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의 직필] 이용훈 청문회 제대로 했더라도 안대희 사퇴?
평생에 여러 자리를 지냈지만 이것들은 어디까지나 직(職)이요 자신이 줄곧 추구해온 업(業)은 ‘콘텐츠의 창조’였다고 광주의 문화기술연구소 정진홍 소장(전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담담하게 술회하는 것을 들었다. 청와대 비서실에서 지켜본 국정운영의 파노라마도, 커뮤니케이션 박사학위를 취득하면서 얻은 지적 풍요도, 스페인의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얻은 ‘멈춤의 미학’도 모두 콘텐츠의 창조라는 문제의식의 장(場)이었을 따름이다. 그는 이 모두를 과학기술로 융복합하고 있다.
이러한 철학을 바탕에 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대법관을 마치고 5년간 60원억을 번 이용훈을 대법원장 인사청문회에서 더 준엄하게 추궁하여 법조인의 자세에 대해 바른 좌표를 설정하였더라면 이번 안대희의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한국이 아직도 후진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처럼 나라의 기본을 세우는 일에 기왕(旣往)에 철저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과거 일본군에서는 중좌 이상을 군인이라고 하였는데 평생을 일관하여 나라를 지키는 것을 業으로 하는 무인(武人)을 말한다. 군복을 오래 입었다고 모두 군인이 아니다. 러일전쟁에서 졸렬한 작전으로 많은 부하를 희생시킨 노기(乃木)대장이 군신(軍神)으로 불리운 것은 평생을 전사장병들 유족을 찾아 위로하다가 明治천황이 붕어(崩御)하자 그와 같이 순사(殉死)한 것이 깊은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다. 신춘문예에 당선하여 등단한 사람이라고 다 문인(文人)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한국에서는 서정주, 이병기, 박경리, 김주영 등이나 들 수 있을까 황석영, 조정래, 김홍신도 ‘아직은’ 하고 손을 내저을 것이다. 직(職)만이 있고 업(業)에 충실하지 못한 사람들이 직(職)을 쫓아 다닌다. 평생을 하나의 業에 매진하였는가는 누구보다도 자신이 제일 잘 안다.
영국에서 A level, 불란서에서 바칼로레아, 독일에서 아비투어는 대학 공부를 할 필요가 있고, 또 할 수 있다는 인증(認證)이다. 불란서에서 바칼로레아 문제가 발표되면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되며 새삼 자신을 천착(穿鑿)해 보는 계기가 된다. ‘역사는 인간에 오는 것인가?’ ‘관용의 정신에도 비관용이 포함되어 있는가?’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하여 거짓말을 할 수 있는가?’ 등등. 이들 화두(話頭)를 들고 이루어지는 자신과의 끊임없는 대화가 사회를 살찌운다. 이번 보수 후보자의 난립으로 전교조 출신 교육감들이 대거 당선되었다는데 그들이 이런 충실(忠實)하고 창조적 사고를 할 수 있는 학생을 배출하고자 하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고 행감(幸甚)이나, 철 지난 주의자(主義者)들의 앞잡이가 되어 밥그릇 싸움이나 한다면 걱정이다.
법조인, 정치인, 군인, 문인, 의사, 모두 profession으로서 평생을 경영할 수 있는 業이다. 옆을 기웃거리며 職이나 쫓는 자들은 業으로 대성할 자신이 없는 자들이다. 職은 언제고 바꿔 입을 수 있는 옷과 같다. 그러나 業은 평생을 가는 본체(本體)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패가망신(敗家亡身)하는 자들은 자기의 業을 제대로 찾지 못한 사람들이다.
평생을 자신의 業을 찾아 정진하는 사람들이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이다. 국가개조는 이런 철학적 바탕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런 인물들을 발탁(拔擢)하고 고무(鼓舞)하는 것이 국가운영과 사회구성의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