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선 한국 유족 목소리 들었는데, 한국 정부는 부처 핑퐁…시베리아 억류 피해자의 20년 기다림

문용식씨, 8월23일 일본서 한국 유족 대표 추도사…15년 만의 참석
외교부·행안부·재외동포청 오간 민원…“90일 넘도록 책임 있는 답변 없어”
8월 23일 일본 도쿄 국립 지도로가후치 전몰자묘원. 일제 말기 강제동원된 뒤 소련에 억류됐던 고 문순남씨의 아들 문용식씨가 ‘제24회 시베리아·몽골 억류희생자 추도의 모임’에서 한국인 유족 대표로 추도사를 했다.
한국인 유족이 이 행사에 참석한 것은 15년 만이었다. 일본의 억류 생존자와 유족, 후생노동성 관계자 등이 참석했고 일본 신문과 방송 기자들도 현장을 취재했다. 추도식 뒤 열린 ‘억류 체험자·유족과 이야기하다’ 토크세션에서는 일본의 101세 생존자 니시쿠라 마사루씨와 대만 출신 억류 생존자 우정난씨, 문씨 등이 함께했다. 일본 제국 아래 서로 다른 지역에서 전쟁에 동원됐던 사람들의 기억이 81년 만에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그러나 도쿄에서 돌아온 문씨에게는 끝나지 않은 일이 하나 있다. 20년 넘게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해온 아버지의 강제억류 문제다. 역사적 진상을 규명하고 국제법과 한일관계, 과거사 차원에서 국가가 책임 있게 검토해 달라는 것이 그의 요구다. 하지만 그의 민원은 최근에도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재외동포청 사이를 오갔다.
일본에서는 ‘15년 만의 한국 유족’ 주목
문씨가 시베리아 억류 문제를 추적하기 시작한 것은 20여 년 전이다. 아버지 문순남씨(1924~1974)는 일제 말기 일본군에 강제동원됐다. 해방 뒤에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소련군에 붙잡혀 수용소 생활과 강제노동을 겪은 뒤 1949년에야 귀국했다. 문씨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한국과 일본, 러시아의 자료를 추적했다. 2005년 한일협정 관련 문서가 공개된 것을 계기로 일본 정부와 러시아 측에도 자료를 요청하며 아버지의 포로수용 및 귀환 기록을 찾아왔다. 이 작업은 한 개인의 가족사 확인에서 출발했지만 점차 조선인 시베리아 억류 피해자 전체의 문제로 확대됐다.
지난 8월 23일 도쿄 추도식에서도 이 문제가 제기됐다. 시베리아 억류 문제는 일본에서는 전후사의 중요한 문제로 다뤄져 왔지만, 당시 일본 제국의 식민지였던 조선과 대만 출신 억류자들이 몇 명이었는지, 어디에 억류됐고 얼마나 희생됐는지조차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문씨는 추도사에서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 강제노동 속에서 돌아오지 못한 억류자들을 추모하면서 “아직 알려지지 않은 피해자의 이름을 찾고 기록이 사라지지 않도록 다음 세대에 전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일본 언론의 관심도 컸다. <신문아카하타>는 ‘시베리아 억류 희생자 추도-한국 유족 15년 만에 참가’라는 제목으로 문씨의 참석과 추도사를 보도했고, <마이니치신문> 등도 현장을 취재했다. 문씨가 추도사를 하는 현장에는 일본 신문·방송 기자들이 대거 취재에 나섰다.
문씨에게는 이 장면이 남다르게 다가왔다. 일본에서는 한국인 피해자 유족의 증언을 역사 문제의 하나로 듣고 기록하려 하는데, 정작 한국에서는 자신이 20년 넘게 제기한 문제가 아직 어느 부처가 책임져야 하는지조차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행안부→재외동포청→행안부→외교부
문씨가 올해 제기한 민원도 여러 기관을 거쳤다. 그는 지난 2월 18일 청와대에 민원을 접수했다. 문씨에 따르면 그후 3월 20일 외교부로 이 민원이 이송됐다. 문씨가 받은 이송 통보에 따르면 재외동포청은 3월 19일 오후 6시 10분 행정안전부로 민원을 다시 보내면서 “이송 사유의 연관성을 검토했으나 재외동포청 소관 사안으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외동포청은 청원 내용이 한일청구권협정 해석과 대외관계, 국제법적 검토를 수반하는 사안으로 관계 부처 협의가 필요하다며 재외동포청 업무 범위를 벗어난다고 판단했다.
문씨는 “3월20일 저의 민원이 외교부로 다시 가서 그때부터 민원 처리일자 계산을 한 것 같다. 최종 처리결과 회신은 6월 10일 오후 6시로 돼 있다”고 했다. 그는 “외교부에 문의하면 ‘문의 사항이 있으시면 주무 부처인 행정안전부 과거사업무관련 지원단으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멘트만 반복했다”고 말했다. 어떻게든 타부처로 넘기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했다.
행안부는 이송 사유에서 청원인이 외교부에 여러 차례 문제를 제기했고 국제법 위반 문제를 주장하고 있으며, 행안부와 재외동포청으로 이송된 데 강한 이의를 제기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결국 민원은 행정안전부와 재외동포청을 거쳐 다시 외교부로 돌아갔다.
문씨는 <아시아엔>과의 통화에서 “행안부에서 외교부로, 외교부에서 다시 행안부 쪽으로 갔다가 결국 외교부로 돌아왔다”며 “부처를 옮겨 다니는 과정에서만 한 달 가까운 시간이 지나갔다”고 말했다. 문씨는 일본에서 돌아온 후 지난 28일 오후 3시44분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 아태 1과(02-2100-7343)로 전화를 두차례 걸었으나 통화가 이뤄지지 않았다. 문씨는 “청와대 민원 제기에 대한 외교부 회신이 부실해 문의하기 위해 지금까지 최소 6차례 전화했으나 단 한번도 통화할 수 없었다”고 했다.
“90일 넘었는데 왜 늦어지는지 설명도 없었다”
문씨가 문제를 제기하는 또 하나는 처리 기간이다. 그는 청원 처리에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면 그 이유와 처리 예정 시점 등을 신청인에게 설명하는 절차가 있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자신은 충분한 안내를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법적으로는 90일 안에 회신하도록 돼 있고 더 검토해야 한다면 그에 따른 절차를 거쳐 신청인에게 알려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설명 없이 90일을 넘겼습니다.” 외교부 담당자와의 소통 과정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문씨는 전했다.
처음에는 담당 공무원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안내받았으나 회신 내용을 확인한 뒤 사실관계 등에 대해 문의하려고 연락하자 이후 전화 연결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문씨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문제를 제기했는데 담당 기관이 책임 있게 답하려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어느 부처 소관인지보다 국가가 답해야”
문씨는 시베리아 억류 문제가 어느 한 부처만의 업무로 볼 수 있는 사안은 아니라고 말한다. 일제 강제동원과 해방 이후 소련 억류라는 역사 문제가 있고, 일본과 러시아를 둘러싼 외교 문제, 한일청구권협정과 국제법적 검토, 피해자 명예회복과 과거사 문제가 함께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 문제는 단순한 재외동포 문제가 아니다”며 “외교부냐 행안부냐를 따질 것이 아니라 정부가 관계 부처를 모아 국가 차원에서 역사적·법률적으로 검토해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문씨는 대통령실 차원의 검토 필요성도 제기했다. “억류 피해자들은 이제 대부분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는 20년 넘게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어느 부처로 보낼 것인지 고민하기 전에 대한민국 정부가 책임 있게 다룰 문제인지부터 답해 주십시오.”
81년 전 피해, 20년째 답을 기다리는 유족
8월 23일은 시베리아 억류 역사에서 특별한 날이다. 1945년 이날 스탈린은 일본군 포로 등을 소련으로 이송하도록 하는 명령을 내렸다. 일본에서는 이를 기억하기 위해 2003년부터 매년 희생자 추도행사를 열어왔다. 도쿄 지도로가후치 전몰자묘원에는 옛 소련과 몽골 지역에서 수습돼 일본으로 돌아온 희생자 유골도 안치돼 있다.
81년 뒤인 2026년 8월 23일, 조선인 억류 피해자의 아들은 도쿄에서 일본과 대만의 생존자·유족들과 마주 앉아 아버지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그는 정부의 답을 기다리고 있다.
일본에서는 15년 만에 찾아온 한국 유족의 이야기를 신문과 방송이 기록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 안에서는 그의 민원이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재외동포청 사이를 오갔다.
문씨가 20년 동안 던져온 질문은 복잡하지 않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문제를 제기한 국민에게 국가는 어떤 방식으로 답해야 합니까.”
시베리아 억류 문제는 더 이상 80여 년 전 과거의 기록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피해자가 모두 사라져가는 지금, 남겨진 기록과 유족의 목소리에 국가가 어떻게 답할 것인가라는 오늘의 문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