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버지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할 것이요 아버지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하리니 의인의 공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에스겔 18:20)
하나님 나라에 연좌제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조상의 죄를 후손에게 묻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죄는 아담이 지었는데, 왜 우리가 죄인일까요? 기독교의 원죄 교리, 이게 연좌제가 아니면 뭘까요?
우리가 원죄 교리에 대하여 흔히 오해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는 바람에 아무 잘못 없는 내가 억울하게 죄인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원죄를 아담의 탓으로 돌리는 바로 그 억울함이야말로 우리가 아담과 완벽하게 동일한 존재임을 스스로 입증하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아담도 똑같았습니다. 자신이 선악과를 베어 물고도 그 책임을 하와에게, 더 나아가 하와를 허락하신 하나님에게까지 떠넘겼습니다. 최초 원인 제공자를 따지고 들며 책임을 전가했습니다. 그 비겁함이 바로 우리 안에서 반복 재생되고 있는 것입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었기 때문에 내가 죄인이 되었다’ 이 말은 죄의 인과관계에 대한 설명이 아닙니다. 이 말을 빌려 나 자신을 무고한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싶은 심리 자체가 내가 아담과 동일 본질이라는 사실에 대한 설명입니다. 나의 죄성에 관하여 원죄론을 들먹이며 아담 탓을 하고 싶은 건 내가 아담과 똑같은 죄인이라서 그렇습니다.
따라서 죄는 ‘인과율’의 문제가 아니라 실존적인 ‘보편성’의 문제입니다. 만약 원죄가 단순한 원인 제공의 문제라면 책임을 물어야 할 대상은 아담이 아니라 선악과를 먼저 베어 문 하와여야 맞습니다. 그럼에도 성경이 굳이 ‘아담’을 인류의 대표로 내세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죄의 본질이 시간적 인과관계가 아니라 보편적 연대성에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아담 때문’에 죄인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아담과 같이’ 죄인이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건 ‘첫 사람 아담’이 선악과를 먹는 그 자리에 나도 함께 있었다는 것을 각성하는 사건입니다. 내가 아담의 범죄로 인한 억울한 피해자가 아니라 아담과 공범이라는 사실의 시인입니다. 이 사실이 인정되어야 비로소 ‘마지막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나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사실이 관념을 넘어 나의 진짜 현실이 되는 것입니다.
🎧잠깐묵상 유튜브로 듣기
https://youtu.be/JNbTCZh7Apc?si=skoCK9FMnAOx-vC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