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끝을 마음에 두는 지혜
요한복음 12장
골프나 테니스, 탁구 같은 라켓 운동에서 ‘스윙’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세계적 수준의 선수라도 스윙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백스윙의 크기, 임팩트 때 라켓의 각도, 임팩트 후의 팔로우 스루, 피니시 동작 등 미세한 디테일까지 신경을 씁니다. 자신만의 일관된 스윙 메커니즘을 유지하는 것은 경기력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스윙에서 참 묘한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팔로우 스루(Follow Through)와 피니시(Finish)입니다. 팔로우 스루와 피니시는 임팩트 후에 이루어지는 동작입니다. 공이 이미 라켓을 떠난 상태이기 때문에 팔로우 스루와 피니시는 물리적으로 임팩트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습니다. 공을 잘 맞추기만 한다면 그 이후에 피니시를 어떻게 하든 사실 별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선수들은 그토록 팔로우 스루와 피니시에 신경을 쓰는 것일까요?
피니시를 의식하지 않고 바른 스윙, 정확한 임팩트를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물리적 시간 순서로는 피니시가 제일 마지막이지만, 스윙의 모든 순간이 피니시의 영향력 아래에 있습니다. 피니시는 단순히 끝이 아니라 시작과 과정 속에 중첩되어 있는 것입니다. 초보와 고수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초보는 시작으로부터 시작하지만, 고수는 끝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삶도 그런 것 같습니다. 피니시를 생각하고 사는 삶과, 피니시를 생각하지 못하고 사는 삶의 궤적이 같을 수 있을까요? 임팩트도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요 12:33)
예수님은 늘 끝을 의식하며 사셨습니다. 제자들에게 당신의 끝이 어떠할지 자주 언급하셨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십자가 위에서 완벽한 피니시를 보여주셨습니다.
성경은 끝을 가리키는 책입니다. 역사의 궁극적인 종말이 도래할 것을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끝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며 살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우주적인 종말이든 개인적인 종말이든 피니시를 의식하며 사는 인생이 지혜롭다는 것입니다.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전 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