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혜미의 글로벌 교육칼럼] 진정한 ‘팀웍’이란

얼마 전 한국화 화가 한 분을 싱가포르 한국국제학교에서 미술수업을 하도록 주선한 적이 있다. 한국화에 대한 강의에 이어 화가가 스케치한 커다란 산수화를 학생수만큼 여러 조각으로 나눠 각자 취향대로 색을 칠하게 한 다음 그 조각을 다시 이어서 한 장의 산수화를 완성하는 작업이었다.

협동화 작업을 하면서 아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색을 마음껏 칠하며 즐거워했다. 수업을 지켜보던 나도 마음이 흐뭇했다. 완성된 그림 조각들을 직소퍼즐 맞추듯이 연결하니 각자의 독특한 색감으로 그린 조각들이 어우러져 한 폭의 아름다운 산수화가 완성되었다. 함께 힘을 모아 이뤄진 작품이라는 사실에 모두 환호성을 냈다. 이렇게 작은 조각들이 연결돼 큰 그림이 완성되듯 가정과 사회와 직장도 각자 맡은 역할들이 모여서 큰 일을 이뤄 나가는 협력과 조화의 가치를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팀별로 수행하는 프로젝트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팀 안에서의 협력과 조화다. 과제를 수행하는 동안 팀 구성원들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얼마나 잘 소통하고 협력했는지를 최종 점검하는 것은 가시적 성과 못지않게 중요한 과정이다.

해외생활을 처음 시작하면서 대학 부설 어학과정을 다닌 적이 있다. 그 과정 중?각자의 팀에 적합한 주제를 선택하여 함께 연구하고 발표하는 프로젝트가 있었다. 여러 그룹 중 최종적으로 우수한 성과를 거둔 그룹에게 상을 주고 그 결과에 따른 점수가 그룹별 성적에 반영되는 시스템이었기에 각 그룹에서는 모두 그 상을 바라보며 경쟁적으로 노력했다. 도서관에서 마주치면 각 그룹원들이 서로의 진행상태에 대한 기밀을 유지하지 위해 대화를 피하면서 상대 그룹이 무엇을 하는지 정보수집에 관심을 보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막상 최종 심사를 받는 날에 예상 밖의 일이 벌어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장 훌륭한 연구를 유창하게 발표하여 우수한 결과를 예상했던 팀을 제치고 의외로 평범한 주제로 팀원 모두가 발표한 팀이 최우수상을 받게 된 것이다. 그 이유는 가장 팀웍이 잘 된 팀에게 가장 점수를 후하게 주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그룹들은 짧은 시간에 좋은 성과를 올리기 위해 분업을 하는 방식을 택했다. 마치 한권의 책을 만들 듯 작가가 글을 쓰고 그래픽 디자이너가 삽화를 넣고 누군가가 교정을 보는 것처럼 한 두 사람이 연구하여 글을 쓰고 컴퓨터에 능숙한 사람이 자료를 만들고 말 잘하는 사람을 뽑아 발표를 하게 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팀웍을 잘 해서 상을 받은 팀은 연구주제의 각 장 마다 팀원 각자가 연구 한 것을 소 주제별로 각자가 발표를 했고, 브레인 스토밍부터 시작하여 연구하는 전 과정에 걸쳐 주제에 대한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수시로 모여서 많은 회의를 했으며, 그룹 전원이 전 과정에 모두 적극적으로 연구와 발표에 참여한 결과를 인정받았다. 또한 각 그룹에서 한 명씩 추천해 특별상을 받게 되었는데 이는 팀원들의 화합을 위해서 노력한 사람에게 주는 상으로 팀원들의 의사소통을 위해서 중간 역할을 잘 한 사람 혹은 팀웍을 위해서 가장 많이 시간과 노력으로 공헌한 사람에게 돌아갔다.

나는 그때 진정한 팀웍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자신의 공정밖에 모르는 것은 진정한 팀웍이 아니라 분업일 뿐이라는 것과 비록 한 분야의 일을 맡아서 하더라도 자신이 전체 공정에서 어떤 부분의 일을 하고 있으며 그 일이 전체로 볼 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깨닫고 있다면, 그리고 비록 각자가 분업화된 일들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함께 같은 목적을 향해서 함께 바라볼 수 있다면 그것 역시 팀웍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정에서 자녀교육은 때로 팀웍이 아니라 분업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있다. 아버지는 자녀의 학비를 위한 재정담당, 어머니는 자녀의 성적관리 담당, 자녀는 공부 담당으로… 비록 그런 환경에서도 항상 서로 소통하고 함께 같은 곳을 향해 바라볼 수 있다면 그것 역시 팀웍이 아니라고는 말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의사소통이 결여된 채 누군가의 일방적인 주도 아래 이뤄지고 있다면 그것은 결코 팀웍이 아니라 생산성이 보장되지 않은 ‘소득 없는 분업’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부모들이 분업을 하고 있는지, 자녀의 미래를 위한 협력을 하고 있는지 좀더 명확해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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