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믿음의 본질
창세기 15장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 15:6)
이 구절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믿음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단순히 아브라함 개인의 신앙 고백에 국한되지 않고, 구속사 전반에 걸쳐 반복되는 핵심 주제를 담고 있기에 ‘믿음의 테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테마는 마치 연주곡의 주제 선율처럼, 성경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며 강조됩니다.
로마서 4장에서 바울은 이 구절을 인용하여 칭의의 원리를 설명합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롬 4:2-3)
바울은 아브라함이 의롭다 여김을 받은 근거가 할례라는 행위가 아니라 믿음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아브라함은 할례를 받기 전에 이미 하나님께 인정받았습니다. 즉, 그는 율법적 행위와 상관없이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모든 인간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칭함을 받을 수 있다는 진리가 아브라함 때부터 이미 계시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 부를까요? 그는 최초로 믿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아담, 노아, 에녹 모두 그보다 앞선 믿음의 선조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믿음의 계보에 있어 마치 시조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할례라는 행위에 앞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순서를 따져서 믿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의 입장에서 보면 어쩌다 보니 할례받기 전에 먼저 믿게 되었을 뿐입니다. 따라서 이 믿음조차 아브라함의 계산이나 의도가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은 지 15년 후, 99세의 나이에 할례를 받습니다. 이 할례는 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장면과도 연결됩니다. 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행위는 궁극적인 할례를 상징합니다. 살붙이에게 칼을 겨누는 것은 생식기에 칼을 대는 할례 의식의 완성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하나님은 전자의 할례는 허락하셨지만, 후자의 할례는 불허하셨습니다. ‘율법적 행위’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던 아브라함을 멈추어 세우시고, 여호와 이레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할례는 영원히 미완성인 채로 남게 되었습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은혜 외에는 의지할 것이 없는 인생이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