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당신께 맡깁니다”

요한복음 1장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 1:12-13)

성경은 출생의 비밀을 알려주는 책입니다. 바로 내가 하나님의 아들, 딸이라는 비밀입니다. 구원이란 그 비밀을 깨닫게 되는 사건입니다. 고아인 줄 알고 살던 사람이 어느 날 부모를 만나는 감격입니다. 게다가 내 아버지가 만유의 주재라는 사실에 입을 다물지 못하는 충격입니다. 그리고는 삶에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확신입니다. 구원은 믿기지 않을 만큼 놀라운 일이라 때로는 내 확신의 넓이와 깊이가 그 사건을 다 담아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내 삶의 수준이 구원이라는 은혜에 못 미칠 때도 있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순간에 우리는 아버지의 수준에 한참 미달인 모습으로 살곤 합니다. 내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꼴을 보니 아버지의 아들, 딸로서 자격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에 누를 끼치는 모습을 자각할 때마다 구원의 확신은 흔들립니다.

그런데 구원에 있어 확신이 기준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내 확신 때문에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결정에 의해 구원받았습니다. 구원받아서 확신이 생기는 것이지 확신이 있어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이후 생긴 확신도 때로는 흔들릴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확신을 마치 구원받은 증표나 증거인 것처럼 여기는 일입니다. 확신이 있으면 구원받은 것이고, 확신이 흔들리면 구원받지 못해서일까요?

엄마 아빠가 하교하는 아이에게 전화해서 “너 오늘 집에 들어갈 확신이 있니?“라고 절대 물어보지 않습니다. 아이가 학교 마치고 집에 갈 때, 집에 들어갈 수 있을 지 없을 지를 걱정하며 집에 가지 않습니다. 부모는 그런 게 궁금하지도 않고, 진짜 자녀는 그런 확신에 관심도 없습니다. 어쩌면 과도한 확신이야말로 불신의 또 다른 이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구원은 확신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내 아버지이고, 내가 아버지의 자녀이면 내게 구원의 확신이 있냐 없냐 그것으로부터도 자유롭습니다.

엄마 아빠가 하교하는 아이에게 전화해서 “너 오늘 집에 들어갈 확신이 있니?“라고 절대 물어보지 않습니다. 아이가 학교 마치고 집에 갈 때, 집에 들어갈 수 있을 지 없을 지를 걱정하며 집에 가지 않습니다. 부모는 그런 게 궁금하지도 않고, 진짜 자녀는 그런 확신에 관심도 없습니다. 어쩌면 과도한 확신이야말로 불신의 또 다른 이름인지도 모르겠습니다.(본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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