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 시인의 ‘참사람이 사는 법’이 내 맘에 드는 이유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회 명예회장] 사람 같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마음이나 행동이 거짓 없이 진실한 사람 아닌가? 그런 사람들이 살아가는 길은 조금 다르다. 시인 박노해의 시에 ‘참사람이 사는 법’이라는 시가 있다.

‘참사람이 사는 법’

“손해 보더라도 착하게/ 친절하게 살자/ 상처 받더라도 정직하게/ 마음을 열고 살자/ 뒤처지더라도 서로 돕고/ 함께 나누며 살자/ 우리 삶은 사람을 상대하기보다/ 하늘을 상대로 하는 거다/ 우리 일은 세상의 빛을 보기보다/ 내 안의 빛을 찾는 거다”

박노해 시인은 참되게 살아가는 길을 아주 간략하게 제시했다. 사람은 서로 만나고 때론 의지하며 더불어 사는 것이다. 참된 사람은 이미 완성된 사람이 아니라 사람다운 삶을 살아가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이다.

이솝우화에 이런 얘기가 있다. 이솝이 어렸을 때 이야기다. 이솝의 주인은 훌륭한 학자였다. 어느 날 이솝의 주인이 말했다. “얘 이솝아, 공동목욕탕에 가서 사람이 많은지 좀 보고 오너라.” 이솝은 목욕탕으로 갔다. 그런데 목욕탕 문 앞에 끝이 뾰쪽한 큰 돌이 땅바닥에 박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목욕하러 들어가던 사람이나 목욕을 하고 나오는 사람들 모두가 그 돌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어떤 사람은 발을 다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코가 깨질 뻔했다. “에잇! 빌어먹을!” 사람들은 그 돌에 대고 욕을 퍼부었다. 그러면서도 누구 하나 그 돌을 치우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들도 참 한심하지. 그래, 누가 저 돌을 치우는가 한번 지켜봐야지.” 이솝은 목욕탕 앞에서 그것만 지켜보고 있었다. “에잇, 빌어먹을 놈의 돌멩이!” 사람들은 여전히 돌에 걸려 넘어질 뻔하고도 욕설을 퍼부으며 지나갈 뿐이다.

얼마 후 한 사나이가 목욕을 하러 왔다. 그 사나이도 돌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이솝은 여전히 그 사나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웬 돌이 여기 박혀있담!” 그 사나이는 단숨에 돌을 뽑아냈다. 그리고 손을 툭툭 털더니 목욕탕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솝은 그제야 일어서더니 목욕탕 안에 들어가 사람 수를 헤아려보지 않고 그냥 집으로 달려갔다. “주인님! 목욕탕 안에 사람이라고는 한 명밖에 없습니다.” “그것 참 잘 됐구나. 너, 나하고 목욕이나 하러 가자.” “네, 주인님!”

이솝은 주인과 함께 목욕탕으로 갔다. 그런데 공동목욕탕 안에는 사람이 우글우글하여 발을 들여놓을 틈이 없었다. “이 녀석, 사람이 한명밖에 없다고 하더니 너 왜 거짓말을 했느냐?” 주인이 화를 내며 말했다. “주인님! 제 말을 들어보십시오.” “또, 무슨 거짓말을 하려느냐?” “아닙니다. 주인님! 목욕탕 문 앞에 뾰쪽한 돌부리가 튀어나와 사람들이 걸려 넘어지고 다치기도 했는데, 누구 하나 그 돌멩이를 치우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단 한 사람, 그 돌멩이를 뽑아 치우고 들어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제 눈에는 사람다운 사람으로 오직 그 사람 하나가 보였을 뿐입니다.” “허허허, 그래서 그렇게 늦었던 것이구나!”하고 웃고 말았다.

이처럼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참사람은 드문 것이다. 옛 고승 중에 임제 의현(臨濟義玄, ?~867)선사라는 분이 계셨다. 그분의 <임제록>(臨濟錄)에 ‘참사람이 되는 길’이 나온다. 그 중 일부를 추려보자.

첫째, 참다운 견해(見解)를 가져야 한다.

불법(佛法)을 배우는 자는 반드시 참다운 견해를 찾아야 한다. 불법은 오직 참다운 견해를 가짐으로써 깨칠 수 있다. 참다운 견해란 지금 여기서 의지함이 없고 모자람 없이 작용하여 만법(萬法)의 주인 되는 참사람임을 아는 것이다.

둘째, 남에게 속지 않는 것이다.

스스로가 만법의 주인 되는 참사람이고, 스스로에게 만법이 갖추어져 있음을 믿어서 밖으로 남에게 끌려가 속지 않는 것이다. 그리하면 어딜 가나 주인공이 되어 선 자리 그대로가 모두 참인 것이다.

셋째, 의심하여 주저하지 말고 스스로를 믿는 것이다.

스스로가 만법의 주인 되는 참사람이고, 스스로에게 만법이 갖추어져 있음을 믿지 못하면, 온갖 경계에 휩쓸려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지금 바로 작용하는 이것을 믿기만 하면 아무 일이 없다.

넷째, 바깥으로 치달려 찾지 말고 스스로를 돌이켜보는 것이다.

스스로가 모자람 없이 작용하고 있음을 믿는다면 밖으로 치달려 찾는 일은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은 스스로에게 이미 다 갖추어져 있고 모자람 없이 완벽하다. 진리는 본래 갖추어져 있다. 다만 스스로 어리석어 밖으로 법을 구하는 것이다.

다섯째, 일부러 조작하지 말고 평상시대로 행하는 것이다.

일부러 조작하지 않고 쉬면 마음 즉, 참사람의 작용이 저절로 드러나서 따로 부처를 찾을 일도 없다. 일부러 조작하지 않으면 평상시의 모든 일이 다 불법의 드러남 즉, 참사람의 작용인 것이다. 평상시 일거수일투족 한 생각의 일어남이 모두 참사람의 작용 아님이 없기 때문이다.

여섯째, 어디를 가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평상시 일거수일투족 한 생각의 일어남이 모두 참사람의 작용 아님이 없다. 스스로가 참사람임을 믿으면 어디를 가나 주인공인 것이다.

이대로만 수행하면 언제 어디서나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 굴종(屈從)의 삶을 살아가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내가 나의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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