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벽도 없고 문빗장이나 문이 다 없이 평안히 거주하는 백성에게 나아가서”(에스겔 38:11하)
적이 몰려오는데 이스라엘의 대응은 단 한 줄도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비명도, 기도도, 군사적 노력도 성경은 철저히 생략합니다. 행간에 흐르는 이 묘한 침묵은 이 전쟁의 본질이 ‘이스라엘 대 마곡’의 대결이 아니라, ‘하나님 대 악의 총체’의 대결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고대 전쟁사에서 승리는 언제나 신과 인간의 협력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인간이 칼을 휘두르고 신이 돕습니다. 그러나 에스겔 38장의 전쟁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단독 사역이었습니다. 구원의 주체는 인간이 아닙니다. 인간의 간절한 기도나 올바른 삶의 태도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여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인간의 어떠한 종교적, 물리적 행위에도 의존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스스로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그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주적 전쟁의 한복판에서 털끝 하나 상하지 않는 구원을 경험합니다.
현대 사회는 자기 증명과 과잉 행동의 시대입니다. 사람들은 유튜브와 SNS라는 진열장에 성취와 일상을 전시하며 자신이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어필하도록 요구받습니다. 문제는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비슷한 압박감을 느끼며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증명하려 애를 쓴다는 것입니다.
반면, 에스겔 38장에서 이스라엘은 다급한 기도로 하나님을 통제하여 상황을 모면하려 들지 않았고, 화려한 종교적 의식을 통해 현실의 두려움을 마취하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이것은 거룩한 체념입니다.
이스라엘은 성벽도 없고 문빗장도 없었습니다.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어막마저 벗겨져 극단적으로 취약해진 상태였습니다. 적군의 공격 앞에서 이스라엘은 완전히 발가벗겨졌습니다.
세상은 이 취약성을 어리석음이라 비웃습니다. 문빗장을 달고 성벽을 높이는 것이 살길이라 가르칩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르게 말합니다. 이 극단의 취약성이야말로 인간의 오만이 끝장나고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가 폭발하는 자리입니다. 그리스도가 알몸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바로 그 자리가 구원의 자리였습니다.
마곡의 군대는 쉴 새 없이 움직이고, 무기를 휘두르고, 약탈을 계획합니다. 이 과잉 능동성의 화신이 주도하는 세상을 살다 보면 우리도 그들처럼 악착같이 칼을 갈고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끈기’가 곧 신앙이라는 착각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신앙은 나의 과잉 행동과 종교적 열성을 잘라내는 ‘끊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