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겸 칼럼] 인기스타가 웬 절도?···처벌엔 ‘차별’ 있었다

<사진=신화사/뉴시스>

[아시아엔=김중겸 이실학회 창립회장, 전 인터폴 부총재] 소매업계에서 유색인종을 보는 시각 Shopping While Black(SWB). 뉴욕의 백화점에서 고객 중 유색인종은 10%, 들치기 중 유색인종은 75%라고 한다.

유색인종이 가게에 들어오면 점원과 경비원은 경계태세에 들어간다. 훔쳐갈지 모른다는 의심을 먼저 한다. 바로 SWB. 일종의 인종차별이다. 다른 색의 인종에겐 안색이 확 변하는 것이다.

법원판결도 차별이 현저하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쓴 마크 트웨인은 “상류층이 백화점이나 쇼핑몰에서 도둑질하면 교도소 보내지 않는다. 병이라며 정신병원으로 간다”고 말했다. 백인이 흑인에게 자행했던 사형(lynch, 私刑)의 경우 백인의 처벌은 가볍다. 반면 흑인의 경우 대부분 들치기 같은 경범죄를 짓고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았다. 좀도둑에 대한 인종·신분간 처벌엔 현격한 차이가 현존한다.

20년 고생해 성공, 추락엔 불과 1년
클로드 알렌(Claude Allen)은 45살 백악관 국내정책 수석보좌관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2006년 2월 그의 사표 수리를 발표했다. 백악관 입성 13개월만이었다. 사표제출 사유는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갖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는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의회진출도 모락모락 연기 나는데 가족과 더 많은 시간 함께 지내려고 그만 둔다? 뜬금없는 소리였다. 그날 저녁 지방신문에 그에 대한 범죄기사가 났다. 설마 알렌이 사기를 쳤겠나. 동명이인일 것이라고 눈을 의심했다. 하지만 사실이었다. 주변인들의 기대를 저버렸다.

사표 내기 한 달 가량 전인 1월2일. 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쇼핑몰에서 저질렀다. 들치기해서 일단 상점 밖으로 나갔다. 다시 들어와 반품하고 현금으로 받았다. 체포됐다. 내역은 이랬다. 물청소 걸레 11.99 달러, 여자 속옷 두 벌 9.89 달러, 마사지 장갑 4.99 달러였다. 이게 다가 아니었다. 모두 25회. 약 5천달러 어치를 들치기했다. 절도다. 들치기한 상품을 반품하고 현금으로 받아갔다. 사기죄도 가중됐다. 연봉 16만1000달러 받으며 장래가 보장된 그가 왜? African-American의 성공신화 강박관념에 패배했는가. 아니면 쌍둥이 동생 마켓 경비원을 도우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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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노나 라이더(Winona Ryder)는 잘 나가는 서른 살 여배우였다. 2001년 12월12일 할리우드의 한 백화점에서 옷을 들치기했다. 그 전 해에도 세번 훔치다 모두 발각됐다. 변상에 합의해 없던 일로 됐다. 이번에는 디자이너 숍에서 옷을 들치기했다. 5500달러. 피해자측에서 처벌을 원했다. 저명 변호사를 고용해 화려하게 치장하고 재판을 받았다.

결과는? 480시간 사회봉사, 3년간 보호관찰, 벌금 3700달러. 피해변상 6355달러. 상습범인데도 배심원이 눈 지그시 감아줬다.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가관이다. 760달러 짜리 크림 색 상의를 도난당했던 마르크 제이콥스 사장이 스카우트해서 2012년 봄 컬렉션 모델로 전격 기용했다. 패션계는 들치기범 라이더의 몸값을 대폭 올려놨다. 덩달아 다른 업계에서도 모방했다. 한동안 들치기 광고가 유행했다. 다 한때였다. 좀도둑 버릇 어디 가랴.

같은 시기에 재판받은 어떤 아버지는 아들에게 주려고 30달러 짜리 모형 비행기를 들치기했다. 가난한 이 사람은 25년 금고형을 받았다.

베스 마어어슨(Bess Myerson)은 예순넷. 1988년 5월 27일 백화점에서 들치기하다 체포됐다. 욕실용 샌들 한 켤레와AA 건전지 한 상자, 플라스틱 귀걸이 두 쌍, 매니큐어액 4병이었다. 헝클어진 머리, 초췌한 얼굴에 현금 160달러를 소지하고 있었다. 그녀의 트레이드마크 아름다움과 품위는 없었다.

러시아에서 이민 온 유대인의 딸. 마이어슨은 뉴욕 빈민가에서 성장해 예술고를 다녔다. 뉴욕, 유대인 출신 최초로 미스 아메리카로 뽑힌 그녀는 유대인에 대한 반감으로 미스 아메리카 왕관을 내논 강단있는 여자였다. 이후, 방송계에서 성공해 공직에 취임했다. 1966년 뉴욕 시 소비자문제 담당관 시절. 부정식품, 불량상품과 전쟁을 벌였다. 불량품으로 떼돈 벌던 뉴욕 유력자들을 적으로 만들었다. 1982년 문화담당관 때 그 적대자들이 보복했다. 18년 전 런던 휴가 중 들치기 혐의를 폭로했다. 사직한 채 종적을 감췄다.

그러다가 이번 일을 저질렀다. 우군이 없었다. 적군이 아우성쳤다. 매장하라, 말살하라고. 형벌 제대로 치렀다. 빈곤과 유대인 멸시로부터의 탈출에 힘겨웠던 인생. 그 스트레스가 좀도둑을 만든 건가. 아직 생존해 치매로 고생 중이다.

1950년대와 60년대 영국 유명 방송인이었던 이사벨 바네트(Isobel, Lady Barnett)의 사례를 살펴보자. 그녀는 1953년 BBC의 한 방송에 대타로 출연했다가, 호평 받아 고정멤버가 됐다. 우아하고 재치가 돋보였다. 귀족출신은 아니었지만 귀부인의 전형이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Lady라 불렀다. 맑은 수정 같은 목소리가 사람들의 마음을 녹였다. 저녁 식사 후 느긋한 시간. 7살에서 일흔살 식구 모두 함께 듣기에 좋은 목소리였다.

바네트는 70년대 말 은퇴 후,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 살았다. 원래 의사 집안이출신으로 가업을 이을 양으로 의사됐으나, 방송계에 발 디디며 포기했다.

1980년 11월17일, 드디어 일이 터졌다. 그녀가 동네 식품점에서 참치 통조림 한 캔, 크림 한 곽, 모두 87파운드 어치를 들치기한 것이다. 이사벨 바네트는 물건을 반납하고 벌금 75파운드를 냈다. 1948년부터 20년간 동네 치안판사로 활동하기도한 그녀는 살면서 범법행위 단 한 번 저지른 적 없었다. 왜 그랬을까. 수수께끼다. 그녀는 범행 후 사흘 뒤인 11월20일 자살했다.

헤디 라마르(Hedy Lamarr)는 1966년 1월28일 53세의 나이에 로스앤젤레스 한 백화점에서 물건을 훔쳤다. 니트 상의 40달러, 속옷 10달러, 눈 화장용 붓 3달러, 축하카드 1달러. 배우로서는 남녀불문 첫 들치기였다. 검사는 처벌하고픈 생각이 별로 없었다. 배심원들이 검사의 기색을 읽었다. 면소(免訴) 판결했다.

왕년의 인기 덕 풀려난 헤디 라마르
그녀가 1991년 78세때 일이다. 동네 수퍼에서 또 좀도둑질을 했다. 잡지 한 권, 안약, 변비약 등 모두 21.48달러어치. 체포는 했으나 모두 처벌을 원치 않았다. 1년간 이 가게 출입하지 않는다는 서약을 했다. 그리고 면소됐다. 그 이후에는 다른 상점에 가서 들치기했다. 늦게 든 버릇 오래 간다더니 말릴 재간 없었다.

1930년대 대표적인 글래머 스타였던 그녀는, 나이도 많고 훔친 액수도 적다는 이유로 관대하게 처분을 받았다. 87세로 사망할 때 그녀 뜻에 따라 고향 비엔나에 유골이 뿌려졌다.

정신질환으로서의 훔치기질병은 프랑스 황제 루이 필립의 시종의사 C.C.H.Marc가 처음 주장했다. 1820년대였다. 물론 그 증상은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 유복하고 한가한 유한마담이 대상이었다. 이용가치가 별로 없는 상품을 훔치는 행위를 연구했다. 본능에 지배당하고 억제가 불가능한 그저 훔치고 싶은 성향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처벌은 계층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고급 주택에 살며 고급 백화점에서 비싼 물건을 들치기한 여자. VIP라며 쉬쉬 한다. 붙잡히면 절도벽으로 가정치료나 정신병원으로 보내진다.

슬럼가 공영 아파트에 사는 여인이 빵 집 앞에 내놓은 팔다 남은 빵을 훔치다 체포된다. 교도소 행이다. 차별이다.

들치기는 고객만이 아니다. 종업원도 좀도둑질한다. 미국에서는 연간 1백만명이 체포된다. 마리화나 사범 80만명보다 많다. 피해액은 500억달러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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