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나한테 왜 이런 일이?’에서 ‘나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로

예레미야는 자신이 살해 위협까지 받아야 하는 현실을 수긍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항변했습니다. “왜 악인들이 형통하고 평안합니까? 하나님의 일을 하는 저는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합니까?” 예레미야의 이 절박한 질문에 하나님의 대답은 상당히 냉정했습니다. “사람과 달리기를 해도 피곤하면 나중에 어떻게 말과 달리기를 하겠느냐?” 지금의 어려움이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차원이 다른 환난이 다가올 텐데, 겨우 이 정도 가지고 호들갑이냐 반문하시는 것입니다. <AI 생성 이미지>


*잠깐묵상 | 예레미야 12장

“만일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 강 물이 넘칠 때에는 어찌하겠느냐”(렘 12:5)

예레미야는 자신이 살해 위협까지 받아야 하는 현실을 수긍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항변했습니다. “왜 악인들이 형통하고 평안합니까? 하나님의 일을 하는 저는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합니까?” 예레미야의 이 절박한 질문에 하나님의 대답은 상당히 냉정했습니다. “사람과 달리기를 해도 피곤하면 나중에 어떻게 말과 달리기를 하겠느냐?” 지금의 어려움이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차원이 다른 환난이 다가올 텐데, 겨우 이 정도 가지고 호들갑이냐 반문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나 자신을 짓누르는 삶의 무게 때문에 하나님께 질문합니다. “이 무거운 짐을 왜 내가 짊어져야 합니까?” 하나님은 설명 대신 더 무거운 짐을 가리키십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부조리를 분석하는 논리가 아니라 다가올 더 큰 하중을 버텨낼 근력이기 때문입니다.

근력은 그냥 자라지 않습니다. 근섬유가 끊어지고 찢어지는 고통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새로운 근육이 생깁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달콤하고 납득 가능한 것들만 취사선택하여 믿는 일이 아닙니다. 이해되지 않는 상황들을 짊어지고 버틸 줄 아는 지구력이 믿음입니다. 무게를 견뎌내며 영적 근육통을 경험해 본 자만이 훗날 말과의 경주를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의 부조리와 고난의 원인을 전부 설명해 주신다 한들 우리가 그것을 다 알아들을 수 있을까요? 그것을 이해한다고 해서 우리가 짊어진 삶의 무게가 실질적으로 가벼워지지는 않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고난의 원인에 대한 이해보다 고난을 다루는 방법에 대한 이해가 아닐까요? 사도 바울은 육체의 가시가 끝내 제거되지 않았지만, 그는 가시를 지닌 채 은혜로 사는 법을 배웠습니다. 모든 것에 자족하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의 레슨은 우리의 질문을 해체하고 재조립합니다. “이 일이 왜 일어났는가?”라는 질문을 “이 일을 통해 나는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고난의 원인을 과거에서 찾지 않고 미래에서 찾는 훈련, 이것이 하나님의 레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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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문섭

베이직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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