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징비록’ 유성룡의 친구 사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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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회 명예회장] 사람은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하여 목숨도 바친다는 말이 있다. 그런 사이를 지기지우(知己之友)라 한다. 자기의 가치나 속마음을 잘 알아주는 참다운 벗을 이르는 말이다. 그런 친구를 가졌는지 가만히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런 친구를 도대체 어떻게 찾아야 할까?

비옥취사(比玉聚沙)라는 말이 있다. 인생을 살면서 좋은 친구를 만난다는 것은 그 어떤 일보다도 중요하다. 그래서 옛날부터 군자들의 우정은 처음엔 물처럼 담담해도 그 사이가 오래갔다. 그러나 소인들이 친구를 사귀는 것이 처음엔 술처럼 달콤하지만 이해관계가 달라져 헤어지기 마련이다. 그런 군자 중에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 1542~1607)은 군자들의 사귐을 옥(玉)에 비유하고 소인들의 사귐을 모래에 비유하여 설명했다.

“군자지붕 (君子之朋)은 여비옥(如比玉)이라, 군자들의 친구 관계는 비유하자면 옥이 모이는 것과 같다./ 온호기상친(溫乎其相親)이나 율연이자수(栗然而自守)라, 그 서로 친하기가 따듯하면서도 엄격하게 자신을 지키기 때문이다./ 소인지당(小人之黨)은 여취사(如聚沙)라, 그러나 소인들의 친구관계는 마치 모래를 모아놓은 것과 같다./ 시이잡답 (始焉雜沓)이오 불택정조(不擇精粗)나, 처음 만나서는 서로 잘 섞이고 부류를 가리지 않고 잘 사귀나/ 종언리진즉(終焉利盡則) 석연이상리(釋然而相離)라, 끝내 이해관계가 없어지면, 얼음이 녹듯 서로 갈라지게 된다.”

요즘 이해관계에 따라 쉽게 만났다 헤어지를 거듭하며 모래알처럼 부서지고 흩어지는 대인관계 시대에 한 번쯤 되새겨봐야 할 귀한 말씀이다. 그럼 친구는 어떠해야 할까?

베트남에서 전쟁이 한창일 때였다. 어디선지 날아온 박격포탄이 한 고아원의 지붕위로 떨어졌다. ‘콰 광’하는 소리와 함께 지붕이 내려앉고 건물이 무너져 내렸다. 또 많은 아이들이 벽돌 아래에 깔려 목숨을 잃었다. 다친 아이들 중에는 8살 난 여자아이도 있었다.

그 아이는 당장 수혈을 하지 않으면 죽을 위험에 처해 있다. 하지만 미국 군의관들 중에서는 아이의 혈액형과 맞는 사람이 한사람도 없었고 할 수 없이 군의관들은 영어로 손짓발짓을 해가며 다른 고아들에게 피를 나눠줄 것을 부탁했다. 그런데 군의관들의 이야기를 듣던 아이들의 표정이 점차로 굳어졌다.

아이들은 웅성거리기만 할 뿐 아무도 피를 나누어 주겠다고 손을 들지 않았다. 베트남어를 잘 모르는 군의관들은 초조한 마음으로 아이들의 행동을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한참 후에 ‘헹’이라는 소년이 천천히 손을 들었다. 안도한 군의관들은 급히 헹의 혈액형검사를 해보았다. 검사결과 다행히 헹은 부상당한 소녀와 혈액이 일치했다.

드디어 수혈하는 순간, 헹은 매우 겁먹은 표정으로 군의관과 부상 입은 소녀를 계속해서 쳐다보았다. 피를 뽑는 순간, 헹은 갑작스레 울기 시작했다. “헹, 아프니?” 간호사가 물었다. 그러나 헹은 고개를 돌리고 흐느낄 뿐이었다. “왜 자꾸 우는 거지?” 간호사에게는 의문이 생겼다.

수혈이 끝나고 간호사는 의사를 만났다. “선생님, 헹이 왜 우는 거지요?” 간호사가 물었다. “글쎄, 어디 다른 데가 아픈 것이 아닐까요?” “그런 건 아닌 것 같은데…” 잠시 후 간호사가 헹과 부상소녀가 있는 방으로 들어왔다. “헹! 일어나렴. 이제 일어나도 돼.” “……” 헹은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감았다. ‘일어나기 싫은가?’

그때 소녀가 으으 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깨어났다. 군의관들이 모여 소녀를 진찰했다. 소녀는 살아난 것이다. 그때 다른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던 베트남인 간호사가 잠시 이 고아원에 들렀다. 간호사가 헹이 우는 이유를 물어봐달라고 부탁했다. 베트남인 간호사는 흔쾌히 허락했다.

잠시 뒤, “오, 세상에! 헹은 당신들의 말을 오해했어요. 헹은 수혈을 하면 자기가 죽는 줄 알았대요.” 간호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베트남인 간호사가 헹에게 물었다. “헹, 왜 죽는 줄 알면서도 그 애에게 네 피를 주려고 했니?” 헹이 겨우 숨을 고르고 말했다. “그 애는 내 친구니까요”

친구란 친구를 위하여 목숨도 내어놓는 것이다. 그런 친구를 만드는 방법이 있다.

첫째, 귀인의 법칙이다.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을 귀인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전설적인 자동차 영업왕인 조 지라드는 한사람 뒤에는 250명의 사람이 있다고 했다. 한 사람을 친구로 삼으면 250명과 친구가 되고 한사람을 적으로 삼으면 나의 적이 250명이 생긴다는 것이다.

둘째, 123법칙이다.

친구를 대할 때, 입은 1이니 적게 말하고, 귀는 2개이니 많이 들으며, 3번의 맞장구(Reaction)를 치는 것이다. 상대방의 의견에 귀기울이고 그 사람 입장을 이해한다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

셋째, 49대51 법칙이다.

친구에게 51을 주고 나는 49를 갖는 것이다. 이익이 났을 때 친구에게 51을 주고 내가 49를 가지면, 50을 기준으로 하나의 차이가 나지만 상대적으로 2개의 차이가나 커 보인다. 양보와 겸양은 바로 친구를 만드는 요체(要諦)다.

‘비옥취사(比玉聚沙)!’ 그 ‘비옥’을 얻기 위해서라면 그 어느 곳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자. 가시나무는 쳐내도 다시 길어난다. 그러나 지란(芝蘭)은 길러도 죽기 쉽다. 좋은 친구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지란을 기르는 마음으로 지기지우를 만들어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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