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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아이반 림 싱가포르 스트레이트타임즈 전 선임기자] 로봇과 생성형 AI가 확산됨에 따라 싱가포르가 이른바 ‘고용 없는 성장'(Jobless Growth)이라는 난제와 마주하고 있다. 이를 둘러싸고 집권 여당인 인민행동당(PAP)과 야당 노동자당(WP)의 정책 논쟁이 불거지고 있다.싱가포르 정부는 AI가 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분야를 선별해 경제 전반에 대한 전략적 재검토 작업에 착수했다. 정부에 따르면 목표 성장률은 연 2~3%대다. 지난 2년간 싱가포르 노동시장은 실업률 2%의 견조세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2025년 들어 구조조정 인원이 1만4,490명으로 증가하면서 우려가 확대되고 있다. AI 및 자동화 도입 기업들이 늘어나면서 전문직 서비스·금융·정보통신·기술 분야 등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AI로 인한 노사 갈등만은 막아야…”
이에 115만명 규모의 노동단체인 전국노동조합총연맹(NTUC)의 사무총장이자 PAP 소속의원인 응치멩(싱가포르는 의원 겸직이 가능)이 ‘일자리 감소 없는 AI 전환’을 촉구하는 의회동의안을 제출했다. PAP의 산하단체인 NTUC는 정부에 기업 단위 직업훈련 네트워크 확충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탄시렝 싱가포르 인력부 장관도 AI로 인해 일부 일자리가 대체될 수 있다고 언급하면서도 “AI로 인해 노사 갈등이 빚어져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탄 장관은 NTUC가 제출한 의회동의안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며 “정부가 유관 기관과 함께 노사정 위원회를 구성해 노동자의 역량 개발과 기업의 직무 재설계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신설될 위원회는 4억 싱가포르 달러(약 4,740억원) 규모의 기금을 운용해 관련 정책을 지원할 것이라 설명했다. 이에 따라 각 기업들은 최대 15만 싱가포르 달러(약 1억7,770만원) 상당의 인력개발 보조금을 지급받게 될 전망이다.
야당인 WP는 여당의 동의안 자체에는 동의했으나 세부 정책에서는 이견을 표했다. AI 도입에 따른 직무훈련이 아닌 실업자들의 구직 지원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에 싱가포르 의회는 지난 5월 24명의 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7시간의 정책 토론을 벌였다. 이 자리에서 WP 소속 재무스 림 의원은 “AI 도입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이 목표라면, 실업률 감소나 직무 재교육이 아닌 신규채용 촉진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WP는 실업급여 제도 개편을 주장하고 있다. 현행 제도는 구직 중인 이들에게 6개월간 최대 6,000 싱가포르 달러(약 710만원)를 지원한다. 반면 WP의 개편안은 6개월 간 실직자 최종 급여의 40%를 지급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 경우, 고소득 전문직들도 실업급여의 상한선 없이 급여의 40%를 보장받을 수 있다. WP는 이에 대한 재원은 노사 분담금으로 충당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WP는 이외에도 모든 성인에게 AI 직무 역량 훈련비 500 싱가포르 달러(약 59만원)를 지급하는 기금 조성을 제안했다. 기업 소득세와 GIC·테마섹 등 국부펀드의 운용 수익을 재원으로 하는 일종의 사회적 배당 개념이다. 기금 중 일부는 기업의 전문가 초빙 AI 심화교육에 활용될 수도 있다. 산하 노조가 없는 WP는 정부와 NTUC가 주도하는 노사정 프레임워크가 아닌, 개별 노동자에게 직접 AI 훈련 지원금을 지급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토론 직후 열린 표결에선 응치멩 의원이 발의한 의회동의안이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여야 모두 AI 전환에 따른 정책 변화에 대해 동의한 것이다. WP가 토론 과정에서 대안을 제시하긴 했지만 공식 수정안을 제출하지는 않았다. 여당 87석 대 야당 12석의 구조를 감안하면 수정안을 내도 부결될 가능성이 높았다.
싱가포르 의회는 통상적으로 토론 종료 이후 별도의 숙려 기간 없이 의회동의안에 대한 표결을 진행한다. — 편집자주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싱가포르 정치권이 ‘경제 성장이 일자리 창출을 보장하지 않는 시대’가 왔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싱가포르는 도시국가의 특성 상 (무인) 자율주행차와 무현금 결제시스템이 선제적으로 도입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또한 “경제 허브로서 머신러닝(컴퓨터가 데이터를 스스로 학습해 패턴을 찾아내는 기술) 엔지니어, AI 프로덕트 매니저, AI 윤리 담당자, 사이버 보안 전문가 등의 전문 인력이 보장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AI 인력 수급 어려움…해외 인재 대폭 유치해야”
이보다 비관적인 전망도 제시됐다. 또다른 전문가는 “싱가포르 대학의 교육 수준으로는 기술의 발전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며 “인재 양성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정치권이 리스크를 감수하더라도 해외로부터 AI 인력을 대폭 유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정부의 실업급여에 대해서 “6개월 간 6,000 싱가포르 달러(약 710만원)로 제대로 된 AI 직무교육을 이수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대안으로 AI 생산성 증대에 따른 일종의 이익공유제를 제시하기도 했다. 그는 “AI가 생산성을 끌어올려 추가적인 이익이 창출된다면, 그 혜택은 자본가나 고숙련 노동자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며 “일자리를 잃게 된 저숙련 노동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싱가포르 내 대형 IT 플랫폼들에게 매출의 일부를 부담금으로 부과하는 방안을 고려해볼만 하다”라고 설명했다.
아시아엔 영어판: Parliament: Singapore Must Not Have Jobless Growth Amid AI Transition – THE Asi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