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의 직필] “국정원장 인사, 삼성 본받아라”

총리 인사청문회를 두고 방송에 나온 평론가들은 ‘국민의 소리’를 자주 들먹인다. 무슨 근거와 자격으로 그렇게 쉽게 ‘국민의 소리 운운’ 하는가? 여론조사는 하나의 참고자료일 따름이다. 국민의 소리는 투표로 나타난다. 광주광역시장 선거에서 여론조사와 투표결과는 정반대로 나왔다. 국민을 대표하여 청문(聽聞)의 책임과 권한을 가진 것은 국회다. 국회에서 청문을 해보지도 않고 함부로 ‘국민의 소리’를 팔고 있는 것은 ‘선결문제 해결의 오류’다.

007영화로 알려져 있는 영국의 MI-5, MI-6는 미국, 이스라엘과 더불어 세계최고 정보기관이다. 그러나 일반인은 그 수장(Director)이 누구인지 모른다. 알 필요도 없다. 이를 두고 ‘국민의 알 권리’를 내세우며 따지는 영국인은 없다. 정보기관은 비밀봉사(secret service)가 본령이라는 것을 영국인이라면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수장은 한참 지난 후 신문 부고(訃告)에 Sir. X 로 조그맣게 나올 뿐이다.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지향한다’는 옛 중앙정보부(국가정보원) 부훈(部訓)은 정보기관의 정곡(正鵠)을 짚은 것이다. 수장의 능력은 정보기관의 능력으로 그 자체가 최고의 국가기밀인데 이들의 성품과 능력을 청문회에서 온통 발가벗기는 것을 보고 온 세계가 웃는다.

한국의 정치가 아직 기본이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이런 것을 말함이다.

정보기관을 세칭(世稱) 권력기관이라고 한다. 그 힘이 어디서 나왔는가? 판단에 대한 권력자의 신임에서 나온다. 기획판단을 하는 부서가 1국인 이유이다. 1국에서는 I.O.(정보관)이 수집해온 자료를 종합하여 특보(特報)를 만들고 부장(원장)은 정례적으로 대통령과 독대를 한다. 국정원장의 권력은 여기에서 나왔다. 이런 구조상 시군구 I.O.들도 관내에서는 막강하였다. 심지어 판사, 검사도 이들의 눈치를 보았다. 이제 이런 관행은 많이 시정되었다고 하는데 아직 두고 볼 일이다.

국정원장과 차장은 정무직이라 하여 외부에서 임명해 왔는데 이 방법도 근본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 자리를 외부에서 넣는 것은 권력이 이를 선호하였기 때문이다. 그중에도 기조실장은 막대한 자금을 주무르며, 인사권을 행사하므로 제 사람을 박는 통로로 매우 편리하다. 김영삼의 집사 김기섭이 좋은 예이다. 직원들은 본업은 팽개치고 권력에 줄을 서는데 온갖 정신을 쏟는다. 정보기관이 능률이 떨어지게 된 것은 다른 사람을 탓할 것이 하나도 없다. 바로 역대 대통령들이 문제의 근원이다. 동시에 문제를 풀 수 있는 유일한 자리이기도 하다.

이제는 원장과 차장도 내부에서 발탁하는 시스템을 냉정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는 대통령만이 아니라 범국가적인 위원회를 통하여 다루어야 한다. 미국의 CIA가 환골탈태(換骨奪胎)하는 계기가 되었던 Tower Commission을 참고 삼았으면 한다. 국가를 위한 봉사라는 정신에 투철한 정보기관은 군과 마찬가지로 서로를 평가하는 시스템과 전통이 정립되어 있다. 누가 원장감이고 차장감인가는 이들이 제일 잘 안다. 여기에도 한국최고 기업인 삼성이 내부에서 인재를 키우고 발탁하는 것을 눈여겨보면 될 것이다. 그들은 오로지 최고가 되어 세계에서 살아남는데 한몫 할 수 있는 인재, 또는 그렇게 길러질 수 있는 재목만을 선별하여 길러내는 것이다. 이병철과 이건희의 인재제일(人才第一)의 철학이 이룩한 성과를 보라. 반드시 과정과 방법도 함께.

어느 조직이나 자체적으로 충분히 검증(檢證)된 인재를 발탁하는 것이 가장 투명하고 효율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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