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인생이 막막할 때, 말씀 하나 붙들고 가라”
요한복음 9장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요 9:7)
시각장애인이 실로암 연못까지 가는 데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요? 그는 앞이 보이지 않는데 가야 했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알아서 실로암 연못가를 찾아가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약간의 빛이라도 볼 수 있게 만들어 주고 가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깜깜한데 발을 내디뎌야 했습니다.
그가 한 번도 넘어지지 않았을까요? 아무데도 부딪히지 않았을까요? 방향을 잃은 적이 없었을까요? 아닙니다. 넘어지고 부딪히고 방향을 잃어도 그는 갔습니다. 넘어질 때마다 일어섰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가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그에게는 유일한 방향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그에게는 소망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몫으로 남겨두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 몫을 감당하는 것이 버거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감당하지 못할 시험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시각장애인에게 가장 어려운 일을 시키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특정 장소를 찾아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굳이 그 힘든 일을 시키셔야 했을까요? 예수님은 그의 눈을 그 자리에서 뜨게 해주실 능력을 가지신 분입니다. 그런데 왜 그에게 실로암 연못까지 가야 하는 숙제를 내주신 것일까요?
그가 앞으로 눈을 뜨고 살아가야 할 인생길이 어떠할 것이라는 레슨입니다. 눈을 뜨고 살아도 막막하고 캄캄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게 우리의 인생입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지만 앞으로 한 발을 딛어야 하는 게 우리의 인생입니다.
그는 자기 인생이 다시 캄캄해질 때마다 생각나지 않았을까요? ‘그때도 그랬지. 아무것도 안 보였는데 예수님 말씀 붙들고 걸음걸음을 옮겼었지. 넘어졌는데 다시 일어섰지.’
우리는 자주 기도합니다. “주님, 길을 보여주십시오. 방향을 알려주십시오.” 그러나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안 보여도 가거라.”
인생이 막막할 때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일단 살고 보는 것입니다. 일단 가고 보는 것입니다. 보고 가야 할 때가 있지만, 가고 봐야 할 때가 있습니다. 보고 살아야 할 때가 있지만, 살고 봐야 할 때도 있습니다. 살면 보이는 길이 있습니다. 가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말씀 하나 붙들고 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