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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네코 후미코 오늘 100주기…일본인으로 동반자 박열 열사와 조선 독립에 생을 바치다

오늘 100주기 가네코 후미코 <사진 연합뉴스>
[아시아엔=윤재석 칼럼니스트] 국적은 일본인이었지만, 삶은 조선의 독립을 선택했다. 정의와 자유를 위해 스물셋의 짧은 생을 불태운 독립운동가 가네코 후미코(1903~1926)의 서거 100주기 추모식이 23일 경북 문경문화원에서 엄수됐다.

국가보훈부와 사단법인 박열의사기념사업회가 마련한 이날 추모식에는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을 비롯해 독립유공자 유족, 기념사업회 회원, 시민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특히 가네코 후미코의 삶과 정신을 기리기 위해 일본에서 찾아온 추모객 30여 명도 함께해 국경을 넘어 이어지는 그의 정신을 되새겼다.

가네코 후미코는 일본 요코하마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부터 일본 사회의 모순과 국가권력에 의문을 품었다. 그는 독립운동가 박열 의사와 만나 뜻을 함께하며 아나키즘(무정부주의) 운동에 투신했다. 두 사람은 민족보다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앞세운 동지이자 삶의 동반자였다.

1923년 관동대지진 이후 조선인 대학살의 혼란 속에서 두 사람은 일제에 체포됐다. 일제는 이들에게 천황 암살을 모의했다는 혐의를 씌워 사형을 선고했으나 뒤이어 무기징역으로 감형했다. 두 사람은 옥중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재판과 권력을 비웃듯 당당한 표정으로 촬영한 결혼사진은 지금도 일제에 맞선 저항 정신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가네코 후미코는 1926년 7월 23일 우쓰노미야 형무소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향년 23세. 그의 유해는 박열 의사의 고향인 경북 문경에 안장됐으며,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그의 공훈을 인정해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이날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은 “가네코 후미코는 국적과 민족을 넘어 정의와 자유를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친 인물”이라며 “그의 정신이 평화와 인권의 가치로 미래 세대에게 이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추모식이 열린 문경문화원에는 가네코 후미코와 박열 의사의 삶을 조명하는 특별전도 마련됐다. 전시장에는 두 사람의 생애와 재판 기록, 옥중 결혼 이야기, 육필 자료와 사진 등이 전시돼 참석자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특히 벽면에 새겨진 가네코 후미코의 말은 1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깊은 울림을 전했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 살 뿐이다.” 또 박열 의사의 글귀인 “우리들은 사랑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부터 시작된다”는 두 사람이 함께 걸었던 삶과 신념을 되새기게 했다.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는 모두 아나키스트였다. 그들이 꿈꾼 세상은 특정 민족이나 국가의 승리가 아니라 권력과 억압이 없는 자유로운 사회였다. 두 사람은 식민지배와 천황제를 함께 거부했고, 국적을 뛰어넘어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위해 연대했다.

가네코 후미코는 일본인이었지만 일본 제국주의를 거부했고, 조선인이 아니었지만 조선 독립을 자신의 신념으로 받아들였다. 그의 삶은 민족보다 양심이, 국적보다 정의가 앞설 수 있음을 보여주는 드문 역사적 증언이다.

서거 100주기를 맞은 오늘 문경에서 울린 추모의 묵념은 한 사람을 기리는 의식을 넘어 자유와 인권, 평화라는 보편적 가치를 다시 되새기는 시간이었다. 일본과 한국의 참석자들이 함께한 이날 추모식은 가네코 후미코와 박열이 꿈꾸었던 연대와 자유의 정신이 100년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히 살아 있음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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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석

'조국 근대화의 주역들' 저자, 傳奇叟(이야기꾼), '국민일보' 논설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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