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시 반에 시작한 한국과 이란의 경기가 동점으로 끝나고 숙소에 돌아오니 오후 8시가 넘었다. 임원들은 내일 저녁 식사 장소를 답사하러 갔고, 나와 저녁을 먹기로 했던 직원에게도 일이 생겼다. 결국 혼자 저녁을 먹게 되었다.
차가 막 숙소로 들어가려는데 그 직원이 길게 늘어선 줄을 가리켰다. “저기가 맛있다고 알려진 라면집이에요. 빨간 옷을 입은 사람과 빨간 간판이 보이시지요?”
줄이 너무 길어 일단 숙소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왔다. 그러나 줄은 조금 짧아졌을 뿐이었다. 빨간 옷을 입은 남자가 손님에게 일행 수를 묻고 한 사람씩 문 안으로 들여보내고 있었다. ‘아, 이제 먹게 되는구나’ 하고 따라 들어갔다. 그런데 문 안으로 들어서자 이번에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 또 줄이 있었다. 계단 반대편에서는 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하나둘 올라오고 있었다.
계단 거의 끝에 있는 안내판에는 여기서부터 약 30분이 걸린다고 적혀 있었다. 차단 줄이 열리자 이번에는 키오스크가 나타났다. 메뉴를 선택하고 요금을 지불하니 식권이 나왔다. 이어지는 줄 사이에는 작은 테이블이 있었고, 그곳에는 주문서를 작성할 수 있도록 볼펜도 놓여 있었다. 주문서에는 면의 익힘 정도와 양념의 양 등을 선택하는 항목이 있었다.

식권과 주문서를 들고 마지막 차단 줄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그때 벽에 붙어 있는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32개의 좌석마다 불이 들어오고, 손님이 나가면 ‘공석’이라는 표시가 뜨는 좌석 안내판이었다. 주차장에 빈자리를 알려주는 주차 안내판과 비슷해 보였다.
드디어 마지막 차단 줄이 열렸다. 직원이 나를 5번 좌석으로 안내했다. 양쪽에 깊은 칸막이가 있는 자리였다. 독서실의 열람석보다도 좁아 보였다. 오른쪽에는 서양 남자가 앉아 있었다. 굵은 팔에는 문신이 가득했다. 팔이 서로 닿지 않도록 나도 모르게 몸을 조금 안쪽으로 붙였다.
정면에는 위로 말아 올릴 수 있는 작은 발이 내려져 있었다. 직원은 주문서와 식권을 받아갔다. 잠시 후 주문한 라면이 작은 창을 통해 밀려 들어왔다. 직원은 허리를 굽혀 인사한 뒤 발을 내려주었다.
삼면이 막혔다. 나는 혼자였다.
옆자리의 사람과도 서로 말을 나눌 수 없고, 눈을 마주칠 수도 없었다. 혹시 팔이라도 닿을까 조심하면서 라면을 먹었다. 내 앞에서 함께 기다리던 젊은 한국인 부부도 생각났다. 그들은 아마 서로 옆자리에 앉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공간에서는 서로의 얼굴조차 제대로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상대방이 지금 맛있게 먹고 있는지, 면이 너무 익지는 않았는지, 국물이 입에 맞는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 문득 대학 시절의 동물실험이 떠올랐다. 쥐와 토끼를 이용해 여러 차례 실험을 했다. 쥐는 종류에 따라 사육 방법이 달랐다. 비교적 온순한 스프라그 돌리 랫(Sprague Dawley rat)은 두세 마리씩 함께 넣기도 했지만, 사나운 리스터 후디드 랫(Lister Hooded rat)은 한 마리씩 케이지에 넣어야 했다.
라면집의 좌석은 동물실험실의 케이지와 물론 다르다. 사람은 스스로 그 자리를 선택했고, 맛있는 라면을 먹기 위해 기꺼이 긴 줄을 기다렸다. 그런데도 삼면이 막힌 작은 공간에 한 사람씩 들어가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오래전 실험실의 케이지가 잠시 떠올랐다.
어쩌면 이것이 일본에서 말하는 ‘히토리(ひとり)’ 문화의 한 단면인지도 모르겠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술을 마시고, 혼자 여행하고,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 혼자 있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기보다 하나의 생활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문화다.
이 라면집은 그것을 아주 정교하게 공간으로 만들어 놓았다. 기다리는 것부터 주문하는 것, 자리에 앉는 것, 음식을 받는 것,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것까지 모두 혼자서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조금 전까지 나와 함께 기다리던 사람들이 계단을 하나둘씩 올라오고 있었다. 나도 그들 사이에 섞여 계단을 올라왔다.
문득 공항의 수하물 컨베이어 벨트가 떠올랐다. 한 사람씩 들어가고, 한 사람씩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거리로 나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