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국지색의 꽃, 위태롭게 아름다운 양귀비의 ‘처염미’

경국지색(傾國之色). 옛사람들이 양귀비 같은 미모를 두고 찬탄하며 읊었던 말이다. 나라를 위태롭게 할 만큼 치명적인 양귀비의 아름다움은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양귀비꽃은 모란이나 작약처럼 크고 풍성하면서도 우아하지도 않고, 장미의 뜨겁고 농염한 자태에도 턱없이 못 미친다.
양귀비꽃은 바람이 스치기만 해도 금세 흔들릴 듯한 가느린 꽃대 위에 피어난다. 얇디얇은 꽃잎은 비단보다 더 부드럽고, 막 피어오르는 노을빛처럼 여리다. 그런 자태로 붉고 화사하게 피어 가늘게 흔들리는 꽃, 그렇게 양귀비꽃은 위태롭게 아름다운 꽃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슬픔을 머금은 위태로운 유혹, 꽃잎은 붉은 입술처럼 요염하지만 바스라질 듯 얇은 꽃잎과 가느린 자태는 어딘가 슬픔을 담고 있는 것 같다. 화사하게 웃고 있으나 어딘가 슬퍼 보이고, 고요히 서 있으나 감출 수 없는 요염함이 번져 나온다.
처염미(凄艶美), ‘슬픔을 머금은 요염한 아름다움’이라는 표현은 양귀비꽃 같은 아름다움을 두고 하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양귀비는 단순히 화려하거나 관능적인 꽃이 아니라, 그 화려함 속에 어딘가 스러질 듯한 애잔함과 허무, 금세 사라질 것 같은 덧없음이 함께 느껴지는 꽃이기 때문이다.
슬픔을 머금었기에 더욱 요염하고, 위태롭기에 더욱 눈을 뗄 수 없는 아름다움. 버려두고 올 수 없는, 혼자 두고는 차마 돌아설 수 없는 아름다움을 일러 처염미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양귀비는 바로 그 슬픔과 요염함의 경계에서 피어나는 꽃이다.
나라를 위태로움(傾國) 속으로 몰아넣은 현종의 어리석음도 설마 양귀비꽃 같은 어찌할 수 없는 처염미 때문이었다고 하지는 않으리라. 작금의 흔들리는 나라 꼴에 씁쓸하게 떠오른 시골 늙은이의 공연한 상념일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