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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그릴라 대화, 미국의 ‘강력한 몽둥이’와 싱가포르의 ‘다자간 대화’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이 지난 30일(현지시간)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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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싱가포르 일간지 <스트레이트 타임스(The Straits Times)> 출신의 베테랑 언론인인 필자가 지난 5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23회 샹그릴라 대화(Shangri-La Dialogue)를 분석한 안보 칼럼입니다.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강력한 군사력을 강조한 미국의 강경책과, 대화와 규칙 중심의 평화를 강조한 주최국 싱가포르의 외교적 시각을 대조하여 전달합니다. 아시아엔은 독자 여러분의 이해를 돕고자 국문 번역문과 영문 원문을 함께 게재합니다. <편집자>

[아시아엔=아이반 림 싱가포르 스트레이트타임즈 전 선임기자]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를 표방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패권국으로 부상하는 상황을 매우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지난 5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샹그릴라 대화에서 피터 헥세스(Peter Hegseth) 미국 국방장관은 미국이 뒷받침해 온 지역 힘의 균형을 깨뜨리려는 경쟁국의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그는 세력을 확장하는 중국이 남중국해 등지에서 힘을 과시하는 것에 대해 “당연한 경계심”을 표명하며, 미 국방부는 이러한 균형이 무너지는 것을 저지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헥세스 장관은 미국이 단독으로 행동하는 ‘론 레인저(Lone Ranger)’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대신 아시아 동맹국 및 파트너국들이 집단 군사력의 ‘아시아형 모델’에 함께하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대립을 피하려는 아시아 국가들의 접근 방식에 발맞추어, 미국은 “말은 부드럽게 하되 큰 몽둥이를 들고 다닌다”는 원칙 아래 당당하고 강력한 태도로 정세를 이끌어갈 것임을 내비쳤다.

5월 중순 베이징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이 ‘건설적 전략적 안정’ 틀에 합의했기에 여전히 대화의 여지는 존재한다. 그럼에도 미 국방장관은 미국의 막강한 화력을 강조했다. 그는 “앞으로 우리는 대화의 시기와 방식을 신중히 결정할 것이며, 무엇보다 행동으로 먼저 보여줄 것”이라며 “빈사공약이나 겉치레보다는 압도적 타격 능력, 전략적 규율, 그리고 실용적인 협력을 최우선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연설은 힘의 논리를 강조하는 수사로 가득했다. 장관으로서의 자격과 진정성을 입증하듯, 그는 “내가 미 육군 소위로 근무할 당시 첫 소대의 모토는 ‘평화를 열망하는 자, 전쟁을 준비하라’였다”고 연설 중간 회상했다.

제1열도선 사수와 동맹국의 실질적 전투력 강조

이어 중국의 위협을 다시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헥세스 장관은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평화를 바라는 자는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는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 첫 소대 시절부터 ‘제1열도선(First Island Chain)’에 이르기까지 말입니다.” 제1열도선은 일본에서 시작해 동남아시아로 이어지며 중국 동부 해안과 맞닿아 있는 섬들의 연결선으로, 서태평양에서 잠재적 군사 활동을 감시하고 대응하는 미국의 전방 방어선이다.

헥세스 장관은 직설적인 메시지도 덧붙였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미국은 태평양 국가입니다. 우리는 중국이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미국의 존재감을 존중하길 바라며, 단지 요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를 뒷받침할 확실한 군사적 실력을 유지할 것입니다.”

미 국방 수장은 호주, 일본, 한국, 필리핀, 인도 등 국방력 강화를 위한 트럼프의 ‘골드 표준’ 군사비 지출 기준을 충족하려는 동맹과 파트너들의 지원적 역할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아울러 그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태국이 실질적 위험과 책임을 함께 분담하고 있는 점을 치하했다. 샹그릴라 대화의 주최국인 싱가포르에 대해서는 “군사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미군의 물자 지원 및 순환 배치를 위한 핵심 거점 역할을 함으로써 체급 이상의 역량을 지속적으로 발휘하고 있으며, 우리의 공동 지역 안보 태세를 강화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강경한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헥세스 장관은 전후 역사의 교훈을 인용했다. “역사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동맹은 내걸린 국기 수가 아니라 형성된 부대(전투력)의 수로 평가받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회의가 아니라 더 많은 전투력입니다. 여기서 이런 말을 하게 되어 유감이지만, 샹그릴라(말잔치)는 줄이고 군함과 잠수함은 더 늘려야 합니다.”

찬춘싱 싱가포르 국방장관

싱가포르의 반론: 대화와 군사력의 균형, 그리고 규칙의 중요성

날것의 물리적 힘을 강조한 미국의 발언은 외교를 통한 분쟁 해결이라는 개념과 선명한 대조를 이뤘다. 5월 29일부터 31일까지 사흘간 열린 이번 행사에는 44개국에서 온 54명의 장관급 대표와 국방 수뇌부들이 참석해 오해를 줄이고 차이점을 명확히 하기 위한 연쇄 대면 회담을 가졌다. 대화는 위기가 군사적 충돌로 비화하기 전에 관리하는 핵심 열쇠로 여겨진다.

예상대로 주최국인 싱가포르는 미국의 국방 수장에게 균형 잡힌 시각을 제시하는 역할을 맡았다. 샹그릴라 대화의 성과에 대한 고찰에서 찬춘싱(Chan Chun Sing) 싱가포르 국방장관은 각국 국방장관들과의 대화에서 도출된 ‘세 가지 잘못된 이분법(false dichotomies)’을 지적했다.

첫째는 ‘대화’와 ‘무장’ 사이의 이분법이다. “혹자는 당신이 대화를 좋아하는 평화주의자이거나, 아니면 거대한 총을 좋아하는 강경파 중 하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선택입니다. 실질적인 군사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대화는 신뢰성을 얻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이웃 국가들과 대화하지 않은 채 거대한 군사력만 키우는 것은 불필요한 사고와 전쟁을 부르는 지름길입니다. 우리에게는 둘 다 필요합니다.”

둘째로 찬 장관은 국제 행동 규범을 무시하고 ‘거래적 방식’으로 행동하려는 일각의 경향을 언급했다. “자국에 유리할 때만 규칙을 따르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규칙을 완전히 버린다면 예측 가능성을 잃게 됩니다. 공통의 규칙이 사라지면 국가들은 결국 모두가 피해자가 되는 치열한 ‘제 살 깎아먹기(beggar-thy-neighbor)’ 정책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셋째는 ‘오늘의 불’에만 집중하고 ‘내일의 과제’를 잊는 태도다. “단기적인 시각에만 매달린다면 우리는 다음에 다가올 재난에 계속해서 압도당할 것입니다. 긴급한 일이 중요하고 장기적인 과제를 완전히 가로막게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막후 외교’의 가치: 위기를 조용히 막아내는 평화의 장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는 새로운 이슈로는 사이버전과 핵심 기반 시설 보호가 떠올랐다. 그 일환으로 이번 샹그릴라 대화 기간 중 17개국이 참석한 가운데 해저 케이블 네트워크 보호를 위한 ‘해저 기반시설 방어 교류 가이드라인(Guide)’이 공식 출범했다.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주최로 열린 제23회 상그릴라 대화는 워싱턴의 회의적인 정치인들에게는 군사적 위세를 과시하는 수많은 플랫폼 중 하나로 보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회의의 ‘진정한 마법’은 조명이 비추지 않는 비공개 오찬과 사적 회동에서 일어난다.

찬 장관은 “각국 지도자들이 샹그릴라에 모이는 이유는 연대를 확인하고, 전략적 신뢰를 구축하며,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과제들을 직접 해결하기 위함”이라며 “방위 외교에서 ‘성공’이란 위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조용히 차단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연례 싱가포르 고위급 대회가 세계에 새로운 분쟁 가능성을 경고하고 예방하는 역할을 다하고 있는 한, 이곳은 진정한 평화의 장이라 할 수 있다.

아시아엔 영어판 : U.S. Looks Askance at an Asia-Pacific Where China Looms as Rival Hegemon – THE AsiaNU.S. Looks Askance at an Asia-Pacific Where China Looms as Rival Hegemon – THE AsiaN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왼쪽)과 찬춘싱 싱가포르 국방장관. AI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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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반 림

싱가포르, 아시아기자협회 명예 회장, 아시아엔 아세안지역본부장, 전 스트레이트타임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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