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김광석의 ‘어느 60대노부부의 사랑이야기’가 그리운 까닭

NISI20150106_0010497541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회 명예회장] 요즘 늙은 남편이 부담스러워 문제가 심각하다고 한다. 필자 역시 ‘삼식이 신세’라 이 범주에서 자유스러울 수 없는 입장이다. 동물사회에서 늙은 수컷은 비참하게 최후를 맞는 경우가 많다. 평생 적으로부터 무리를 보호하던 수사자는 사냥할 힘을 잃으면 젊은 수컷에게 자리를 내주고 무리에서 쫓겨나 ‘마지막 여행’에서 혼자 죽는다.

늙은 수코양이도 죽을 때면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침팬지에게 A방법으로 먹이를 주다가 갑자기 B방법으로 바꾸면 늙은 수컷만 새로운 습관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젊은 것들과 암컷에게 뺏기고 애물단지처럼 뒤쳐진다고 한다. 그 동물세계의 비애가 이젠 인간에게까지 전이(轉移)된 것일까?

어느 나라건 ‘늙은 남편’을 조롱하는 농담이 넘쳐난다. 일본에서는 늙은 남편이 “비오는 가을날 구두에 붙은 낙엽” 신세로 비유된다. 아무리 떼 내려 해도 달라붙는다는 뜻이다. 실제 인구조사 결과도 씁쓸하기 짝이 없다. 몇 년 전 일본 에히메현에서 노인 3100명을 조사했더니 여성은 남편 있는 쪽이 남편 없는 쪽보다 사망 위험이 두 배 높았고, 남성은 그 반대로 마나님이 있는 쪽이 더 오래 산다는 통계가 나왔다.

그 이유는 “늙은 남편이 아내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높기 때문”이라고 했다. 얼마 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여성의 71.8%가 “늙은 남편을 부담스러워한다”고 발표했다. 평균수명이 길어지면 그만큼 돌봐야 하는 기간도 늘어날 것이라는 게 여성 쪽의 걱정이었다. 늘 듣던 말 같은데 어쩐지 남성에겐 점점 더 내몰리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다 그렇지는 않다. 납북된 남편을 36년이나 기다려온 할머니도 있다. 그 할머니가 얼마 전에야 남편 소식을 듣고 “혼인 했답디까? 그럼 됐습니다. 남자는 여자가 있어야 살지”라고 했다고 한다.

주변의 실화 하나를 소개한다. 남편은 71세, 부인은 67세다. 어느 날 부인이 모임에 갔다가 돌아와 바로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남편은 인사도 없이 들어가는 부인이 이상하여 아내의 방으로 가서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며 다정한 목소리로 물어 보아도 아무런 말없이 누어만 있는 것이었다.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구나 하고 기다리다가 한 참 지난 후에 아내가 하는 말이 “다들 싱글인데 나만 싱글이 아니어서 싱글이 부러워서 그런다”고 하면서 울더란다. 다른 여자들은 혼자 몸이어서 다 들 밥걱정도 안 하고, 자유롭게 여행도 다니고, 마음 내키면 남친들과 즐기기도 하는데 자기만 남편이 있어서 부자유스럽고 불편해서 그런다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남편은 조용히 방을 나와 자기 방에서 혼자 명상에 잠겼다. 퇴직 전까지 아이들 먹이고, 가르치고 시집장가 보내느라 한 평생을 뼈 빠지도록 일 해오면서, 취미생활은커녕 친구들 술빚도 못 갚고 살아 온 인생이 한없이 서글퍼졌다. 이젠 자식들이 다 혼인하여 손자 손녀들을 데리고 오면 그렇게 반갑고 즐거울 수가 없었다.

‘내 인생은 이제부터다’라고 생각하며 생활해 왔고, 아내에게 즐거움을 주고자 매일 등산과 운동으로 건강을 가꾸어 왔다. 그러나 이제 와서 ‘내 신세가 왜 이렇게 되었나’ 생각하니 잠이 오지 않았다고 했다. 술을 마셔도 누구에게 배신당한 것 같은 감정이 북 바쳐 올라, 세상을 하직하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한다.

다음날 아내를 앉혀놓고 감정을 달래며 물었다. 그런데 아내는 형식적으로 “잘못했어요” 하고는 태도가 전과 같지 않고 달라져 있는 것이다. 하도 답답해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이 얘기를 재차 털어 놓았다. 어찌하면 좋으냐고 물어도 친구들 역시 같은 처지라 확실한 대답이 없다. 도저히 이 상황에 정답을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작년 가을 70년 넘게 해로해온 노부부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임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가 흥행 돌풍을 일으킨 적이 있다. 그 마지막 강을 건너는 부부의 모습에 눈물을 훔쳤다.

작년 8월 14일, 대만에서 결혼 50년차 노부부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화제였다. 은퇴한 군인인 왕씨(85세)와 그의 16살 연하 아내(69세)가 그 주인공이다. 두 분은 모두 알츠하이머(치매) 진단을 받고 서서히 기억을 잃어가고 있었다.

노부부는 치매라는 병마에도 서로의 오랜 시간에 대한 기억만은 잊지 않은 채, 늘 함께하며 다정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대단한 사랑의 힘이다. 왕씨 노부부는 병세가 심각해 낮에는 전문 의료 시설에서 지내고 저녁에만 가족들과 함께 생활한다.

산책을 할 때면 서로의 손을 꼭 붙잡고 함께 걷고, 식사를 할 때도 늘 함께 한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잠시만 보이지 않아도 “우리 할멈 못 봤어”라며 불안해하며 할머니를 찾는다. 그러면서 늘 “내가 마누라를 보살펴 줘야 집에 갈 수 있어”라고 말한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혼인하기 직전 사춘기 소녀시절로 기억이 돌아와 늘 “나는 곧 왕씨와 혼인해요”라는 얘기를 하고 다닌다. 50년을 함께 살았어도 남편과의 혼인을 꿈꾸며 매일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노부부다.

인생의 낙조를 그려가는 노부부의 그림이 이런 것이다. 홀로 남아 자유를 만끽하는 것도 좋겠지만 80 넘어서 살아가려면 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배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최상의 그림이 아닐까 한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