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나라가 사분오열 되는 이유

창세기 10장

“이들로부터 여러 나라 백성으로 나뉘어서 각기 언어와 종족과 나라대로 바닷가의 땅에 머물렀더라”(창 10:5)

한국인은 한국말을 합니다. 그런데 한국말을 한다고 모두가 같은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같은 국어를 사용하더라도, 자기 말만 한다면 소통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기호학적 언어 체계는 소통에 필요한 최소한의 수단일 뿐, 소통의 본질은 그 너머에 있습니다.

나라가 사분오열 되는 이유는 각자가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자기 말만 하기 때문입니다. 부부가 다투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말만 하니까 싸우는 것 아니겠습니까? 상대의 언어를 배우고 이해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상대의 언어를 구사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하나 됨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 부부 관계입니다.

창세기 10장과 11장은 이러한 소통의 문제를 중심에 둡니다. 10장에는 민족이 언어와 종족, 나라로 나뉜 역사가 기록되어 있고, 11장은 그 중심에 있었던 바벨탑 사건을 설명합니다. 바벨탑 이야기는 단지 언어의 혼란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기중심성으로 인해 소통이 단절된 인간의 본질적 문제를 드러냅니다.

바벨탑에서 언어가 혼잡해진 것은 표면적으로는 기호학적 체계의 혼란을 의미하지만, 그 근본적인 원인은 자기중심성에 있습니다. 자기 입장에서 말하고, 자기 멋대로 이해하며, 자기 유리한 대로 해석하면 아무리 같은 단어, 동일한 표현을 사용하더라도 소통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면서 서로 자기 말만 하게 된 존재, 이것이 바벨탑 사건이 보여주는 인간의 실존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언어를 가르쳐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자기중심적 언어를 구사하는 인간에게 자기 부인의 언어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사랑은 그분이 가르쳐 주신 가장 아름다운 언어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성령께서 처음 이 땅에 임하신 날, 사람들의 언어가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공동체가 탄생했습니다. 우리는 그 공동체를 교회라고 부릅니다.

교회는 언어를 배우는 곳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자기 부인의 언어 말입니다. 그것은 말과 혀로는 구사하기가 어렵습니다. 행함과 진실함으로 구사해야 하는 바디 랭귀지(body language)입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1-32)

나라가 사분오열 되는 이유는 각자가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자기 말만 하기 때문입니다. 부부가 다투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말만 하니까 싸우는 것 아니겠습니까? 상대의 언어를 배우고 이해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상대의 언어를 구사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하나 됨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 부부 관계입니다. 그림은 바벨탑 상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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