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

제사는 산 사람의 잔치…부모님 기억하며 나눈 음식과 와인

부모님을 추모한 뒤 밥상에 둘러앉아 음식과 와인을 나누는 가족. 제사의 의미가 함께 기억하고 안부를 나누는 자리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AI 생성 이미지>

음력 팔월 스무닷새, 아버지 기일이었다. 몇 해 전부터는 아버지 기일에 어머니 제사도 함께 모시고 있다. 형제들도 모두 늙어 가고 있는데 두 차례 나누어 지낸다는 것이 좀 힘들게 느껴져 부모님께 그리 고하고 제사를 합친 것이다.

제삿날을 아버지 기일로 정한 것은 아버지께서 먼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유명을 달리하신 지도 스물두 해가 되었다. 어머니께서 타계하신 지는 올해로 꼭 십 년이다. 두 분이 세상을 떠나신 지도 제법 되었는데, 문득문득 고향 집에는 여전히 두 분이 계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떤 때는 그렇게 계시는 어머니가 느껴지기도 한다.

제사 준비는 여전히 아내 정원님의 몫이다. 요즘은 우리 삼남매가 제사에 쓸 음식을 나누어 해 와서 일이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런저런 일들이 적지 않다. 특히 미리 식혜를 준비하고 전을 부치고 생선을 찌는 일 등이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제사 때 내가 주로 하는 일은 창고에서 제사에 쓰는 그릇(祭器)을 꺼내 오고 병풍의 먼지를 털고 지방(紙榜)을 쓰는 것과 밤을 깎는 것 등이다. 특히 매번 생밤 깎는 것이 귀찮아 미루어 두곤 하는데, 이번에도 여동생이 밤을 깎았다. 지방 쓰는 것도 전에는 붓으로 썼는데, 어제는 만년필로 썼다. 평소에 내 게으름을 아시는 분들이시니 정성이 부족하다고 크게 나무라시지는 않으리라 싶다. 우리 집 기제사 때에는 축문(祝文)을 따로 쓰지 않는다. 대신에 잔을 드리고 절을 올릴 때 저마다 고할 일이 있으면 소리 내어 아뢰는 것으로 한다.

제수를 장만하는 것은 여자들이 하는데, 제사 때 잔을 올리고 절을 하는 것은 통상 남자들만 해 오는 것이 옳지 않다는 생각에서 우리 집 제사나 문중의 묘사(墓祀, 時祭) 때는 부부가 함께 하도록 하고 있다.

이번 제사에는 마침 연휴라 서울에서 조카가 내려왔다. 지난해에 혼례를 올려 출가한 조카는 다음 대의 제사를 이어갈 차례인데, 내가 조카에게 물었다. “큰아빠가 제사 모시는 것이 힘이 들면 네가 제사를 이어받아야 하는데, 네 생각은 어떻냐. 제사를 지내도 되고 지내지 않아도 괜찮다. 편한 대로 생각해라.”

그랬더니 자기는 제사를 이어가겠다고 한다. 그러면 아내하고 잘 의논해서 아내도 동의하면 그렇게 하라고 말했다. 그렇게 조카가 제사를 이어가겠다고 해서 간략하게 제사를 차리는 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준다.

나는 해월 선생의 향아설위(向我設位)에 전적으로 공감하고 그 뜻을 따르고 싶어 하지만 여전히 병풍 앞에 지방을 붙인 신주(神主)를 모시고 절을 올리는 형식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유교식 종교 형식이기보다는 하나의 전승 문화라 여기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사 문화 또한 우리 대에서 끝날 것이라 여겨 내 아래 대까지 이어가야 한다고 하지는 않는다.

제사상을 차리는 제수 진설법은 지방이나 문중과 집안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그래서 가례(家禮)인 것이다. 형편과 취향에 따라 먼저 가신 이를 추모하면서 마음을 모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우리 집 제사에서 조금 특이한 것은 제수로 육고기를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제사를 주관하실 때는 다른 집처럼 쇠고기, 돼지고기 등 육고기를 올렸는데, 내가 제주가 되면서부터 육고기는 제사상에 올리지 않고 있다. 그런 까닭은 내가 육식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는데, 제사를 주관하는 내 마음에 육식에 대한 꺼림이 있는데 그걸 올린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조카에게 네가 제사를 모시게 되면 그때는 무엇이든 가리지 말고 제사를 지내는 너희들이 먹고 싶은 것은 제사상에 올리라고 말해 준다. 제사 또한 산 사람이 우선이니 제사상이 제사를 지내는 이들의 잔치상이 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다.

이번 제사상에는 떡과 빵을 함께 올리고 제주(祭酒)로 청주 대신에 와인을 썼다. 그래서 잔도 와인잔으로 올렸다. 제주를 준비하다가 얼마 전에 큰애가 가져온 와인이 생각났다. 그래서 이번 제사에는 청주 대신에 와인을 제주로 쓰기로 한 것이다. 평소 아버지께서는 주류를 구분하지 않고 즐기셨기에 내가 와인을 올린다고 해서 괘념치 않으리라 싶었기 때문이다.

제사의 마무리로 와인을 돌려 가며 마셨다. 나는 이 마지막 음복(飮福) 의식이 제사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부모와 조상의 혼이 마셨던(깃들어 있는) 그 술을 제례에 참석한 이들이 모두 함께 나누어 마신다는 것은 가톨릭 미사의 영성체와 같다는 생각인 것이다. 어쩌면 이 음복은 조상과 후손, 이승과 저승을 이어 주는 의식일지도 모르겠다. 이 음복 의식을 마지막으로 제사는 마무리되고, 이 음복을 시작으로 이제부터 산 자들의 잔치가 시작된다.

제사를 명분으로 따로 지내던 형제들이 함께 모여 얼굴을 마주하며 안부를 나누고 밥과 술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이 제사라는 관습도 그리 나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새삼스레 든다. 이런 관습 또는 의례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우리 대에서 이런 형태의 제사는 거의 끝날 것이라 싶다. 그러나 제사의 의미만은 이어질 수 있으면 좋겠다.

해월 선생의 향아설위처럼 밥상을 중심으로 모여 추모하는 그런 자리가 이어질 수 있기를 마음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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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시인, 생명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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