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사랑에는 유통기한이 없다”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회 명예회장] 모든 감정이 그렇지만 특히 과학적으로 ‘사랑’을 설명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감정에 관여하는 뇌에서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는가를 궁금해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몇몇 과학자들이 지난 2월 “로맨틱한 사랑을 나누는 사람의 뇌에서는 새로운 불꽃이 나온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였다. 이들은 “사랑에 빠져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뇌에서부터 다른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의 뇌가 변화하는 이유는 여러 화학물질이 관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은 사랑을 느낄 때 뇌에서 도파민, 옥시토신, 바소프레신과 같은 화학물질을 활발하게 분비하게 된다. 그래서 사랑에 빠지면, 일상생활의 모습이 다른 방식으로 뇌가 작동하게 된다.

사랑의 호르몬으로 알려진 ‘옥시토신’은 알코올 활동을 억제하는데 영향을 미친다. 사랑의 힘이 알코올 활동도 억제하는 것이다. 사랑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데 가장 많이 나오는 호르몬은 바로 ‘옥시토신’이다. 남녀간의 사랑은 물론 모성애와 인간관계 전반에 관여하는 호르몬이 바로 옥시토신이다.

이 호르몬은 자폐증과도 관련이 있는데, ‘조현병’(정신분열증, Schizophrenia) 역시 뇌 속 옥시토신의 분비량이 부족하면 발생하게 된다. 연구팀은 멜라노코르틴(Melanocortin)이라는 화학물질을 이용해 옥시토신 호르몬이 뇌에서 분비되도록 자극하는 방법을 찾았다. 즉 뇌가 옥시토신을 분비하게 만드는 첫 번째 약물이 발견된 셈이다.

흔히 옥시토신 분비와 관련하여 “사랑의 유통기한을 2년”이라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모든 것들이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듯, 사랑의 유통기한 역시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설사 옥시토신 분비가 2년이 지나면 줄어든다고 해도 말이다.

당신은 뜨거운 사랑(熱愛)을 해보았는가? 필자 역시 사랑이 없으면 죽을 것만 같은 청춘을 불사른 것이 그 얼마인지 모른다. 그러니까 사랑은 일회성이 아니라는 얘기다. 새로운 사랑을 할 때마다 내게는 사랑의 불꽃이 치솟았다. 이 꺼질 줄 모르는 사랑의 불꽃은 나이가 들면서 더 큰 사랑, 더 많은 사랑, 더 넓은 사랑으로 발전해 갔다.

그렇다면 더 큰 사랑, 더 많은 사랑, 더 넓은 사랑은 무엇일까? 필자 방에는 원광대 법해(梵海) 김범수 화백이 금채(金彩)로 그린 아름다운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그림이 걸려있다. 필자는 날마다 이 관음보살과 사랑에 빠져 더 큰 사랑, 더 많은 사랑, 더 넓은 사랑을 속삭이며 황홀감에 젖어 살아간다.

관세음보살은 자비로 중생의 괴로움을 구제하고 왕생의 길로 인도하는 불교의 보살이다. 관세음(觀世音)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 살펴본다는 뜻이다. 그리고 관자재(觀自在)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자재롭게 관조하여 보살핀다는 뜻이다. 또 보살(bodhisattva)은 세간과 중생을 이익 되게 하는 성자(聖者)이므로 이 관세음보살은 대자대비의 마음으로 중생을 구제하고 제도하는 보살인 것이다.

관세음보살은 극락세계에서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과 더불어 아미타부처(阿彌陀佛)를 좌우에서 모시는 역할로 자주 등장한다. <법화경>의 ‘관세음보살보문품’에는 이런 글이 있다.

“한량없는 백 천 만억 중생이 여러 가지 고뇌를 받을 때에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듣고 일심으로 그 이름을 부르면 관세음보살이 즉시 그 음성을 듣고 그들에게 해탈을 얻게 한다.”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받들면 큰 불 속에 들어가더라도 불이 그를 태우지 못한다고 한다. 그리고 물속에 떠내려가더라도 곧 얕은 곳에 닿게 된다. 중생이 보물을 구하기 위해 큰 바다에 갔다가 큰 폭풍이 불어 그 배가 아귀(餓鬼)인 나찰(奈刹)들의 나라에 떠내려가게 되었다고 해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르는 이가 있다면 재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이것은 관세음보살님의 위신력(威神力)을 강조하기 위해 한 말일 것이다. 그런데 관음보살님이 세상에 출현하실 때는 관음보살님의 모습으로 출현하시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국왕의 모습, 관리의 모습, 농부의 모습, 거지의 모습, 창녀의 모습 등 가지가지 모습으로 출현하신다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 주변에 와 계실지도 모르고 바로 우리 중의 누구인가가 관세음보살일 지도 모른다.

엄청난 사랑의 불꽃을 태우는 분이 관세음보살이다. 우리도 관세음보살님과 같은 사랑의 불꽃을 태운다면 바로 우리가 관음보살이 아닐까? 그런데 관세음보살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우선 관세음보살이 되겠다는 성불제중(成佛濟衆), 제생의세(濟生醫世)의 대원(大願)을 세우고 다음 아홉 가지의 수행을 통해 관자재보살의 모습을 나툴 수 있다.

즉, 심지(心地)에 요란함이 있는가 없는가, 심지에 어리석음이 있는가 없는가, 심지에 그름이 있는가 없는가, 신(信) 분(忿) 의(疑) 성(誠)의 추진이 있는가 없는가, 감사생활을 하는가 못하는가, 자력생활을 하는가 못하는가, 성심으로 배우는가 못 배웠는가, 성심으로 가르치는가 못 가르치는가, 남에게 유익을 주는가 못 주는가를 대조하고 또 대조하며, 챙기고 또 챙겨서 필경은 챙기지 아니하여도 저절로 되어지는 경지에 오르면 바로 우리도 관세음보살의 위신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지극히 미묘하다. 잡으면 있어지고 놓으면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아홉 가지 ‘일상수행의 요법’(要法)대로 수행을 하면 누구나 초범(超凡) 입성(入聖)의 큰일을 성취하여 관자재보살의 인격을 갖추게 된다.

이 세상의 원(願) 중에 불보살이 되는 원보다 큰 원은 없다. 어차피 살아가는 인생, 부평초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불보살의 위(位)에 올라 만 생령을 구제하는 관자재보살로 살아갈 것인가는 오로지 우리의 마음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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