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익악기 김종섭 회장 “관행에서 벗어냐야 새로운 것 보인다”
“연말에 연탄 몇장 배달 보다 전기보일러 설치 생각해야”
얼마 전 서울 논현동 삼익악기 사옥에서 김종섭 회장을 만났다. 인터뷰 겸 매체 운영?조언을 듣기 위한 자리였다.?김 회장은 아시아와도 인연이 깊다. 인도네시아 심익악기 공장은 3500명이 일하며 악기의 대부분을 생산한다. 국내 공장 인력의 7배 수준이다.? 지난 10월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인도네시아 순방길에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했다. 젊은 시절엔?대한항공?승무원으로 전 세계를 누비기도 했다.
대화는 ‘오래된 관행에서 벗어나라’는?고언으로 시작됐다. 그는 그 한 예로? 대기업, 금융사들의 보여주기식 연말 봉사활동을 들었다.?그런 건 더 이상 언론이 써 줄 필요가 없다고도 했다. 김종섭 회장은 “비슷한 행사가 오래 계속되는 바람에 현실성이 떨어졌다. 김장 50포기와 연탄 200장이면 겨울을 난다던 건 옛말이다. 김치나 연탄이 필요한 이들은 대부분 한두 식구가 고작이다. 여기저기서 김치를 잔뜩 받아봤자 보관할 곳이 마땅하지 않은 데다 싱싱할 때 다 먹기도 어렵다”고 했다.
그는 “어떤 것이든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만 있어야 하는데 수요 공급이 맞지 않는 통에 한겨울엔 처치 곤란, 다른 철엔 모자란 일이 생긴다. 연탄 배달도 그렇다. 연탄을 때려면 한밤 중 일어나 갈아야 하는데 독거노인이나 소년소녀 가장, 장애인들에게 그것처럼 고역이 없다”며 “매년 연탄을 사서 나르는 비용과 수고를 계속하기보다 난방 시설을 바꿔주는 게 백번 낫다”고 말했다. 임원들의 하루 일당 등 약간의 돈을 기부해 집 자체를 고쳐 연탄 대신 도시가스나 전기를 이용하는 쪽으로 바꿔주면 한결 따뜻하고 편리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봉사나 지원은 도움을 받는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지 베푸는 사람(단체)의 만족이나 과시를 위한 것이어선 곤란하다”며 “정부와 기업, 사회단체, 개인 모두 구태의연한 틀에서 벗어날 때 우리 사회와 국가 모두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다. 내년 연말부터는 지금까지와 다른 연말 풍경을 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의 ‘깨인’ 사고는 서울대를 향하기도 했다. 서울대 사회사업학과 66학번이기도 한 그는 “서울대가 동문을 비롯해 각계각층의 인사들을 대상으로 재학생과 학교를 위한 기금을 모금하는데 아시아의 가난한 대학들을 위해서도 눈을 돌려야 한다.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한다면 더 많은 사람, 단체가 기부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최근 사회 지도자층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재산을 자식이 아닌 사회에 환원하고 싶어한다”며 “그 주요 대상이 학교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수십억?여러 장학재단에 기부… “죽을 때 아무것도 남기고 싶지 않다”
김종섭 회장의 집무실 서재 위에는 LA, 상하이, 서울, 자카르타, 베를린의 시간을 알려주는 동그란 시계가 걸려 있다. 1년의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보내는 CEO의 집무실다웠다. ‘M&A의 귀재’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탁월한 경영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그는 ‘매거진N’에 대해 “비지니스 모델이 안 보인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타켓이 명확하지 않다. 비즈니스맨들이 본다고 할 때 어떤 도움이 될까? 내가 건설미디어를 하고 있는거 모르겠지만 건설미디어의 부제가 아스콘·아스팔트·래미콘이다. 스페코를 운영하면서 이 분야엔 전문지가 없어 정보제공 차원에서 발행하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제 도움 없이도 잘 돌아가고 있다. 3명이 글 쓰고 편집하는데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매거진 N이 아시아 인맥을 구축하는데 도움을 주는 잡지가 되면 어떨까? 예를 들어 필리핀에서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의 애로사항을 해결해 줄 수 있는. 10년 이상 유지할?먹이를 찾아야 한다.”
김종섭 회장은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음악대학 우수 인재 육성 학술기금과 아시아 연구소 학술기금 등을 출연하는 등 교육·장학사업을 지속적으로 후원해왔다. 서울대동창회 장학재단에도 20억원, 동성고에도 10억원을 출연했다. 재단을 만들 생각은 없냐는 물음에 “기존의 좋은 재단들에 기부를 하면 더 효율적으로 운용을 해 주는데 굳이 만들고 싶지 않다”며 “죽을 때 뭘 남기고 싶지가 않다”고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 김 회장은 방문 기념품으로 하모니카 세트를 선물했다. 하모니카를 꺼내들고 ‘음악 회사’를 경영한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일까를 생각했다. 올 연말 김광석의 노래를 하모니카로 연주하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