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혜미의 글로벌교육] 때론 신속성보다 신중함이 더 중요하다

1997년 12월 22일 한양대학교에서 입학원서를 접수하고 있는 수험생의 모습 <사진=한양대학교 제공>

[아시아엔=채혜미 재싱가포르 언론인]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가장 놀라는 점은 모든 일들이 신속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통신사에 인터넷 설치를 요청하면 하루 만에 개통시켜 주고, 은행에 가면 순식간에 다양한 업무를 처리해주고 병원에 가서도 최첨단 기기로 진단을 받고 그 자리에서 신속하게 진찰을 받을 수 있다. 신속한 일처리에 재외동포들은 경탄하곤 한다.

특히 해외에서 핸드폰이나 노트북 컴퓨터의 A/S 받아보면 한국인의 신속·정확한 일처리 능력에 자부심을 갖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에 의한 최첨단 프로그램들이 전 세계적으로 급격히 확산되면서 한국인의 장점인 신속성에 대한 차별성이 점점 약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차세대들의 글로벌 경쟁력은 과연 어디에 초점을 두고 키워야 할까? 과연 한국인의 강점과 약점은 무엇이며 해외생활을 하면서 현지에서 무엇을 어떻게 배워야 할 것인가?

싱가포르에 살면서 현지인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배울 수 있던 것 중 인상적인 것들이 있다. 한국에 비해서 일이 빨리 진행되지는 않지만 어느 날 갑자기 백지화되거나 진행 도중에 윗사람에 의해서 계획이 수시로 바뀌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또한 현지인들의 일하는 방식이 한국인에 비해 신속성·융통성·순발력은 좀 부족해 보일 수도 있지만 장기적인 계획과 정해진 시스템에 맞추어 단계별로 꾸준하게 추진하여 완성도를 높이는 능력은 뛰어나다. 물론 일의 종류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첫 계획을 잡을 때 다양한 방법을 비교·분석하며 결론을 도출하기 때문에 기획단계에서 혹 시간이 많이 걸릴 수 있다. 하지만 미리 모든 상황을 반영하여 계획을 만들어낸 경우는 변화되는 상황에 따라 계획을 수시로 바꿀 필요가 없기 때문에 결코 효율성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또한 확실한 계획에 의한 순차적으로 진행하다 보면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실수할 확률이 줄기 때문에 그 진행과정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고 일을 마무리 했을 때 보람과 성취감을 충분히 누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에 반하여 한국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신속한 결정에 따라 빨리 진행하지만 때로 철저한 준비 없이 시작하는 경우도 있고, 중도에 백지화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진행 중간에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해도 대비책이 제대로 준비되지 못한 경우도 있다. 특히 어떠한 일을 시작할 때 단기간 성과를 위해 일을 추진하는 경우 혹은 소신이나 당위성보다 대외적인 부분에 중점을 두는 경우에는 노력에 비해 최종 결과가 기대치와 다를 수 있다. 그뿐 아니라 효율성, 추진력과 순발력 등으로만 해결되지 않는 영역에서 문제가 생기면 예상치 못한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또 원래 목적 및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는 경우도 있다. 때문에 신속하게 추진해야 할 부분과 신중을 기해야 하는 부분에 대한 분별력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두 가지의 각기 다른 방식을 잘못 적용할 경우는 엄청난 결과의 차이를 초래할 수 있다. 비단 일뿐 아니라 삶의 과정 혹은 아이들의 진학과 진로문제에서도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평생을 좌우하는 진로·진학문제는 아이들의 초등학교 시절부터 발달과정과 성향을 관찰하면서 어떤 분야에 재능이 있는지 혹은 그것을 어떤 분야에 어떻게 접목시켜야 할지 시간을 두고 아이와 함께 대화하면서 계획하여야 한다. 또 다양한 자원봉사 및 캠프 그리고 독서와 체험학습 등을 통해서 아이가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자연스럽게 갖도록 도와야 한다.

그러나 대학입학 접수창구에서 마감시간 경쟁률을 보고 전공을 신속하게 결정을 내리는 부모에 의해, 적성에 맞지 않는 공부를 하면서 흥미를 잃고 진로에 대한 혼란을 가지게 되는 대학생들이 적지 않다. 자녀의 진로선택은 평생의 삶을 좌우하는 것이기에 신속성보다 신중하게 결정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단지 진학뿐만 아니라 해외취업이나 워킹 홀리데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현지 상황에 대한 예비지식 없이 표면적인 설명만 듣고 신속한 결정을 하고 해외에 나왔다가 현실에 대한 실망과 좌절로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을 호소하는 한국 젊은이들이 많다고 한다. 이러한 중대한 결정 역시 신속함보다는 신중함이 우선 되어야 한다. 후회 없는 탁월한 선택을 할 수 있는 힘을 스스로 기를 수 있도록, 글로벌시대에 걸맞는 신중함이 고려된 가정교육의 주춧돌을 제대로 놓아주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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