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시인 이기윤 아호가 ‘초정草井’에서 ‘반취半醉’로 바뀐 사연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회 명예회장] 엊그제 덕화만발에 ‘아호와 법호’를 올렸더니 그 반응이 뜨거웠다. 대개는 긍정적이었고 아무 것도 모르는 제게 아호를 지어달라는 청도 있었지만 비판과 충고, 가르침도 많았다. 예를 들어 이런 것들이다.

“아호에 용(龍)자를 쓰면 역적이나 다름없고, 만(滿)자는 자기스스로 가득 찬 사람이라는 표현이 되고, 덕(德)자를 쓰면 자기 스스로 덕이 높은 사람이 되며, 고(高)자를 쓰면 자기스스로 높은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어리석을 우(愚)자나 외로울 고(孤)자 작을 소(小)자나 작을 미(微)자나 산(山)이 아니라 언덕 애(厓) 자나 언덕 구(丘)자를 스스로 썼던 것입니다.”

‘덕화만발’ 카페의 ‘소설가 반취(半醉) 이기윤 칼럼 방’의 반취 선생께서 ‘아호유감’(雅號有感)이라는 재미있는 글을 올려 주었다.

인사동에서 다담(茶談)이란 월간지를 발행하며 지낼 때의 일이다. 부산 기장에 요(窯)를 가지고 있는 토암(土岩)이란 도예 인이 내게 초정(草井)이란 아호(雅號)를 선물했다. 당신은 사막에 떨어뜨려도 살아갈 사람이다. 우물가의 풀을 보았다. 그 강인한 생명력이 당신 이미지와 너무 걸 맞는 것 같아 아호로 선물할 생각을 했다. 성장을 빈다. 이것이 아호를 선물하는 그의 변이었다. 생전 처음 아호를 선물 받는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이튿날 인사동에서 논어학당을 경영하는 한학자 추전(秋田)을 만나 술 한잔 하는 자리에서 그 이야기를 했다. 내게도 아호가 하나 생겼다고 자랑하니 그가 묻는다. “초는 풀 초(草)로 짐작되는데 정자는 무슨 정자요, 정자 정(亭)이요?” “아니, 우물 정(井)자라는데.” 짓궂다 할까, 독설가로 소문난 그의 눈가에 웃음기가 어린다.

“그렇다면 그건 여자의 거시기 아니오? 이 선생이 당했군. 허허 부산 친구 토암이 이 선생을 놀렸어요.” “……?” 나는 말을 잃고 말았다. 생각해보니 여성의 거시기가 맞았다. 그 도예가가 나에게 장난할 처지는 아닌데…, 술맛이 확 달아날 정도로 여간 유감스러운 게 아니었다. 며칠이 지나도 기분이 좋아지지 않았다. 잊히지도 않고 자꾸 생각났다.

그러던 하루, 문득 담배를 피우며 생각하니 그 아호야말로 내게 어울리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나는 여성들에게 둘러싸이다시피 지냈다. 집에 가도 딸만 둘이니 여자 셋 데리고 사는 처지요, 잡지사에도 여기자뿐이었고, 차(茶) 선생이다 다도(茶道)사범이다 하는 세계도 90%가 여성이었다. 게다가 도예인 토암의 말처럼 우물가의 풀, 하면 강인한 생명력도 연상되니 그런 기질이 있다고 여겨지는 나에게 초정(草井)처럼 어울리고 용기도 주는 아호가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을 바꾸니 나빴던 기분이 좋아졌고 다시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어졌다. 호가 마음에 들면 호 턱(號施)을 내는 법이다. 호 턱을 먹은 사람은 그 대가로 나를 부를 때 아호로 불러주어야 한다. 나는 초정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가까운 친구 지인들을 20여명 초청해 인사동 한복판에서 호 턱을 내며 그 동안 겪은 마음의 갈등을 털어놓았다.

모두 재미있다고 깔깔깔 웃었다. 그때 시집을 한 권 냈는데 나는 거기에 당당하게 밝혔다. <초정 이기윤 시집>이라고. 그때 호 턱을 먹은 양산 통도사 잡화산방 수안(殊眼) 스님은 스스로 친 학(鶴)에 ‘위 초정 이기윤 선생’(爲 草井 李起潤 先生)을 기입하여 보내주시기도 했는데 그 편액은 지금도 반취동산에 걸려 있다.

그렇게 초정이란 아호를 사용하는 지 두해쯤 지났을 때다. 차(茶)를 주제로 한 세미나 뒤풀이 자리에서 술을 마실 땐 데 한 여성이 다가와 말했다. “실례인지 모르겠는데요, 이 선생님은 초정보다는 반취(半醉)가 더 어울리실 것 같아요. 한 잔만 드셔도 반쯤 취한 듯 하고, 밤새도록 마셔도 반밖에 안 취하고…, 지나침도 모자람도 함께 경계하라는 초의선사(草衣禪師)의 가르침, 중정(中正)에 견줄 수도 있겠고요.”

그러자 그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대뜸 “이야! 그게 더 어울리겠는데요.” “반취 선생. 그거 이기윤 선생을 위한 아호 딱 인데요.”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내 마음에도 들었다. 초정에 대한 해석을 고쳐먹은 뒤, 다시는 기분 나쁜 해석을 하지 말자고 다짐하였지만 한문을 아는 사람들은 만날 때마다 의문(?)을 제기해서 언젠가는 바꿔야겠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아호는 특수층의 전유물이 아니다. 아호를 지어 주거나 받아 사용하는 뜻에는 상대를 배려하고 향토 성을 지키며 자기 심성을 다듬는 등 인간적인 따뜻함이 담겨 있다. 고향 뒷산이나 마을 이름을 아호로 사용하면서 늘 고향을 생각한다던가, 수양을 목표로 삼는다든가, 성질이 급한 사람은 혜(惠) 자를 써 순해지도록 유도하는 식으로 결점을 보완하는 의미를 담고 있어 소박한 가운데에서도 아름답게 살아가도록 이끌어주는 길잡이 애칭이 아호인 것이다.

실제로 아호를 작명하는 데는 다섯 가지를 고려했던 게 우리 선비사회 풍습이었다. ①부르기 쉽고 ②뜻이 좋아야 하며 ③향토의 기운을 담은 위에 ④자신의 결점을 보완하는 의미를 첨가하되 ⑤겸손해야 한다는 다섯 가지다. 스스로 지어 사용해도 나무랄 일은 아니지만, 가까운 스승이나 선배 지인이 아끼는 마을을 담아 지어주면 금상첨화라 했다.

작금, 아호를 쓰는 풍습이 쇠퇴했다고는 하나 사라진 것은 아니요, 사라질 문화도 아니라고 믿는다. 그러나 어쨌든, 실제에서는 사회가 각박해지는 것만큼이나 갈수록 아호를 쓰는 사람이 줄고 있다. 문학이나 그림, 서예 따위 우리 문화를 이어가는 분야에서나 아호 전통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아호를 사용하는 훈훈한 사회가 어서 왔으면 싶다.

재미있기도 하고 아호를 짓고자 하는 사람들의 길잡이로 손색이 없는 글이 아닌가 한다. 우리 덕화만발 가족이라면 법호(法號)는 몰라도 아호 하나쯤 멋지게 지어 사용하면 우리의 인생이 더욱 우아하고 멋진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 같다.

손수 짓기가 어려우신 분들은 우리 덕화만발 카페의 반취(半醉) 이기윤 선생이나 석봉(碩峰) 조성학 선생, 그리고 지당(芝堂) 이흥규 선생님 등에게 부탁하면 기꺼이 재능기부를 해주실 거다. 호 턱은 잊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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