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폭염과 여름 감기

사진 이병철

날마다 폭염이 이어진다. 오전 9시도 안 된 시각인데 벌써 기온이 30도에 이른다. 한낮에는 기온이 40도 가까이 치솟는다. 아침에 잠시 텃밭에 다녀왔더니 그 사이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밭작물들도 더위와 가뭄으로 타들어 가고 있다. 나는 그런 작물들에게 한 바가지의 물도 주지 못한 채 바라볼 뿐이다. 내 무능과 게으름 탓이기도 하겠지만, 텃밭 옆 작은 개울마저 이미 말라 버렸다.

이런 더위는 여태껏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런 폭염에 힘든 것은 사람만이 아닐 것이다. 지금 전 세계가 이런 폭염 속에 놓여 있다고 한다. 특히 유럽은 산불까지 겹쳐 더욱 비상이라고 한다. 전쟁과 기상 재난으로 세계가 불타고 있다는 말이 실감 난다. 앞으로 이런 기후위기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 하는데, 과연 이대로 인류의 생존은 지속될 수 있을까. 멸종으로 치닫는 지구 생태계를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과 첨단 과학을 이야기하지만, 마실 물과 먹을 밥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인간이고 모든 생명이다.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경고가 이제는 눈앞의 현실이 되어 버렸음을 절감한다.

이런 더위 속에 감기까지 겹쳤다. 오뉴월 감기는 개도 앓지 않는다고 했는데, 속에서 끓어오르는 듯한 기침과 몸살기가 함께 찾아왔다. 예전보다 증상이 더 심하게 느껴지는 것은 늙어가는 탓이기도 하겠지만, 어쩌면 코로나의 흔적이 아직 몸속에 남아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파동의학에서는 몸에 병이 지나간 뒤에도 그 정보와 에너지의 흔적이 남아 다시 비슷한 질환에 쉽게 노출되는 경향성을 ‘마이아즘(miasm)’이라 부른다. 개인의 경험뿐 아니라 유전적·환경적 영향도 함께 작용한다고 본다. 내게도 아직은 낯선 개념이지만, 세상의 기운이 병들면 사람 또한 병들 수밖에 없다는 이치를 설명하는 데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은 것 같다. 유마거사는 “중생이 병들었으므로 나 또한 병들었다고 말했다. 세상이 앓고 있으니 자신 또한 앓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 말이 새삼 마음에 와 닿는다.

지금 병들어 있는 것은 개인들만이 아니다. 사회가, 나라가, 세상이 함께 병들어 있다는 것이 여실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지구 행성 전체가 병들어 신음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기후붕괴와 생태계의 위기 또한 그러한 병증의 한 모습일지 모른다. 그러나 지구가 먼저 병들어 인간이 병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병들어 세상이 병들고, 그렇게 지구 행성 전체가 함께 앓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기살해적 문명을 만들어 낸 것도, 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재앙이 갈수록 심화되는 것도 결국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어리석음, 곧 탐진치(貪瞋癡) 삼독의 결과일 것이다. 돈과 물질적 욕망이 삶의 중심을 차지하면서 사람들의 마음도 점점 병들어 가는 듯하다. 청춘의 낭만을 노래해야 할 젊은이들이 자신의 영혼을 걸고 투자해야 하는 현실이 그 단적인 예가 아닐까. 가슴이 답답하고 마음이 무겁다.

며칠 동안 아침 연지에도 가지 못했다. 폭염과 감기를 핑계 삼았지만, 기운이 많이 지치는 것 같다. 설상가상으로 집의 냉방기마저 갑자기 멈춰 버렸다. 재작년에야 비로소 에어컨을 들였다. 그전까지는 웬만하면 선풍기 하나로 견뎌 보려 했다. 생명운동과 환경운동을 한다고 하면서 지구온난화에 일조하는 냉방기를 쓰는 것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운전하게 된 것도 시골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물론 이것 또한 핑계요 변명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몸의 말을 무시할 수 없다. 몸이 쉬라고 하면 쉬고, 몸이 그만하라고 하면 그만두는 것이 지금의 나에게는 필요한 지혜인지도 모르겠다.

폭염과 마주하면서 다시 견딘다는 것을 생각한다. 즐길 수 있으면 더 좋겠지만 그럴 기운이 부족하니 우선은 받아들이며 견디는 것이다. 그러면 머지않아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다시 찾아올 것이다. 폭염도 언젠가는 지나갈 것이다.

감기도 때가 되면 나을 것이다. 사람의 병이 치유될 수 있다면 이 시대의 병든 정치와 병든 문명 또한 언젠가는 치유될 수 있으리라 믿고 싶다. 그것이 마지막 희망이다. 생명위기에 대한 자각이 새로운 생명의 길을 열어갈 수도 있을 것이라 믿어보는 것이다.

세상이 병들었다고 말하기에 앞서 먼저 내 마음 자리부터 살피는 일,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우선하는 치유가 아닐까. 며칠 몸을 추스린 뒤 다시 아침연지로 가봐야겠다. 흙탕물 속에서 피어나지만 그 흙탕물에 물들지 않는 처염상정(處染常淨)의 그 연꽃을 다시 만나려.

사진 이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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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시인, 생명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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