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저구항에서 만난 수국, 꽃과 도반이 함께한 하루

수국은 초여름의 대표적인 꽃 가운데 하나다. 대체로 6월 중순에서 7월 중순 사이가 이 꽃을 볼 수 있는 기간이다. 거제 저구항 일대는 남해안 지역에서 수국꽃으로 이름난 곳으로, 해마다 유월 하순경에 이 마을을 중심으로 수국 축제를 열고 있다. 올해 이곳 수국 축제는 6월 27일(토)부터 6월 28일(일)까지였다.
내륙성 기후대인 우리 집 숲마루재와 그곳 남해안 지역은 꽃 피는 시기도 열흘 정도 차이가 난다. 우리 집에 수국이 몇 송이 피는 것을 보고 이제 그곳은 만개했으려니 싶어, 어제 통영의 임처사 내외와 함께 찾았다. 지난해에도 비슷한 시기에 찾았는데 그때는 수국이 만개 수준을 지나 벌써 지고 있는 상태였다.
올해도 그러면 어쩌나 하며 달려갔더니 예상과는 달리 수국이 이제 막 피어나고 있었다. 수국 축제의 날이 지나서야 꽃이 피고 있는 것이었다. 아마도 장마가 늦게 시작되고 유월 중순 이후의 기온이 예년보다 낮아 꽃도 뒤늦게 피어나는 모양이었다.
꽃이나 자연은 인간이 만든 달력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 변화하는 때에 맞추어 움직이는 것임을 새삼 생각한다. 그것이 자연의 ‘스스로 그러함’, 그 ‘절로’의 의미가 아닐까 싶다.
뒤늦게 피어나는 수국이 해맑고 생기 넘친다. 만개한 상태보다 이제 막 피어나는 그 맑고 생기 충만한 모습이 더 아름답게 다가온다. 마치 어린아이의 자태 같은 순수한 아름다움이다.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한 수국의 자태를 담고 싶었는데, 하늘이 흐리고 바다를 함께 담을 수 있는 곳이 없어 아쉬웠다. 그러나 임처사 내외와 함께 초록으로 눈부신 거제 해안선을 따라 오가며 즐길 수 있어 참으로 기분 좋은 나들이였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함께 나들이하고 밥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도반이 있어 좋다.
마침 임처사 부인이신 팔리어 전공학자 우빼카님이 올해부터 팔리어로 된 부처님의 초기 경전을 중심으로 그 의미를 풀이하는 유튜브 ‘담마 산책’을 시작하게 되어 그것을 주제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 우리가 보통 접하는 부처님 말씀을 담은 경전들은 대부분 부처님 당시의 말씀을 산스크리트어로 옮기고 그것을 다시 한문으로 번역한 것을 우리말로 풀이한, 3중의 번역 과정을 거친 것들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흔히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처럼 서로 다른 언어로 여러 차례 옮겨지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오류를 바로잡아 부처님의 원음(原音)에 다가가고자 하는 것이 팔리어 역경 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부처님 당시 일반인들이 사용하던 언어가 바로 팔리어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팔리어 전공자가 팔리어 경전을 풀이하고 그에 담긴 본래의 의미와 용례를 깊고 자상하게 풀이하여 전해주는 이 ‘담마 산책’은 건성으로 경전을 읽을 때와는 그 뜻과 깊이가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이렇게 말씀을 전해 들을 수 있는 것 또한 고마운 인연이 아닐 수 없다. 관심 있는 분들의 시청을 권한다.

수국의 꽃말은 색상에 따라 다르게 전해지지만, 가장 대표적인 꽃말은 ‘진심’, ‘변덕’, ‘처녀의 꿈’이라고 한다. 수국은 토양의 산성도에 따라 꽃의 색깔이 변하기 때문에, 이러한 특성 때문에 ‘변덕’이라는 꽃말이 붙은 것이라 싶기도 하다. 글쎄, 나는 이 꽃말들에 별로 공감되지 않는다. 차라리 ‘천진난만’, ‘동심’, ‘소녀의 꿈’ 등이면 좋겠다.
돌아오는 길에 임처사님이 자기 농장에서 수확한 농작물이라며 한 상자를 실어준다. 토마토, 고추, 마늘, 호박에 참외까지 담겨 있다. 나도 텃밭을 가꾸고 있지만 매번 이리 신세를 지고 있다. 하긴 나는 말로만 하는 코치인데 비해 임처사님은 필드에서 직접 뛰는 현역 선수가 아닌가. 선수가 가꾼 것을 주는 대로 사양 않고 감사히 받아 왔다.
오늘 도반 내외와 싱그러운 수국꽃도 보고 남해안의 진초록 해안길도 달리고 회전하는 통영타워에서 차와 이야기를 나누고 귀한 농작물도 한 상자 얻어 더욱 즐겁고 알찬 하루였다. 꽃도, 사람도, 자연도 모두 제때를 따라 피어나듯, 오늘 하루 또한 고마운 인연으로 가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