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숫자와 수량으로 환원할 수 없는 가치
요한계시록 21장
“성령이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계 21:10)
계시록 끝부분에 등장하는 새 예루살렘 성의 크기는 길이와 너비가 각각 12,000 스타디온에 달합니다. 면적을 현대의 단위로 환산하면 500만 제곱킬로미터가 넘습니다. 어마어마한 규모입니다. 그런데 계시록은 예루살렘 성을 크다고 하지 않습니다. 대신, ‘거룩하다’라고 말합니다. 반면에 바벨론을 수식하는 단어는 ‘크다’입니다. 계시록에서 바벨론이 ‘큰 성’으로 계속 언급되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대형화, 대량화, 대중화는 세상의 속성입니다. 세상은 크기에 매혹됩니다. 메가시티, 높은 빌딩, 빅데이터, 거대 자본이 주도하는 트렌드는 이 시대 발전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자본과 산업과 문화의 규모가 커질수록 인간은 점점 더 작은 톱니바퀴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대량 생산과 대중 문화의 발달 속에 인간이 ‘부품화’되고, 인간다움이 말살되는 현상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더 많은 것을 만들고 소비하는 가운데,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거룩함이 아닐까요?
바벨론은 그런 세상의 초상입니다. 계시록이 말하는 ‘큰 성 바벨론’은 단순히 거대하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인류가 바벨탑 재건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바벨탑에서 멈추지 않고 결국 ‘큰 성 바벨론’을 완공하고 만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큰 성 바벨론’과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대조합니다. 큰 성 바벨론은 땅에서 하늘을 향해 쌓아 올린 것이지만,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하늘로부터 땅으로 내려왔습니다. 거룩한 것을 추구하는 길은 대개 세상의 흐름과 방향이 정반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려오셨습니다. 크리스마스는 가장 낮은 곳에 임하신 예수님을 묵상하는 시간입니다. 세상은 큰 성 바벨론의 방식으로 크리스마스를 즐기겠지만,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백성들은 달라야 하지 않을까요?
하나님 나라는 숫자와 수량으로 환원할 수 없는 가치입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 잃은 드라크마 한 개, 돌아온 작은 아들, 깨어진 향유 옥합, 과부의 두 렙돈, 아기로 오신 메시아 등의 이야기 속에서 하나님의 계산법을 잠잠히 묵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