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6월의 눈물···어머니의 베개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회 명예회장] ‘어머니’ 라는 단어는 부르기만 해도 코끝이 찡해 오고 가슴이 뭉클해진다. 눈가에 이슬이 맺히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건 어머니의 희생적인 사랑 때문일 것이다. 모든 인류가 어머니라는 존재를 좋아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은 어머니를 통해서 사랑을 배웠고 사랑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그리워 질 때 필자는 시장으로 간다. 지금은 예전같이 싸전이 안 보인다. 어머니는 서울 신당동 중앙시장에서 쌀장사를 하셨다. 머리에 흰 수건을 둘러쓰고 먼지구덩이에서 일을 하셨다. 우리 6남매는 그런 어머니의 고생을 먹고 자랐다.

그런데 우리 자식들이 모두 불효자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이미 세상을 뜨신지 오래됐지만 어머니의 사랑에 보답하는 길은 없을까?

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청년이 있었다. 청년은 뜻하지 않게 교통사고를 당해 불행히도 두 눈을 실명한 상태였다. 청년은 깊은 절망에 빠져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는 어느 누구와도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마음의 문을 철저하게 닫은 채 우울하게 지냈다.

곁에서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는 어머니의 가슴은 말할 수 없이 아팠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청년에게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누군가가 그에게 한쪽 눈을 기증하겠다는 것이었다. 결국 이식 수술을 한 청년은 자신을 간호하는 어머니에게 앞으로 어떻게 애꾸눈으로 살아가느냐며 계속 투정을 부렸다.

하지만 어머니는 청년의 말을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드디어 청년은 붕대를 풀게 되었다. 그런데 붕대를 모두 풀고 앞을 본 순간 청년의 눈에서는 굵은 눈물방울이 떨어지고 말았다. 그의 앞에는 한쪽 눈만을 가진 어머니가 애틋한 표정으로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 눈을 다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면 내가 네게 짐이 될 것 같아서” 어머니는 끝내 말을 다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의 사랑은 이런 것이다.

TV동화 <행복한 세상>에 어머니의 베개 얘기가 나온다.

초등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숙제를 내 주었습니다. “부모님께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시는 물건을 그려 오는 거다. 엄마나 아빠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시는 물건을 한 가지만 예쁘게 자알 그려 오는 거야. 알았지?”

선생님 말씀에 아이들은 저마다 많은 생각에 잠긴다. 엄마나 아빠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계신 것이 무엇일까? 학생들 각자는 머릿속에 그 물건이 무엇인가를 상상하며 그려본다.

다음 날, 발표시간이 되었다. 첫째 아이가 나와서 자신이 그린 그림을 친구들에게 보여주면서 설명을 한다. “이건 우리 아빠가 부는 나팔인데요, 우리 아빠가 이것을 불면 엄마는 노래를 하십니다. 두 분이 다 아주 소중하게 여기시는 악기입니다. 노란 금으로 도금이 되어 비싼 악기라고 하셨습니다.”

또 다른 아이가 나왔다. “저희 할아버지가 다른 사람에게는 손도 못 대게 하는 아주 비싼 도자기입니다. 우리 집안의 가보라고 하십니다. 우리 고조의 고조할아버지 때부터 오래오래 보관해 온 도자기라고 하십니다. 값이 얼마인지도 모르는 아주 비싸고 귀중한 도자기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여러 아이들의 그림을 보면, 카메라를 그려온 아이, 승용차를 그려온 아이, 엄마의 보석반지를 그려온 아이, 아이들의 그림 속에는 정말 비싸고 귀해 보이는 물건들이 가득히 있었다. 선생님도 그 아이들의 가보 자랑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발표를 한 영준이가 자신의 도화지를 펼쳐 보이자 아이들이 깔깔대며 손가락질을 하였다. 영준이가 들고 있는 도화지에는 쭈글쭈글한 베개 하나가 덜렁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영준이는 친구들의 웃음소리에 아랑곳 하지 않고 발표를 계속했다.

“이건 우리 엄마가 베고 주무시던 베개인데요. 그런데 우리 엄마는 작년에 돌아가셔서 이 세상에는 안 계십니다. 엄마는 더 이상 이 베개를 벨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아빠는 이 베개만은 절대로 버리지 않으셨어요. 그리고 이 베개를 엄마가 살아 계셨을 때와 똑같이 침상에 나란히 놓고 주무십니다. 우리 아빠에게는 이 베개가 가장 소중한 물건입니다. 저는 우리 아빠의 침상에 가서 엄마의 베개를 보면 엄마 생각이 납니다. 엄마의 베개를 가슴에 안고 여러 번 울기도 했습니다. 엄마가 너무너무 보고 싶어요. 너무너무 우리 엄마가요.” 영준이는 목이 메어 더 이상 설명을 못하였다.

떠들썩하던 교실의 분위기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영준이 짝꿍은 영준이의 엄마를 생각하며 훌쩍거리기 시작하였다. 그 옆에 있던 아이가 또 눈물을 닦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교실 안이 눈물바다가 되었다.

엄마가 없는 영준이, 그리고 엄마가 베던 베개를 침대 위에 고스란히 간직하고 주무시는 영준이 아빠의 외로운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기 때문일 것이다. 선생님도 콧날이 시큼해 지셨지만 억지로 눈물을 참고 있었다. 선생님은 살며시 영준이의 옆으로 다가 가서 떨리는 영준이의 어깨를 꼬옥 감싸 안아주었다. 엄마가 살아 계셨을 때에 자식을 껴안아 주듯이 말이다.

그리고 여러 학생들에게 말했다. “정말로 이 베개는 무엇보다도 가장 값지고 소중한 물건이로구나!” 눈물을 훔치던 모든 아이들은 다 일어서서 영준이에게 박수를 보냈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란 말이 있다. 자녀가 올바른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물질보다 더 소중한 것을 아끼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자녀교육에 있어 큰 가르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필자에게는 어머니가 소중하게 간직하시던 물건이 없다, 어머니의 체취를 느낄 물건이 하나도 없으니 이 일을 어찌하나?

그래도 필자는 어머니에게 효도를 할 기회를 찾았다. 원불교에서는 자식이 ‘법강항마위’(法强降魔位)의 법사(法師)가 되면 부모님에게는 ‘희사위’(喜捨位)의 존호(尊號)를 올려드린다. 아마 이 보다 더 큰 효가 세상에 또 있을까? 필자 부모님은 아마 이런 공덕으로 완전한 천도(薦度)를 받으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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