 있는가 하면 비싼 금반지를 선물하는 자식도 있었다.
그런데 8남매 중 가장 가난하게 살고 있는 막내가 선물 대신에 닭찜 한 그릇을 손수 만들어 가져왔다. 자식들은 이상한 눈빛으로 막내를 쳐다보았다. 어머니는 평소에도 닭 알레르기가 있어서 닭을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값비싼 선물들을 제쳐두고 닭찜을 아주 맛있게 드셨다. 어머니는 가난하게 살면서도 자식들에게 좀 더 많이 먹이기 위해, 무척이나 좋아했던 닭찜을 안 드셨던 것이다. 막내는 이런 어머니의 마음을 가난하게 살다 보니 이해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마 부모님이 꼭 받고 싶은 선물을 준비한 막내는 지금쯤 더 없이 행복하지 않을까?
선물은 받는 사람이 기뻐할 때 주는 사람도 즐겁다. 부모님이 받고 싶은 선물은 사랑하는 자식들의 얼굴을 보는 것 그 자체로 충분할지도 모른다. 옛날 우리 어머니 생각이 난다. 6남매를 먹여 살리려 보니 보리개떡을 쪄놓고 당신은 보리개떡을 못 먹는다고 외면하시던 그 모습이 떠오른다.
정호승 시인의 ‘아버지의 나이’라는 시가 가슴을 울린다.
나는 이제 나무에 기댈 줄 알게 되었다/ 나무에 기대어 흐느껴 울 줄 알게 되었다/ 나무의 그림자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 나무의 그림자가 될 줄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왜 나무 그늘을 찾아/ 지게를 내려놓고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셨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제 강물을 따라 흐를 줄도 알게 되었다/ 강물을 따라 흘러가다가/ 절벽을 휘감아 돌 때가/ 가장 찬란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해질 무렵/ 아버지가 왜 강가에 지게를 내려놓고/ 종아리를 씻고 돌아와/ 내 이름을 한 번씩 불러보셨는지 알게 되었다
이런 아버지의 심정을 자식들이 헤아릴 줄 알까? ‘주자 10회훈’(朱子十悔訓) 중에 ‘불효부모사후회’(不孝父母 死後悔)가 으뜸이다. 효(孝)라는 것을 몇 가지로 정해서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품안의 자식인 것처럼 살아 생전의 효도가 진정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므로 부모님 살아 계실 때 효도하지 아니하면 돌아가신 후에 반드시 후회하게 된다.
그러면 자식들로서 어떻게 하면 진정한 효도를 하는 것일까?
첫째, 사랑한다는 고백을 자주 하는 것이다.
아무리 들어도 싫증나지 않는 말은 사랑한다는 말이다. 사랑한다는 말처럼 달콤하고 따뜻한 말도 없다. 쑥스럽거든 카톡이라도 보내드리면 어떨까?
둘째, 늙음을 이해해야 한다.
어른은 한번 되고 아이는 두번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더구나 노인은 정답을 말하기보다 오답을 말하지 않기 위해 애를 쓰신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셋째, 웃음을 선물해 드리는 것이다.
보약을 지어 드리기보다 웃음을 한 보따리 선물하는 것이 최고다. 마음이 즐거운 부모는 항상 잔치를 하는 기분이다. 부모님에게 웃음의 잔칫상을 차려 드리는 것이 으뜸의 효다.
넷째, 용돈을 꼭 챙겨드리는 것이다.
유년기에는 좋은 부모가 있어야 한다. 청년기에는 실력과 예쁜 외모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중장년기에는 훌륭한 인격을 지녀야 한다. 그러나 노년에 필요한 것은 돈이다. 반드시 부모의 통장을 만들어 드리면 어떨까!
다섯째, 부모님에게도 일거리를 만들어 드리는 것이다.
나이 들수록 설 자리가 필요하다. 할 일이 없다는 것처럼 비참한 일도 없다. 컴퓨터를 놓아드리고 카페활동을 하시게 하면 치매도 예방된다. 생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과제를 찾아드리는 것이다.
여섯째, 이야기를 자주 해드리는 것이다.
쓸데없는 이야기라도 자주 해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을 건성으로 듣지 말고 진지하게 잘 들어드려야 한다. 노인네들이 가장 간절히 원하는 것은 말 상대다.
일곱째, 작은 일도 상의하고 문안인사를 잘 드리는 것이다.
사소한 일이라도 자주 의논을 드린다. 또한 일단 집 문을 나서면 안부를 묻고, 집에 들어서면 부모를 찾아 인사를 드린다.
여덟째, 가장 큰 효는 부모님의 방식을 인정해 드리는 일이다.
‘부모님 인생은 부모님의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내 방식대로 효도하려고 들면 안 된다. 마음 편히 해드리는 것이 가장 큰 효도다.
내 부모에게 효도를 하건만 세상에서는 나를 효자라고 칭송한다. 예로부터 충신은 효도하는 문중에서 구한다 했다. 만사만리(萬事萬理)의 근본인 이 몸을 낳아주신 분이 부모다. 그러므로 이보다 더 큰 은혜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