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헌의 직필] ‘객주’ 김주영의 ‘양의 해를 위한 기도’

일제시대 홍명희 작품 <임꺽정>은 우리 말 어휘가 풍부하기로 유명한 秀作이다. 홍명희가 월북한 래 남은 국내작가들은 그를 넘어서야 한다는 콤플렉스를 가져왔다. 황석영의 <장길산>, 조정래의 <태백산맥>은 가히 임꺽정에 버금갈만하다고 할 것이다. 김주영의 <객주>도 같다. 객주는 1979년부터 1982년에 이르기까지 서울신문에 연재된 대하소설이다. 정감록에는 전란을 피할 수 있는 곳을 10승지라 하여 영월, 봉화, 풍기, 예천, 상주 유구, 무주 등을 꼽았다. 김주영은 청송 태생인데, ‘보라 빛 석산’ 주왕산으로 유명한 청송도 ‘육지의 섬’이라 할 만큼 외진 곳이다.

<객주>는 이효석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 나오는 보부상, 장돌뱅이들의 생활을 소재로 한 것인데 이들은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신분사회에서 가장 바닥에 있는 서민이다. 이들은 박경리의 <토지>에 나오는 개성상인과는 다른 부류였다. 조선 말기 임오군란이 터져 나오지 않을 수 없는 정치 혼란, 민생 피폐 등 암울한 시대를 배경으로 서민들의 애잔한 생활을 그려냈는데, 우선 여기에 사용된 어휘가 놀랍도록 풍부하다. 이병주의 <바람과 구름과 비>와 같이 이야기를 전개하는 솜씨도 탁월하며 아홉 권에 달하는 부피도 압도적이어서 가히 박경리의 토지와 더불어 근세 우리 민족의 숨결을 담은 대하소설이라고 할만하다.

원단(元旦) 조선일보에 실린 신년 시론에서 그는 소름끼치리만큼 날카롭게 현실을 후벼낸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낭만만이 아니다. 더불어 가슴을 뜨겁게 하는 감동이 없는 사회를 살고 있다. 온 나라가 감동으로 들떠 있을 때도 있어야 신바람이 날 텐데 우리에게 그런 경험을 한 기억이 별로 없다. 심금을 울리는 언어조차 들어본 적이 없다. 넘쳐났던 유머도 온데간데 없어지고 말았다. 바늘 쌈지를 입에 물고 있는 것처럼 상대방의 가슴을 향해 발사되는 폭뢰처럼 발사되는 언어만 우리에 회자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범죄영화에서처럼 보복할 상대를 찾아 부라린 두 눈에 식칼을 가슴에 품고 어두운 골목길을 배회하는 사람들이 되고 말았다.

비틀어 물지 않으면 정치가 안 되고, 걷어차고 엇박자 놓고 삿대질에 멱살잡이하고 법은 안중에도 없을 뿐 아니라 허접쓰레기처럼 여기고 이념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고 협박하는 자들만 거리를 메운다. 언어는 그 사람의 품격과 줏대와 명예를 품고 있어야 한다. 그런 고귀한 언어를 우리는 언제부턴가 퇴행적 막말과 욕설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김주영은 다행히 다음의 축복과 다짐으로 ‘양의 해를 위한 기도’를 마치고 있다.

다른 사람이 기뻐하는 것을 보고 좋아하는 사람은 가치관이 뚜렷하게 확립된 사람이고 인간적으로 성숙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의 말과 행동은 언제나 감동을 준다. 새해는 양(羊)의 해다. 죽을 때까지 목양견(牧羊犬)에 쫓기고 조롱당하면서도 초원을 유유자적하는 양떼처럼 어려운 가운데 살벌하게 살아가지만 때로는 낭만에 젖어보고 감동받을 일을 찾아보며 사소한 것에도 시선을 돌려 고쳐나갈 줄 아는 혜안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은혜의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우리들 일상에 진열되어 있는 희망과 은혜를 찾아내자.

새해에는 좀 더 말을 귀하게 쓰자. 말의 연금술사로서 작가는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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