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은 홍콩인의 통치를 원한다
홍콩은 홍콩인이 다스려야 한다. 홍콩의 시위는 1987년의 한국 시민혁명을 따르고 있다. 1987년 시민혁명은 한국 민주화의 절정이었다. 4.19학생혁명, 5.16군사혁명에 이은 시민혁명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제 곧 홍콩에서는 1987년의 한국 시민혁명에 버금가는 혁명이 일어날 것이다.
문제는 홍콩인은 중국인이라고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와 합친 것이 1707년인데 스코트는 아직도 정서적으로는 이탈을 원한다. 하물며 홍콩은 1842년에 영국에 병합되었다. 당시 보잘 것 없는 어촌을 세계적 무역중계기지로 만든 영국의 제국경영은 대단하다. 1949년 10월 1일을 기하여 중국은 다시 일어섰다. 마지막 홍콩 총독 크리스 패튼이 영국기를 거두어 홍콩을 떠날 때의 비감한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이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대영제국의 최종적 끝을 표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영국은 제국주의의 민완(敏腕)한 대목을 찔러 놓았다. 등소평의 약속대로 일국양제(一國兩制)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을 홍콩 시민들에게 교육시켜 놓았던 것이다.
중국의 전현직 지도부-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이 모두 모였다. 중공의 정권유지를 위해서 절체절명의 과제인 부패척결을 위한 시진핑의 개혁을 지지하는 모양을 연출하고 있지만, 이보다는 홍콩사태를 눈앞에 둔 중국공산당의 총체적 위기의식을 표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시진핑은 홍콩 행정장관의 직선을 요구하는 720만 홍콩시민의 요구를 용인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로서는 이런 입장을 취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영국으로부터 홍콩을 반환받을 때 약속한 일국양제는 대만의 흡수까지 염두에 둔 등소평의 중국통일 대계(大計)인데, 홍콩의 이탈을 용인하였다가는 개혁 개방을 하다가 보수파의 역풍 쿠데타를 만난 고르바초프 모양이 될 것이기 대문이다.
중국공산당은 서구식 민주주의을 수용하지 않는다. 문제는 거의 200년 동안 영국의 지배를 받아온 홍콩인들은 민주주의에 익숙하며 중국식 정치를 심정적으로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공 정치국 상무위원들의 진용은 서구식 민주정치에서는 쉽게 구하기 어려운 효율적 인재 발굴과 등용의 성과이다. 요즘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도력의 혼란은 페리클레스가 2500년 전에 갈파한 민주정치의 온갖 폐해와 약점을 노정하고 있는데 비해, 7인의 대통령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건실한 정치국 상무위원들의 면모는 분명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미 데모크라시에 익숙한 국민이 중공(中共)의 방식을 본받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홍콩에 이어 중국의 권력이양(devolution)은 어디가 될 것인가? 앞으로 백년 이내에 한족과 말과 종교가 전혀 다른 티베트, 위구르의 이탈은 불가피할 것이다. 일찍이 대만 이등휘 주석의 ‘중국 7분론’-중국 본부의 내륙과 해안, 만주, 몽골, 티베트, 위구르, 대만-은 탁견이었다. 홍콩의 민중 시위를 대만 시민들이 지지하고 있는 것은 홍콩의 문제가 바로 대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만인은 중공도 아니고, 국민당도 아닌, 대만인에 의한 정부를 원한다.
홍콩은 홍콩인에 의한 통치를 원한다. 그 이상의 명분과 논리는 없다. 앞으로 중국은 계속 시끄러워질 것이다. 그 사이에 우리는 통일을 해야 한다. 김국헌/ 예비역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