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오랫동안 연락하지 못했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구가 전화를 받기 전, 낯익은 컬러링이 들려왔다. 돈 매클린(Don McLean)의 ‘빈센트(Vincent)’였다. “Starry, starry night, Paint your palette blue and gray”로 시작하는 이 곡은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돈 매클린의 대표곡 가운데 하나다. 우리말로 옮기면 “별이 빛나는 밤, 팔레트를 푸른색과 회색으로 칠해요”쯤 된다.
매클린은 빈센트 빌럼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의 삶을 다룬 책을 읽은 뒤 이 노래를 썼다고 한다. 곡은 1971년 앨범 《American Pie》에 실렸고, 이듬해 싱글로 발표됐다. 노래의 첫 구절은 고흐의 대표작 ‘별이 빛나는 밤’을 떠올리게 한다.
현재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이 소장하고 있는 ‘별이 빛나는 밤’은 1889년 6월 프랑스 남부 생레미에서 그려졌다. 고흐는 1888년 12월 귀를 훼손하는 사건을 겪은 뒤 이듬해 5월 생폴드모졸 요양원에 자진 입원했다. 이곳에서 바라본 새벽하늘과 자신의 기억·상상 속 마을을 결합해 이 작품을 완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마을의 일부 집에는 따뜻한 노란 불빛이 켜져 있지만, 마을 가운데 우뚝 솟은 교회당은 어둠에 잠겨 있다. 이를 두고 고흐가 가난하고 상처받은 이들을 외면한 제도권 교회에 품었던 실망을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다만 이것은 고흐가 직접 밝힌 확정적인 의미라기보다, 그의 종교적 경험과 작품을 연결해 읽은 하나의 해석이다. 그림 속 마을과 교회 역시 생레미의 풍경을 그대로 옮긴 것이라기보다 고흐가 기억한 네덜란드 고향의 건축양식과 상상력이 더해진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 해석이 나오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화가가 되기 전 고흐는 목회자의 길을 꿈꿨다. 아버지가 네덜란드 개혁교회 목사였던 그는 한때 평신도 설교자로 활동하며 신앙과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고흐는 벨기에 보리나주의 열악한 탄광촌에서 광부들과 함께 생활하며 복음을 전했다. 그는 자신의 옷과 소지품까지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며 극단적으로 검소한 생활을 했다. 그러나 교회 당국은 그의 방식이 지나치다고 판단해 정식 임명을 연장하지 않았다. 이 일은 고흐에게 깊은 좌절을 안겼다. 이후 그는 종교적 소명을 완전히 버렸다기보다, 인간의 고통과 노동,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길을 택했다. 보리나주에서의 경험은 그가 화가로 나아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별이 빛나는 밤’에서 진정한 빛은 교회 건물보다 밤하늘과 별에서 더욱 강렬하게 빛난다. 이를 두고 고흐가 제도와 건물을 넘어 자연과 우주 속에서 신의 은총을 발견하려 했다는 종교적 해석도 가능하다.
화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밤하늘에는 거대한 소용돌이가 역동적으로 흐른다. 일부 연구자는 이 형태를 당시 알려지기 시작한 나선형 성운이나 은하의 이미지와 연관 짓기도 한다. 특히 나선은하 M51을 관측한 19세기 천문학 자료가 고흐에게 간접적인 영감을 주었을 가능성이 제기돼왔다. 그러나 이것 역시 정설이라기보다 여러 해석 가운데 하나다. 신앙의 눈으로 본다면 이 거대한 소용돌이는 하나님의 압도적인 은혜와 성령의 임재를 떠올리게 한다. 세상의 어둠이 깊을수록 하늘의 빛은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그림 왼쪽에 높이 솟은 검은 나무는 사이프러스(cypress)다. 유럽에서 사이프러스는 묘지 주변에 많이 심어져 죽음과 애도의 이미지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그림 속 나무는 땅에서 하늘을 향해 불꽃처럼 치솟는다. 현실의 고통을 넘어 영원과 절대자에게 닿고자 했던 고흐의 갈망을 보는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그림은 “세상의 교회가 어둠에 잠겨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은 밤하늘의 별처럼 여전히 우리를 감싸고 있다”는 신앙적 고백으로도 읽을 수 있다.
요즘 ‘선교적 교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선교를 1년에 몇 차례 진행하는 프로젝트나 특별행사로 한정하지 않고, 성도들이 일상 자체를 선교적 삶으로 살아가도록 교회의 체질을 바꾸자는 운동이다. 그렇다. 복음을 전하는 전도와 선교는 교회가 해야 할 여러 활동 가운데 하나에 머물 수 없다. 교회의 존재 목적과 직결된 본질적 사명이다. ‘선교가 교회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선교를 위해 존재한다’는 말도 같은 뜻일 것이다.
꺼진 불이 더 이상 어둠을 밝힐 수 없듯, 고통받는 이웃과 영혼의 구원에 무관심한 교회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잃을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별이 빛나는 밤’은 기독교적 가치와 문화적 영향력이 사회의 중심에서 밀려나고 있는 이른바 ‘후기 기독교 시대(post-Christian era)’를 살아가는 오늘의 교회와 성도들에게 어떤 강단의 설교보다 큰 울림을 준다.
다시 팝송 ‘빈센트’로 돌아가 보자. 가사에는 평생 세상으로부터 제대로 이해받지 못했던 고흐의 고독한 영혼을 향한 깊은 위로가 담겨 있다. 사람들이 그의 진심과 예술을 알아보지 못했던 데 대한 안타까움도 노래 곳곳에 배어 있다.
고흐는 약 10년 동안 900여 점의 회화와 수많은 드로잉을 남겼지만, 생전에는 작품의 가치를 거의 인정받지 못했다. 생전에 정식 판매된 작품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아를의 붉은 포도밭’이다. 다만 실제로 판매하거나 작품의 대가를 받은 사례가 더 있었는지를 두고는 미술사적 논의가 계속되고 있어, ‘단 한 점만 팔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노래는 고흐에게 뒤늦게 이렇게 고백한다. 이제야 당신이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알 것 같다고, 당신이 얼마나 고통받았으며 얼마나 아름다운 영혼을 지녔는지 비로소 이해한다고. 오는 7월 29일은 고흐가 세상을 떠난 지 136주기가 되는 날이다. 돈 매클린은 노래의 후렴에서 고흐가 전하려 했던 말을 이제는 알 것 같다고 노래한다.
온전한 정신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고통받았는지,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돌아본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때도 듣지 않았고, 지금도 들으려 하지 않으며, 어쩌면 영원히 듣지 않을지 모른다고 탄식한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우연히 들은 한 곡의 팝송이 고흐의 삶과 그림, 그리고 오늘의 교회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교회의 불은 켜져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고통받는 이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