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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국의 고전에서 묻다⑦] 권력은 어디에서 나오고 어디에서 멈추는가-존 로크의 ‘통치론’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에 이어 존 로크를 살펴보는 이유는 분명하다. 홉스가 “평화를 위해서는 강력한 주권이 필요하다”고 했다면, 로크는 그다음 질문을 던진다.

“국가가 강력해진 뒤 오히려 우리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존 로크의 《통치론》(1689)은 바로 이 문제를 다룬다. 로크 역시 자연상태와 사회계약에서 출발하지만 홉스와는 다른 길을 간다. 홉스에게 국가를 만드는 이유가 죽음과 무질서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데 있다면, 로크에게 정치공동체의 목적은 인간의 생명·자유·재산을 보다 안전하게 보존하는 데 있다. 국가와 정부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다.

로크에게 자연상태의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다. 인간은 이성을 통해 자연법을 알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생명과 자유, 재산을 함부로 침해해서는 안 된다. 인간은 본래 서로에게 예속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로크는 이를 신학적으로 설명한다.

“인간은 모두 한없이 지혜로운 조물주의 작품이며, 모두가 탁월한 주인의 하인들로서 그의 명령에 의해 그의 사업을 위해 세상에 보내졌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말로 옮기면 간단하다. 사람 위에 본래부터 군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여기서 자연권이 나온다. 생명과 자유, 재산에 대한 권리는 정부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정부보다 먼저 존재한다. 정부는 이 권리를 만들어주는 기관이 아니라 보호해야 하는 기관이다.

로크에게 자유는 법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정부 하에 있는 인간의 자유는 그 사회 내에 설립된 입법권에 의해 제정되고 그 사회의 모든 사람이 공유하며 살아갈 불변의 규칙을 갖는 것이다.”

자유란 내가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자의적인 의지에 종속되지 않고, 미리 정해지고 공표된 법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자유다. 법은 자유의 적이 아니라 자의적인 권력으로부터 자유를 지켜주는 장치다.

로크의 정치철학에서 재산권도 중요하다. 자연은 모두에게 공유된 것이지만 인간은 자신의 몸과 노동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 따라서 자신의 노동을 자연물에 결합하면 그에 대한 소유가 생긴다. 1689년에 출간된 《통치론》에는 “신이 내린 공유물에 자신의 노동을 가한 것은 그 자신의 소유이다”라는 취지의 설명이 나온다. 다만 소유에는 한계가 있다.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이상으로 취해 다른 사람의 몫을 없애서는 안 된다. 로크에게 재산권은 결국 자신의 몸과 노동에 대한 권리에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왜 정부가 필요한가. 인간이 자연상태에서도 자유롭고 평등하다면 굳이 정부를 만들 이유가 있을까. 로크의 답은 자연법을 안정적으로 판단하고 집행할 공정한 기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스스로 재판관이 되면 편파적인 판단이나 과도한 보복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정치공동체를 만든다.

정부의 권력 역시 이 목적을 벗어날 수 없다. 로크는 정치권력을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권리로 설명하면서, 그 권리는 “오직 공공의 이익만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통치자는 마음 내키는 대로 통치할 수 없다. 법은 공표되고 지속적이어야 하며, 통치자 역시 그 법의 한계 안에서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 이것이 로크가 말하는 제한된 정부다.

그렇다면 그 권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로크에게 궁극적인 정치권력의 근원은 인민이다. 입법권은 통치자가 본래 가지고 있는 권리가 아니라 인민이 공동체의 안전과 이익을 위해 맡긴 권력이다. 따라서 통치자는 권력을 내려주는 사람이 아니라 인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사람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그 신뢰를 저버리고 인민의 생명과 자유, 재산을 침해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로크는 인민에게 정부를 교체하거나 새 정부를 구성할 권리가 있다고 본다. 정부가 자신의 목적을 배반했다면 인민은 새로운 정치질서를 세울 수 있다. 이것이 로크의 저항권이다.

여기서 권력의 목적을 이해하기 쉽게 영화 한 편을 소개한다. 제임스 맥테이그 감독의 《브이 포 벤데타》(2005)다. 이 영화는 국가의 안전과 질서를 명분으로 권력이 개인의 자유를 통제하는 미래 영국을 배경으로 한다. 국가는 질서를 지켜준다는 이유만으로 어디까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로크의 《통치론》과 맞닿아 있다.

로크에게 정부의 권력은 인민에게서 위임받은 것이며, 그 목적은 생명과 자유, 재산을 보호하는 데 있다. 따라서 정부가 그 목적을 벗어나 개인의 권리를 침해한다면 그 권력의 정당성 자체를 다시 물을 수 있다. 영화 속 인물들의 선택을 로크의 저항권과 그대로 연결할 수는 없지만, 권력에 복종해야 하는 이유와 권력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어디에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함께 볼 만하다.

홉스에서 로크까지 오면 정치철학의 질문은 한 단계 달라진다. 홉스가 “무질서를 막기 위해 얼마나 강한 국가가 필요한가?”를 물었다면, 로크는 “그 국가가 우리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도록 무엇이 권력을 제한하는가?”를 묻는다.

결국 《통치론》이 던지는 질문은 권력은 어디에서 나오며, 어디에서 멈추어야 하는가이다. 홉스가 국가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면 로크는 국가의 한계를 이야기한다. 정부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는 순간, 우리는 동시에 정부가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가를 묻게 된다.

존 로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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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국

문화비평가, 서양고전극연구소장,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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