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철용은 국회를 떠난 뒤에도 정치를 떠나지 않았다. 제13대 국회의원으로서 장애인복지법과 장애인고용촉진법을 바꾸는 데 힘을 쏟았던 사람에게 정치는 직업이 아니라 삶의 조건이었다. 그가 가난과 장애, 노동과 노숙, 재개발과 복지 사각지대를 말할 때마다 정치가 따라 나오는 까닭이다.
나는 2008년 4월, 제18대 총선을 앞둔 3일과 선거 이튿날인 10일 이철용을 두 차례 만났다. 그는 당시 서울 안국동에서 ‘통(通)’이라는 상담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정치 이야기는 냉장고에서 꺼낸 뽕잎차 한 잔과 함께 시작됐다.

그해 총선에서 이철용이 가장 높이 평가한 당선자는 강기갑 의원이었다. “강기갑 의원은 입으로만 떠드는 사람이 아니라 현장에서 자기 문제를 가지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이제 말로 하는 시대는 끝내야죠.”
강기갑 의원을 직접 만나거나 통화한 적은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를 꼽은 것은 정치인의 말보다 그가 어느 현장에 서 있었는지를 봤기 때문이다. 이철용이 정치인을 판단하는 기준은 처음부터 끝까지 같았다. 약자의 삶을 자기 언어로 아는가, 그것을 법과 예산으로 바꾸려 하는가였다.
그는 당시 개혁공천과 전략공천, 공천심사위원회를 두고도 직설적으로 말했다. “공천심사위원회도 다 쇼였다고 봐요. 마치 군대처럼 여기 가라 저기 가라 하는 것은 민주화를 퇴보시키는 거지요. 밑에서 위로 올라가는 상향식 공천이 돼야 합니다.”
2008년의 이 말은 지금도 낯설지 않다. 공천을 둘러싼 갈등은 되풀이되고, 국민은 누가 공천받느냐보다 어떤 기준과 절차로 후보가 정해졌는지를 묻는다. 이철용은 공천을 당 지도부의 인사권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첫 관문으로 보았다.
서울에서 한나라당이 압승한 원인도 그는 단순한 정당 지지율에서 찾지 않았다. 재건축과 재개발로 원주민이 밀려나고 유권자 구성이 달라진 도시의 변화를 들었다. 선거 결과는 생활 터전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말이었다.

그는 통합민주당의 참패를 두고 “한나라당 잔치에 통합민주당은 조연이었다”고 했다. 이어 “우리 사회는 보수 일색에 버림받은 진보가 붙어 있는 양상”이라고 진단했다.
이는 제18대 총선 직후, 보수 정당이 국회 다수를 차지하고 진보 진영이 분열과 침체를 겪던 시기의 발언이다. 오늘의 정치 지형에 그대로 대입할 수는 없다. 지금은 진보를 표방하는 세력이 국회와 정부의 중심에 선 현실에서, 오히려 권력을 가진 쪽이 약자의 목소리와 현장을 얼마나 제대로 듣고 있는지가 새로운 질문이 됐다.
이철용의 문제의식은 진영의 우세를 가르는 데 있지 않았다. 어느 쪽이 집권하든 빈민·노동자·장애인·노숙인의 삶에서 멀어지고, 공천과 권력이 소수의 계산으로 움직이면 정치는 제 역할을 잃는다는 데 있었다.
그는 정치권이 약자를 대표한다고 말하면서도 그들을 전시용으로 다루는 태도에는 특히 날카로웠다. 당시 장애인 출신 의원의 진출을 반기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한 사람의 장애인 의원을 뽑아서 훈련을 시켰으면 그냥 일회용으로만 써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4년 동안 국회대학을 겨우 졸업해서 일할 만한데 또 바꾸면 뭐예요. 장애인이 일회용 반창고도 아니고, 그런 쇼는 집어치워야죠.”
정당이 여성·청년·장애인·노동자를 앞세우는 것과, 그들이 실제로 정치의 중심에서 오래 일하게 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철용의 말은 대표성의 숫자보다 대표자의 권한과 지속성을 묻는다.
그는 국회의 역할을 복잡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국회의원 임무는 간단해요. 국가 이익과 국민의 안전과 인권 보장, 그리고 평화적 통일을 성실히 수행하는 거예요. 국회는 국민들에게 진 빚을 갚는 곳이 되어야 해요.”
그 말은 의정 경험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는 국회에서 장애인복지법의 명칭과 조항을 고치고 장애인고용촉진법 제정에 힘을 보탰다. 국회의원은 말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법과 예산으로 사람들의 이동권과 일할 권리, 문화 향유권을 바꾸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2012년 대선 국면에서 안철수 현상이 커졌을 때도 이철용은 정치 신인의 인기와 새로움만 보지 않았다. 안철수의 정치와 그 주변의 흐름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책을 냈고, 이듬해 방송 인터뷰에서도 안철수의 정치 진입, 신당 가능성, 민주당과 새누리당의 대응을 두고 의견을 밝혔다. 그가 궁금해한 것은 특정 정치인의 흥망보다 ‘새 정치’가 실제 현장과 조직, 정책을 가질 수 있느냐였다.
2017년 대선과 2022년 대선,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에도 그의 관심은 달라지지 않았다. 진영의 승패보다 장애인과 빈곤층, 사회적 약자가 실제로 무엇을 겪고 있는가를 물었다. 정치가 갈등의 원인을 해결하지 못한 채 시위 방식만 훈계하고, 예방도 대책도 사후 지원도 어정쩡한 현실을 그는 비판했다.
2023년 6월 나는 이철용을 다시 인터뷰했다. 그는 “장애는 입는 것이 아니라 당하는 것”이라고 거듭 말했다. 환경파괴와 약물 오남용, 산전·산후 의료정책의 빈틈, 교통사고와 산업재해, 가정 내 안전사고가 장애를 만든다는 것이다. 후천적 장애가 대부분인 현실에서 장애는 일부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책임이라는 뜻이었다.
그는 장애인 이동권과 문화 접근권을 두고도 목소리를 높였다.
“휠체어 장애인이 극장을 가려면 군사훈련 정도는 해야 될 지경으로 접근권, 이동권은 엉망입니다. 영화, 뮤지컬, 콘서트, 연극 관람은 문화예술 활동의 필수요소입니다.”
이철용의 정치 비판은 추상이 아니다. 극장에 들어갈 수 있는가, 지하철을 탈 수 있는가, 일할 수 있는가, 안전하게 살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그가 “가난이 문제가 아니라 고르지 못한 것이 문제”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을 찾아내고, 기회의 격차를 줄이는 일이 정치의 급한 과제라는 것이다.
그는 2008년 ‘통’ 사무실에서 이런 말을 했다. “소통이라는 것은 때와 장소에 관계없이 항상 통해야죠. 통하지 않으면 여기저기서 아우성이 나옵니다.”
그 뒤 15년이 흘렀지만, 그의 말은 더 현실적인 질문이 됐다. 정치가 시민의 아우성을 듣는가. 공천과 선거, 국회와 정부가 사람들의 생활을 바꾸는 데 닿아 있는가. 약자를 앞세우면서도 정작 그들의 목소리를 밀어내고 있지는 않은가.
이철용은 정치의 미래를 거창한 구호에서 찾지 않는다. 국회의원 한 명이라도 현장에 서서 법 하나와 예산 한 줄을 바꿀 수 있다면, 정치는 아직 쓸모가 있다는 것이다.
그에게 정치는 바람이 아니라 빚이다. 국민에게 진 빚을 갚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