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칼럼

주제 파악을 위한 질문

많은 이들이 겪는 우울과 만성적인 불안, 그리고 끝없는 공허함은 소유가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존재의 뿌리를 내릴 ‘영적 주소지’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이룬 업적이나 타인의 평가로 자신의 위치를 증명하려 하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기준들 위에 세워진 자아는 금방 길을 잃어버리고 방황하게 됩니다. 내가 만들어낸 성취의 크기가 내 좌표의 정밀도를 결코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내비게이션이 먹통이 되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고 현재 위치를 재탐색하는 것입니다. 방향을 잃은 채 속도를 내면 방황하는 시간만 늘어날 뿐입니다.-본문에서 <AI 생성 이미지>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욥기 38:4)

욥을 향한 하나님의 첫 마디는 질문이었습니다. “네가 어디 있었느냐.” 욥기의 앞선 서른일곱 장이 온통 ‘누가 무엇을 했느냐’, ‘어떤 죄를 지었느냐’를 둘러싼 치열한 논쟁이었던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한 일을 따지지 않으시고, 그들의 좌표, 위치를 물으셨습니다.

성경에서 이 질문이 처음 등장한 곳은 에덴동산이었습니다. 선악과를 먹고 숨어버린 아담을 향해 하나님이 하신 말씀도 같았습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창세기 3:9)

이것은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가장 처음으로 마주하는 창조주의 질문이기도 합니다. 성경이 인간을 향해 던지는 첫 질문은 행위에 대한 추궁이 아닙니다. 위치 파악, 주제 파악의 질문입니다.

신앙은 행위가 아니라 존재에 대한 질문입니다. 종교적 열심이나 도덕적인 성취를 가지고 내 존재를 증명하려는 시도를 멈추고, 창조주 앞에서 나의 정확한 주제 파악부터 하는 것, 그것이 신앙의 첫걸음입니다.

오늘날 현대인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살아가지만 정작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알지 못하는 맹목적인 분주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투두 리스트’와 ‘버킷리스트’를 잔뜩 적어놓고 가속 페달을 맹렬하게 밟고 있지만, GPS는 수신 불가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나의 정확한 위치 파악이 안 된 채 무작정 대세를 따라 질주하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겪는 우울과 만성적인 불안, 그리고 끝없는 공허함은 소유가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존재의 뿌리를 내릴 ‘영적 주소지’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이룬 업적이나 타인의 평가로 자신의 위치를 증명하려 하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기준들 위에 세워진 자아는 금방 길을 잃어버리고 방황하게 됩니다. 내가 만들어낸 성취의 크기가 내 좌표의 정밀도를 결코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내비게이션이 먹통이 되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고 현재 위치를 재탐색하는 것입니다. 방향을 잃은 채 속도를 내면 방황하는 시간만 늘어날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디 있는지 몰라서 묻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모르기 때문에 물으십니다.

광대한 우주의 기초를 놓으신 이가 나의 좌표를 묻고 계십니다. “너 지금 어디 있느냐”, “그리고 내가 이 모든 것을 지을 그때,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 아시아엔 후원계좌 ▼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후원은 아시아엔과 아시아 저널리즘의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됩니다.
우리은행 1005-601-878699 (주식회사 아자미디어앤컬처)

석문섭

베이직교회 목사

필자의 다른 기사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본 광고는 Google 애드센스 자동 게재 광고이며, 본 사이트와는 무관합니다.
Back to top but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