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미디어

[류재국의 고전에서 묻다➃] 인간은 왜 리바이어던을 불러냈는가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1651) 초판 권두화. 수많은 개인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주권자의 형상은 사람들이 자신의 권리를 모아 국가라는 공통 권력을 만들어낸다는 홉스의 정치철학을 상징한다.

류재국이 다시 고전을 펼친다. 이번에는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이다. 국가와 자유, 권력, 인간의 본성에 대한 홉스의 질문을 한 편에 압축하기보다 다섯 차례에 걸쳐 천천히 따라간다. 필자의 의견을 앞세우기보다 고전 자체의 문장과 논리를 충실히 해석하는 데 무게를 둔다. 첫 회는 ‘왜 국가가 필요한가’에서 출발한다. <편집자>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1651)을 펼치면 국가 이야기가 바로 나오지 않는다. 먼저 인간을 이야기한다. 국가가 왜 필요한지를 말하려면 국가가 없는 인간의 모습을 먼저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런데 그 인간의 모습이 썩 평화롭지 않다. 불안하고, 경쟁하고, 서로를 경계한다. 언제 공격받을지 모르고, 내가 가진 것을 빼앗길지 모른다. 홉스가 생각한 인간의 자연상태는 이런 상태다.

홉스가 이런 인간관을 갖게 된 데는 그가 살았던 시대도 무시할 수 없다. 홉스는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의 침공 공포 속에서 태어났고, 영국에서는 종교와 정치의 갈등이 점점 심해졌다. 결국 내전까지 벌어졌다. 홉스 역시 정치적 혼란을 피해 프랑스로 망명했다가 귀환했다. 그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어머니는 쌍둥이를 낳았다. 나와 공포를.” 과장처럼 들리지만 홉스를 이해하는 데 꽤 중요한 말이다. 공포는 그에게 단순한 감정이 아니었다. 인간과 국가를 이해하는 출발점이었다.

그렇다면 국가가 없으면 인간은 어떻게 살아갈까. 홉스가 말하는 자연상태를 원시시대의 인간을 떠올리며 이해하면 곤란하다. 숲속에서 혼자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다. 핵심은 모두에게 명령하고, 법을 집행하고,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공통의 권력이 없는 상태다. 법을 집행할 국가도 없고, 싸움이 벌어져도 최종적으로 판단해줄 권위가 없다.

홉스의 대답은 평화롭지 않다. 인간은 우선 자기 생명을 지키려 하고, 더 안전해지고 더 많은 것을 가지며 명예도 얻고 싶어 한다. 그런데 나와 같은 욕망을 가진 사람이 곁에 있다. 내가 가진 것을 빼앗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상대가 공격할 때까지 기다릴까. 홉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상대를 믿을 수 없다는 것만으로도 갈등은 시작된다. 상대 역시 나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로 먼저 대비하고, 때로는 먼저 공격할 수도 있다. 매일 전투가 벌어진다는 뜻이 아니라, 언제든 전투로 이어질 수 있는 불안정한 상태라는 뜻이다. 홉스가 말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은 여기서 나온다.

그렇다고 홉스를 인간을 악하게 본 철학자로 이해하면 안 된다. 인간이 특별히 악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다. 죽고 싶지 않다. 내가 가진 것을 지키고 싶다. 좀 더 안전하게 살고 싶다. 이것은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욕망이다. 문제는 그 욕망을 조정할 힘이 없다는 데 있다. 경쟁과 불신, 명예에 대한 욕망이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이유다.

홉스가 묻는 것은 단순하다. 서로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는가. 여기서 또 하나의 중요한 생각이 나온다. 바로 평등이다. 자연상태의 인간은 평등하다. 모두가 똑같이 강하다는 뜻은 아니다. 힘센 사람과 약한 사람은 있지만, 가장 강한 사람도 잠을 자야 하고 약한 사람도 기회를 잡으면 강한 사람을 해칠 수 있다. 누구도 절대적으로 안전하지 않다는 점에서 인간은 평등하다. 참 냉정한 평등론이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홉스의 근대적인 생각이 보인다. 왕이라고 해서 죽지 않는 것도 아니고, 귀족이라고 해서 본질적으로 우월한 것도 아니다. 왕도 죽고 평민도 죽는다. 정치는 신분이나 혈통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을 지켜야 하는 개인에서 시작된다.

그렇다면 이렇게 불안한 상태에서 인간은 무엇을 선택할까. 홉스의 답은 국가다. 모두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가 오히려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내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상대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면, 나는 안전한가. 아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공통의 권력을 만들어낸다. 바로 여기서 국가가 등장한다. 홉스는 이 국가를 성경에 등장하는 거대한 바다 괴물의 이름을 빌려 ‘리바이어던’이라고 부른다.

중요한 것은 국가가 원래부터 자연스럽게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국가는 인간이 만든다. 왜 만드는가. 공포 때문이다. 죽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불안에서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다. 서로 믿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서로 죽이며 살 수도 없기 때문이다. 홉스에게 국가의 출발점에는 영광도, 숭고한 이상도 없다. 공포가 있다. 국가의 필요성을 이렇게까지 냉정하게 설명한 철학자가 또 있을까.

쉽지 않은 <리바이어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1954)을 함께 읽어보는 것도 좋다. <파리대왕>은 홉스가 던진 질문을 다른 방식으로 보여준다. 문명의 규칙과 권위가 사라진 섬에 소년들만 남는다. 처음에는 자유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자유가 불안이 되고, 불안이 경쟁과 공포로 변한다. 그리고 폭력이 등장한다. 물론 골딩의 소설을 홉스의 자연상태를 그대로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질문은 남는다. 인간은 본래 악한가. 아니면 질서가 사라지면 폭력이 나타나는가.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국가가 없다면 우리는 정말 더 자유로운가. 홉스의 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서로의 행동을 예측할 수 없고 갈등을 조정할 권위도 없다면, 자유는 곧 불안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이야기가 끝나지 않는다. 안전을 위해 국가를 만들었다면, 이제 다른 문제가 생긴다. 나를 지켜주는 국가에 나는 어디까지 권력을 내어주어야 하는가. <리바이어던>은 바로 이 질문으로 이어진다. 2회에서는 국가에 힘을 부여하는 순간, 우리가 포기하게 되는 자유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 아시아엔 후원계좌 ▼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후원은 아시아엔과 아시아 저널리즘의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됩니다.
우리은행 1005-601-878699 (주식회사 아자미디어앤컬처)

류재국

문화비평가, 서양고전극연구소장, 철학박사

필자의 다른 기사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본 광고는 Google 애드센스 광고이며, 본 사이트와는 무관합니다.
Back to top button
AI 에이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