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혜미의 글로벌 교육칼럼] 가슴에 오래도록 남는 대화
해외에 살면서 누리는 혜택이 있다면 아이와 함께 다양한 캠프를 즐길 수 있었다는 점이다. 방학은 아이들뿐 아니라 나에게도 설렘으로 기다려지는 시간이었다. 특히 다민족과 함께 참여하는 가족캠프를 통해서 새로운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가진 것은 마치 새로운 음식을 시식해 보는 것처럼 신선한 경험이었다. 1년에 두 번 정도 2~3주 간 참여했었던 가족캠프는 아이에게는 가정과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것들을 다른 가정들을 통해서 익힐 수 있는 유익한 학습현장이 되었다. 나에게는 다른 나라 부모들의 자녀를 대하는 모습 속에서(예: 언성을 전혀 높이지 않으면서도 부모의 권위를 잃지 않은 가운데 아이에게 차분하게 설명하여 문제를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반성하게 하게 것) 부모로서 자신의 부족함을 비춰보는 계기가 되었다.
20가정 정도 참여하는 가족캠프에는 몇몇 청년 자원봉사자를 포함한 참가 부모들이 모두 스텝이 되어 각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하루 일정이 끝나고 아이들 취침점검이 마무리되고 나면 이후 부모들끼리 모여서 하루의 생활을 함께 나누는 의미 있는 대화의 장이 펼쳐진다. 이 시간을 위해 낮에 몇몇 부부들이 손수 케이크나 쿠키를 굽고 향기 가득한 차를 준비한다. 모두들 둘러 앉아 각자의 삶과 가치관 또는 교육철학을 나누는 시간이 내게는 마치 광맥을 타고 들어가 보석을 캐내는 것 같은 귀한 체험이었다.
자신이 받았던 교육에 대한 장단점, 미래의 교육의 방향 그리고 삶의 미와 교육 등 여러 가지 주제로 놓고 모두 열띤 토론이 벌어진다. 공식 프로그램이 아닌 이런 여가시간조차 공평성과 형평성에 맞도록 자연스러운 시스템이 이루어져 있다. 참석 가족 모두가 공평한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순번이 정해지면서 날마다 참가 부모 중에서 연사가 초청되고 그에 따라서 주제가 바뀌게 되는 것이다. 청중이 된 부모들은 그날의 연사 이야기를 경청 하면서 질문을 하기도 하고 그날의 주제에 맞는 깊은 대화가 오고 간다.
이런 시간을 통해 문화적인 배경이 전혀 다른 초면인 사람들끼리도 서로의 생각을 깊게 알 수 있는 기회가 되며, 주어진 시간 안에 효율적인 대화의 나누는 방법과 더불어 또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또 배려하는 태도를 배울 수 있었다. 대화의 장을 통해서 각자가 얻을 수 있는 소득이 있다면 각기 순서를 준비하는 과정을 통해서 평소에 가지고 있던 자신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정리해 보는 기회는 물론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하는 폭넓은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짧은 만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그들과의 대화가 지금껏 가슴에 남아 있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말하는 입장에서는 주어진 시간 안에 진정한 자신들의 생각을 최대한 명료하게 전달했고, 듣는 입장에서는 상대방의 진의를 제대로 듣기 위해 집중했으며 또 명확한 주제가 있는 양질의 시간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 모두가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창의적인 생각들과 더불어 삶의 체험들을 솔직하게 나누었던 시간들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만약 정보차원의 표면적이고 형식적인 대화나 혹은 누군가의 일방적으로 자신의 생각만을 주장하였다면 아마도 그것은 이미 기억의 창고에서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이런 경험을 통해서 느낀 것은 삶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모임은 많이 가졌어도 양질의 대화를 나눈 경험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깊은 대화는 고작해야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의 친구들과의 만남일 뿐 다양한 사람들과는 결코 깊은 대화를 나누어 본 적이 없는 것으로 기억된다.
대부분의 한국 가정에서는 부모와 자녀들은 주로 어떤 소재의 대화를 어떤 방식으로 나누고 있을까? 혹 일방적인 훈계나 틀에 박힌 잔소리가 일상화되지는 않았을까?
언젠가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야 할 아이들을 위해 특별한 대화의 시간을 정기적으로 마련하고, 또 그들로부터의 내면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면 먼 훗날 그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보다 큰 기쁨의 열매를 함께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장성한 자녀가 연로한 부모를 바라보면서 “언제나 제 이야기를 경청해 주신 것과 부족한 저를 늘 격려해 주신 것이 제게 큰 힘이 되었어요. 그 때 그 상황에서 제게 해 주신 진심 어린 그 이야기는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라는 감사의 말을 듣게 된다면 그 부모는 얼마나 뿌듯할까!
바쁜 생활 가운데 따로 시간을 내어 자녀들을 위해 특별한 장소에서 진지한 대화의 분위기를 만들어 보자. 부모 자신의 경험담이나 혹은 신문과 잡지에 있는 소재들 중 적합한 것을 선택하여 대화를 이끌어 내고 또 그 안에 명확한 메시지를 넣어서 함께 나누어 보자. 일방적인 강의가 되지 않도록 아이들의 생각을 먼저 진지하게 경청하고 또 격려하며 최소한의 시간으로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는 밀도 있는 대화를 시도해 보자. 이런 기회 아이들의 가슴에 오래 남는 대화가 되어 그들의 삶과 꿈을 이끄는 동력이 될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리더십의 주요한 요건으로 강조되고 있는 요즈음,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는 리더로 성장할 수 있는 자연스런 학습의 기회는 직장과 사회 이전에 바로 가정에서의 부모의 대화방법의 기술과 태도로 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Tips: 집에서 멀리 않은 곳에 공원이나 강가 등에 자녀와 대화의 장소를 마련해 두자. 경치 가 좋은 카페나 갤러리 안에 있는 조용한 커피숍도 같은 곳도 특별한 이야기를 나누 기에 좋은 장소가 될 수 있다. 그 곳에 특정한 주제를 떠올리게 하는 특별한 이름을 붙여도 좋다.
나는 아이와 진로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 항상 가는 바닷가 단골카페가 있었다. 그곳 에 들어서면 언제나 우리는 미래의 꿈을 이야기했다. 작은 수첩을 준비한 아이는 그 곳에 갈 때 마다 그 수첩을 가지고 가서 늘 변화되고 있는 자신의 미래의 꿈을 기록하고, 우리는 그 곳에 갈 때 마다 미래의 꿈을 발전 시켰다. 그래서 지금도 뉴질랜드의 웰링턴을 가면 그 카페를 가 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