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겸 칼럼] 세월호만큼이나 안타까운 사건들

불법 외환거래 ‘변명’하는 재벌가와 연예인들

미국엔 선량한 사람들을 버린 흔적이 많다. 아프리카 흑인화물을 하역한 부두+팔린 경매장+일한 목화밭+그 밭 한 가운데의 대저택. 남부 곳곳에 널려 있다.

요즘 미국 논밭은 중남미 사람이 없으면 운영 못한다. 오렌지나 딸기를 비롯한 포도밭 일꾼이다. 대개 불법 입국자며 여인들은 강간에 저항 못한다. 밥줄 끊어지니까.

영국은 의외다. 산 사람 거래한 과거 애써 찾아야 나타난다. 없을 리는 없다. 17, 18세기 시골신사의 꿈은 노예무역을 통한 일확천금이었다.

첫 노예상인 존 호킨스는 1562년 서아프리카에서 노획한 300명을 아메리카에 배달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해적으로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와 해전에서 공을 세운 프란시스 드레이크는 호킨스의 조카다.

노예반대운동도 바로 이 무렵 시작됐다. 퀘이커 교도들이었다. 생각해 보라. 인간 양심이 어디 가 있는가. 인간 비리가 발생한 그때 그곳에 있었다. 움켜쥐어 파멸하고 기부하여 영생하고 돈이 흘러간 길, 부의 이정표 따라가면 거기 흥망이 나온다. 1660년 창립한 아프리카회사(the Company of Royal Adventurers Trading to Africa)는 인간매매이 주된 교역이었다. 주주명부 보면 사람 사고 판 부자들이 나온다.

복음전도회(the Society for the Propagation of the Gospel in Foreign Part)도 동참했다. 바베이도스 플란테이션에서 흑인노예 665명을 부렸다. 해외선교 단체가 복음전파 위해 노예의 땀과 피를 우렸다.

산업혁명 전 영국 부자는 노예상인이었다. 노예선 선주였다. 노예 하역하는 항만과 노예 보관하는 창고 소유자였다. 노예를 이용한 농장주였다. 생명을 훔친 이들의 저택은 폐허가 됐다. 돈 주고 산 의원직은 한때뿐이었다. 자손이 재산을 탕진했다.

브리스톨 시내 광장. 에드워드 콜스턴의 동상이 서 있다. 학교와 교회 많이 지었다. 그가 노예상인이라고? 전혀 모른다. 고향 위해 아낌없이 쓴 통큰 기부자였다. 그의 이름을 딴 동네와 길이 있다.

콜스턴과 동향사람 에이브라함 엘튼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무료치료소를 운영하고 장학금도 내놨다. 도로도 건설했다. 노예상인의 악취가 거의 나지 않는다.

이제 눈을 한국으로 돌려보자. 서민 등치는 도둑질이다. 1380억원을 44명이 불법 외환거래해 1인당 31억원. 평생 번 돈 다 모아도 못 만질 거액이다. LG 회장 여동생, 고 정주영 회장 딸, 이수만과 한예슬도 이름을 올렸다. 보통사람은 눈씻고 찾아도 없다. 67억원을 경비로 썼다고 신고했다. 여배우 송혜교는 3년간 경비로 67억원을 썼다고 한다. 그 중 13억원은 서류가 있다고 한다. 연예활동이 뭐냐? 한 해 비용이 22억이란다. 이게 ‘억!’ 소리다.

100억원 세금 탈루설의 남자배우를 비롯해 하는 말은 다 비슷하다. 단순 누락-오류-실수-나중에 낼 거 다 냈다-법률상 책임 없다. 그 여자는 “세무사 실수야! 손해배상 청구하겠다”고 했다. 세무장이가 어떤 부류인데 몇억-몇 십억 실수를 한다고?

10조5500원에 낙찰. 공시지가 1조4837억에 평가액 3조 3346억원 땅의 세 배 가격이다. 통 큰 결단이라고? 땅값, 집값만 버블이다. 가격교란사범인 셈이다. 서민 꿈 훔치고 싹둑 자른 희망 약탈범이다.

45살 이병헌 유부남 배우는 스무 살 아래 여성과 제한된 공간에서 만났다. 키스하고 입술 훔쳤다고 한다. sexual 메시지 보내고, 만나서 술 마시고 즐겁게 놀았다. 즐거운 만남 가진 죄 면하려고 협박으로 고소. 중형 바란다는 의견서도 낸 작자다. 결국 실형 살게 만들었다. 야비하다. 한국의 가졌다는 부류와 유명하다는 족속의 뻔뻔함이다.

건강보험 꼬박꼬박 내고도 병원 못가본 딸들

비례(非禮)라 통감한다. 세 모녀 죽음에 용서 빌며 쓴다. 송파구 석촌동 단독주택 지하 셋방. 누렇게 뜬 벽지. 그 위에 부부와 두 딸 가족사진이 걸려 있다. 아버지 생존 시 화목한 모습이다.

어머니 나이 육십, 남편이 암으로 세상 떴다. 그때가 마흔여덟. 허드렛일로 12년 버텼다. 한 달 전 식당 일 마치고 오다 낙상해 허리를 다쳤다. 일 못나가게 되자 고정수입이 끊겼다. 큰 딸 서른다섯, 한창 좋은 나이 스물셋에 아버지가 작고했다. 아버지 병 간호에 바친 젊음, 긴장 풀린 탓인가. 두 해 후 스물다섯에 당뇨병과 고혈압에 걸리고 말았다.

둘째 막내딸 서른 둘. 황금 같은 중고교 시절을 아버지 암 투병과 더불어 자냈다. 스물 되자 빚 남기고 저 세상으로 가셨다. 딸들은 신용불량자가 됐다. 제대로 된 직장인들 잡겠나. 더 이상 어떻게 살아갈 재간이 없었다. 막다른 길.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방문과 창문 틈새를 테이프로 막았다. 이불 두 채 반듯이 깔면 발 디딜 틈 없다. 번개탄을 피우고 나란히 누웠다. 기르던 고양이도 옆에 뉘었다. 2014년 2월 26일 밤 9시26분 발견됐다. 한 주일이 지난 후였다.

없는 사람이 제도에 희생된다. 흰 봉투를 남겼다. 누가 썼을까? “주인 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큰 딸이 썼을까? 아니면 작은 딸? 무슨 생각하며 썼을까.

봉투 안에 현금 70만원이 들어 있었다. 보증금 5백만원에 사글세를 살았다. 문제 한번 일으킨 적 없는 세 모녀였다. 공과금 한번 밀린 적 없었다. 빌어먹을! 이게 대한민국, 우리들의 나란가.

건강보험료 5만140원 매달 꼬박꼬박 냈다. 그러면서도 병원 제대로 가보지 못한 딸이었다. 돈 더 내는 약이야 어찌 감히.

소득 없어도 월세 낸다고 보험료 매긴다. 근근이 아르바이트로 살아도 보험료 내게 하는 게 정상인가. 게다가 가족 수에 대해서도 부과한다니. 이게 어디 국민보험인가.

국민건강보함공단 이사장 3년 했다는 작자는 그만 두면서 자기는 피부양자라 0원을 냈다. 세 모녀는 피부양자가 아니라 그렇게 내는 걸 알았다고? 철면피다. 소유는 낯가죽 두껍고 창피 모르는 후안무치 만드나.

이사장 자리 3년이나 있으면서 뭐 했나. 건강보험료 내면서 당뇨와 고혈압 앓으면서도 병원과 약국 못간 큰딸. 허리 다쳐 일 못나가는 지경이 된 그 엄마. 죽음으로 몬 나라의 죄 방조자. 공단 이사장으로 호의호식한 자. 그만 두고서도 건강보험료 한 푼 안낸다 한 그 배부른 자. 그 사실을 자랑스럽게 떠든 자.

월급 축낸 시위소찬(尸位素餐). 놀기만 한 부작위(不作爲) 숨긴 문과식비(文過飾非). 속 뒤집히게 하는 비위난정(脾胃難定)이다. 국회는 사후약방문. 꼭 죽어야 일한다. 인간법정이 언도하는 형벌 안 받는다. 하늘이 내리는 천벌 피할 거 같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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