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자네게 어딨나? 모든 것 빌려쓰는 주제에···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회 명예회장] 필자가 다리도 아프고 눈도 잘 안보이고 해서 10년 넘게 타고 다니던 애마(愛馬)를 지난달에 새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그리고 오래 전 내가 죽으면 시신기증을 하겠다고 서약을 하고 그 증명서를 지갑에 넣고 다닌다. 왜냐하면 이 몸뚱이도 다 사은(四恩, 天地恩 父母恩 同胞恩 法律恩)의 공물(公物)인데 무엇 하나 내 것이라 할 수 없어 주인에게 돌려드리고자 함이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은 우리 것이 아니다. 살아있는 동안 잠시 빌려 쓸 뿐이다. 죽을 때 가지고 가지 못한다. 나라고 하는 이 몸뚱이도 내 몸이 아니다. 이승을 하직할 때는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내것이라고는 불생불멸(不生不滅)한 나의 영혼과 평생 지은 업보(業報)뿐이다.

부귀와 권세와 명예도 잠시 빌린 것에 불과하다. 빌려 쓰는 것이니 언젠가는 되돌려 주어야 한다. 많이 가지려고 욕심 부리다 모두 잃을 수도 있다. 그냥 그대로 놓아두면 모두가 내것이 아닌가? 탐욕을 버리고 베풀면 오히려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다.

모두 놓아버리고 주인에게 돌려드리면 마음이 비워질 것이다. 마음이 비워지고 나면 이 세상 모두가 나의 빈 마음 속으로 들어온다. 이곡(李穀, 1298~1351)의 <가정집>(稼亭集)제7권에 ‘차마설’(借馬說)이 있다. 원문 번역은 이렇다.

나는 가난해서 말이 없기 때문에 간혹 남의 말을 빌려 탄다. 그런데 노둔하고 야윈 놈을 얻었을 때에는 아무리 급해도 금방이라도 쓰러질까봐 겁이 나서 감히 채찍을 대지 못하고, 개천이나 도랑을 만나면 말에서 내리곤 한다. 그래서 후회하는 일이 거의 없다.

반면에, 발굽이 높고 귀가 쫑긋하며 잘 달리는 준마를 얻었을 경우에는 의기양양하게 채찍을 갈기기도 하고 고삐를 놓기도 하면서 언덕과 골짜기를 평지인 양 내달리는데, 그러면 속이 아주 후련해진다. 그렇지만 간혹 위험에 빠지거나 말에서 떨어지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아,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이렇게까지 달라지고 바뀔 수가 있단 말인가. 남의 물건을 잠깐 빌려서 쓸 때에도 오히려 이와 같은데, 하물며 정말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경우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렇긴 하지만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 가운데 남에게 빌리지 않은 것이 무엇이겠는가.

임금은 백성에게 힘을 빌려서 존귀하고 부유하게 되는 것이요, 신하는 임금으로부터 권세를 빌려서 영예를 누리고 귀한 신분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식은 어버이에게서, 지어미는 지아비에게서, 비복(婢僕)은 주인에게서 각각 빌리는 것이 또한 심하고도 많다. 그런데 대부분은 자기가 본래 가지고 있는 것처럼 여길 뿐 끝내 살피려고 하지 않으니, 미혹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다가 혹 잠깐 사이에 그동안 빌렸던 것을 돌려주는 일이 생기게 되면, 만방(萬邦)의 임금도 독부(獨夫)가 되고 백승(百乘)의 대부(大夫)도 고신(孤臣)이 되는 법인데, 더군다나 미천한 자의 경우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맹자가 “오래도록 차용하고서 반환하지 않으니, 자기의 소유가 아니라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라고 하였다. 내가 이에 느껴지는 바가 있기에, ‘차마설’을 지어 그 뜻을 부연한다.

이 글은 말을 빌려 타는 일상의 사소한 체험에서 삶의 이치를 깨닫는 내용이다. 차마(借馬)로부터 인간의 소유문제에 이른 지은이 이곡의 상상과 유추의 과정, 그리고 그 속에 담긴 교훈적 의미를 깨닫는 데에 이 글을 읽는 가치가 있다.

말을 빌려 타는 일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삶의 자세에 대한 보편적인 깨달음이 되는 것이다. 곧?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은 빌리지 않은 것이 없는데도 사람들은 빌린 것을 자기 소유로 알고 반성할 줄 모르니 미혹한 일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유형이든 무형이든 간에 모두 빌린 것이기에, 지나친 소유욕을 버리고 겸손한 삶의 자세를 가지라고 말하는 것이다.

빌린 것은 모두가 빚이다. 우리가 빚진 인생이라면 또한 빚을 갚으며 살아야 할 존재임이 틀림없다. 우리는 내가 받은 은혜, 내가 받은 사랑, 내가 먹는 밥, 내가 받은 빚을 도로 갚으며 살지 않으면 안 된다. 은혜를 모르면 짐승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에게나 늘 빚진 마음이 있어서 누군가에게 무엇을 나누어주고 싶고, 내어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본능적으로 그 빚을 갚으려는 마음이 있다. 어쩌면 우리 안에 있는 사랑이라는 것은 내가 진 빚을 갚고자 하는 근원적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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