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지낸 제임스 울시(James Woolsey)가 지난 21일 워싱턴 자택에서 뇌졸중으로 별세했다. 향년 84세. 1993년부터 1995년까지 CIA를 이끈 그는 소련 붕괴 이후 미국 정보기관이 새로운 안보 위협에 대응해야 했던 전환기의 책임자였다.
울시는 한국인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인물이다. 제1차 북핵 위기가 고조되던 1994년 1월 극비리에 한국을 방문해 김영삼 대통령을 비롯한 한국 정부 고위 관계자들과 북한 핵 문제를 협의했다.
그의 별세 소식을 접하자 화려한 경력보다 32년 전 겨울의 긴박했던 하루가 먼저 떠올랐다. 1994년 1월 20일자 한겨레신문 1면에는 ‘서울에 나타난 미 중앙정보국장’이라는 제목과 함께 울시 국장이 국방부 청사로 들어서는 사진이 실렸다. 당시 국방부 출입기자였던 필자는 그보다 보름여 전인 1월 초, 국방부의 한 국장 방에서 차를 마시다가 울시 국장의 방한 계획을 우연히 들었다. 울시 국장이 1월 19일 국방부를 방문해 이병태 국방부 장관을 만나고, 방한 기간 김영삼 대통령과 한승주 외무부 장관, 김덕 국가안전기획부장 등과도 회동할 예정이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19일 오전 울시 국장의 국방부 방문 기사를 작성해 팩스로 회사에 보냈다. 당시에는 기자들에게 노트북이 보급되기 전이어서 원고지에 쓴 기사를 팩스로 보내거나 전화로 내근 기자에게 불러주는 일이 흔했다. 미국 정보기관 수장의 극비 방문인 만큼 별도의 공식 자료가 나올 리 없었다. 다만 그의 방한 목적이 당시 최대 안보 현안이던 북한 핵 문제에 맞춰져 있다는 점은 분명했다.
결정적인 순간은 사진부와의 협업에서 나왔다. 당시 한겨레신문 이용선 사진부장과 통화하던 중 이 부장이 “울시 국장이 몇 시에 오느냐”고 물었다. 나는 국방부 방문 시각이 오후 3시라는 사실을 확인해 알려줬다. 이용선 부장은 곧바로 이종찬 기자와 이정우 사진기자를 현장에 투입했다. 두 사람은 치밀하게 역할을 나눠 울시 국장이 국방부 청사 현관으로 들어서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사진을 찍는 것만으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울시 국장의 경호원들과 국방부 헌병들이 필름을 수색하자 한겨레 기자들은 촬영한 필름 일부를 건네고, 정작 중요한 필름은 신발 속에 감추는 기지를 발휘했다. 그렇게 울시 국장의 극비 방한을 보여주는 역사적인 사진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그 사진은 당일 밤 제작된 이튿날치 한겨레신문 지방판부터 1면에 실렸다. 이어 AP와 AFP 등 주요 통신사를 통해 전 세계로 전송됐다. 국내 주요 신문들도 ‘한겨레신문 제공’이라는 설명과 함께 20일자 수도권판부터 사진과 관련 기사를 게재했다.
미국 최고 정보기관 책임자의 극비 동선이 언론 카메라에 포착돼 공개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보도 직후 안기부 간부와 국방부 고위 관계자들의 압박이 이어졌다. 국가안보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사진을 빼달라는 요청도 받았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이 사진이 국민의 안보 불안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거부했다. 미국 CIA 국장이 북한 핵 문제를 한국 정부와 협의하기 위해 서울에 왔다는 사실은 한미 양국이 북핵 위기에 공동 대응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했다. 이미 사진이 해외 통신사에 전송된 상황에서 보도를 거둬들이는 것도 불가능했다. 결국 이 사진 보도로 문책이나 처벌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특종은 결코 한 사람의 작품이 아니었다. 이용선 사진부장의 결단과 배짱, 이종찬 기자의 헌신적인 지원, 이정우 기자의 용기와 기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나는 그날의 취재를 사진부에 연결한 국방부 출입기자였을 뿐이다.
훗날 2018년 세상을 떠난 이용선 선배를 추모하며 그를 ‘자나 깨나 사진만 생각하는 기자’라고 썼던 것도 바로 그날의 기억 때문이었다.
울시는 CIA 재임 중 소련 붕괴 이후의 국제질서에서 북한과 이란, 국제 테러와 대량살상무기 확산 등을 새로운 안보 위협으로 경고했다. 다만 그의 재임 기간 CIA 내부에서 올드리치 에임스 간첩 사건이 드러나면서 혹독한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는 취임 23개월 만인 1995년 1월 CIA를 떠났다.
CIA를 떠난 뒤에도 울시는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와 국제 안보 현안에 대해 꾸준히 목소리를 냈다. 시대와 정권은 바뀌었지만 한반도 안보를 바라보는 그의 관심은 오래 이어졌다.
그를 추모하며 한 사람의 정보기관장을 넘어 역사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
북핵 위기로 한반도 전체가 숨을 죽이던 1994년 겨울, 삼엄한 경호 속에서 서울 국방부 청사로 걸어 들어가던 제임스 울시의 모습. 그리고 그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몸을 던졌던 기자들의 치열한 현장이 함께 기억난다.
기자는 역사의 방향을 정할 수는 없지만, 역사가 지나가는 순간을 기록할 수는 있다. 32년 전 한겨레신문 1면에 실린 한 장의 사진은 그날의 긴장과 한미 양국의 움직임, 그리고 현장을 지킨 기자들의 책임을 지금까지 전하고 있다.
제임스 울시 전 CIA 국장의 명복을 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