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헌법학자 이호선 국민대 법대학장 헌법재판관들에 ‘당부 편지’
지금 대한민국의 여론은 둘로 나뉘어 있습니다. 어느 한쪽에 서서 내지르는 함성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식의 정확과 균형입니다. 이에 <아시아엔>은 헌법학자인 이호선 국민대 법과대학장이 2024년 12월 31일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직무대행·김복형·정정미·김형두·정형식 재판관 등 헌법재판관 6명에게 보낸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관련 당부의 말씀’ 제목의 공개 내용증명을 공유합니다. 당시는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겸 경제부총리가 정계선·조한창 등 헌법재판관 2명을 임명하기 전이었습니다. 이 글은 이호선 교수의 개인블로그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
2024년 마지막 날 인사드립니다.
저는 국민대학교 법과대학장으로 재직 중인 이호선 교수입니다. 제31회 사법시험에 합격, 사법연수원 21기로 수료하였으며, 한국헌법학회 부회장을 지낸 바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처해 있는 이 미증유의 현실 앞에서 누구보다도 고민이 깊은 분들이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인 줄로 압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1987년 지금의 헌법이 만들어질 때 대학원 1학년생으로 개헌작업에 참여하셨던 교수님을 도와 잔심부름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당초의 개헌안에 위헌심판권한을 미국처럼 대법원에 두려고 하였지만, 정치적 분쟁에 휘말리기 싫다는 이유로 강력하게 반대하는 법원으로 인해 급히 독일식의 헌법재판소를 별도로 만들게 된 경위를 조금은 곁에서 보고 들은 바 있습니다.
어찌 보면 당시 법원이 그렇게 우려했던 정치적 분쟁이 37년 만에 터져나온 것이 지금의 사태가 아닌가 싶습니다.
삼권분립을 통한 권력간의 상호견제와 균형을 유지하고 이를 지킬 수 있는 제도적 안전장치를 만들어 두는데 소홀했던 헌법의 구조적 한계와 취약점이 그대로 드러났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간 우리는 비상구없는 헌법 체제라는 건물 속에서 용케도 잘 지내 온 셈입니다. 그러나 여기까지입니다.
혼돈의 시기, 광풍의 계절, 이 어둠 속에서 “이게 나라인가?”라는 근본적인 회의를 던지는 국민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파벌 정치, 사당 정치, 팬덤 정치의 과잉은 국민들 사이에 분열과 증오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이런 속에서 그나마 나라 꼴을 유지하고, 장래에도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권력 간의 건전한 견제와 균형이 가능할 것이라는 희망은 헌법재판관들이 어떻게 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선출받지 않은 권력, 그러나 아홉 명으로 나라의 기본질서를 가닥 잡을 수 있는 권한을 준 것은 그 한 개인에게 법조 경력의 화려한 마침표, 가문의 영광을 주기 위함이 아니라, 바로 ‘이와 같은 때를 위한 예비함’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헌법과 헌법의 정신이 그렇게 명하고 있고, 국민이 그렇게 믿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지금 저간의 언론에 나오는 내용을 보면 솔직히 과연 헌법재판소가 헌법 수호기관답게 헌법의 참 본질과 정신, 그 원리로 돌아가 대한민국의 긴 미래를 위해 공정한 심판을 내릴 것인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이 서신을 여섯 분의 헌법재판관들에게 각각 보내드리는 것도 이러한 의구심이 현실화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만일 현실화될 경우 헌법재판관들이 지켜야 할 기본적인 상식과 책무, 나아가 법적 책임에 대한 분명한 사전경고가 있었다는 점, 그럼에도 이를 무시하고 헌법과 헌법 정신에 반하며, 국민이 승복하지 못하고, 미래가 질식당하는 결론을 내린 것에 대한 책임을 묻는 사료 (史料)로 쓰기 위함입니다. 적어도 이 내용증명이 있는 한 재판관께서는 현실의 법정과 역사의 법정 앞에서 무지의 변명을 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시대의 헌법재판관들이 진정한 공화정 정신이 바탕이 된 민주주의 (民主主義)를 지켰는지, 아니면 여론몰이 속에서 민두주의 (民頭主義)에 굴복했는지, 삼권분립의 균형을 통한 데모크라시 (Democracy)를 방어하는 대신 클렙토크라시 (Kleptocracy, 도둑정치)의 문을 열어주었는지 판단이 가능한 몇 가지 가늠자가 있습니다.
결론이야 어떻게 나오건 간에 아래와 같은 쟁점이 이번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의 심리 과정과 결정문에서 제대로, 그리고 충분히 다뤄지지 않으면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헌법의 최후의 수호자로서 저항권을 갖는 국민이 승복할 수 없게 되고, 그 책임은 전적으로 헌법재판관들에게 있게 됨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첫째, 대통령 권한대행 한덕수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소추의결의 유ㆍ무효 및 의결에 대한 효력정지가처분 인용 여부를 신속하게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헌재가 진정으로 조속한 국정 안정을 바라고, 공정하고 책임있는 헌법수호기관이라면 이 문제를 하루라도 미루어 두면 안 됩니다.
권한대행의 권한대행인 최상목 부총리의 헌법상 지위를 둘러싸고 국회재적의원 151명 이상 찬성이면 족한가, 아니면 최소한 200명 이상이어야 하는가 논란이 있다는 것은 현재 대한민국 행정부 수반 대행의 지위가 매우 유동적이고 불확실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에 헌재의 침묵이 길어진다는 것은 헌법 수호를 통해 달성하려는 일차적 목적인 국정 안정을 헌재 스스로 외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아가 민주당과 민주당 다선의원 출신 우원식 국회의장의 151석 이상 찬성이면 족하다는 일방적 주장과 무권해석 (無權解釋)을 헌재가 사후승인하고, 보증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헌재 공보관이 대 언론 브리핑을 통해 헌재 결정 전까지는 최상목 대행체제가 유효하다고 한 것은 대단히 부적절합니다. 내부적으로 헌법재판관들 사이에 의견조율없이 이런 말이 나왔다면, 해당 헌재 공보관에게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만일 내부적으로 의견조율이 되었다면 공식적으로 효력정지가처분 인용 여부 결정을 미뤄둘 이유가 없습니다. 속된 말로 공보관 입을 통해 ‘여론 간보기’를 한 것이라면 지금 헌재의 실상을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앞으로 헌재의 처신을 예고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공보관을 엄중히 문책하거나 공보관도 억울한 측면이 있다면 당장 얕은 정치적 수를 버리고 정국 불안정을 부추기고 방조하는 행태를 중지해야 할 것입니다. 혹여라도 사무처에 책임을 돌릴 생각은 마시기 바랍니다.
민주당이 최 권한대행은 물론 그 이후에도 탄핵을 공언하면서 국무회의를 마비시키겠다는 의사를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마당에 151석 이상이면 언제라도 그것이 가능하도록 문을 열어둔다는 것은 헌재를 민주당의 법률 부속기관의 역할로 격하시키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고, 국민의 엄중한 심판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둘째, 지금 헌재의 태도에서 보여지고 있는 우려스러운 점 중의 하나는 탄핵 인용 여부를 결정함에 있어서 헌법상의 절차적 규정, 계엄법과 같은 하위 단행법률 요건 위반만을 들어 탄핵을 결정하고, 이 사유만으로 탄핵이 충분하니 나머지는 살필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사건을 뗄”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재판관께서 스스로 과연 이런 식의 결정이 된다면 용납될 수 있을지 심각하게 고려해 보기 바랍니다. 단심제인 현행 헌법재판 하에서 원님 재판이라도 재판은 재판이기에 그 결정이 일단 효력은 갖겠지만, 과연 정치적, 법적으로 지속 가능할지 깊이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헌법재판소는 개개의 단편적 규정과 법률 문구가 아닌 헌법 정신과 헌법의 전 체계 (the Laws)를 염두에 두고, 여기에 맞도록 국가의 중차대한 법리적 갈피를 잡아 주어야 합니다.
사건을 빨리 ‘떼어 버리고자’ 숲 (the Laws)을 외면한채 나무 (laws)만 보는 졸속 결정을 한다면 설령 전원합의 형식으로 공동운명체를 결성하여 책임을 희석해보고자 해도 쉽지 않은 도피가 될 것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대한민국은 언제부터인지 과거사에 대하여 소급 특별법으로 책임을 묻는 것이 아주 흔한 나라가 되어 버렸습니다. 물론 이런 법문화 형성에는 그간 헌법재판소의 공이 컸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분명하게 말씀드립니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발동했던 사유로 들었던 국회의 입법권 남용, 탄핵권 남발, 예산 삭감으로 인한 행정부 기능 마비 현상과 선거시스템에의 부정 행위 개입 가능성에 대하여 사실조사와 헌재 판단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선입선출의 원칙에 따라 헌재에 이미 계류 중인 방통위원장, 검사들, 그리고 2024. 12. 3. 비상계엄 선포 이전에 이미 야당에 의해 탄핵소추가 예고되어 있었고 실제로 탄핵소추된 감사원장과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에 대한 탄핵 인용 여부를 대통령 탄핵 결정 이전에 먼저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건들과 대통령의 비상계엄 발동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검사들과 감사원장 등에 대한 탄핵소추가 이유 있다면 그것부터 받아들여 검사들과 감사원장을 파면하고, 대통령의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만일 일단 대통령은 먼저 파면하고, 이들에 대한 탄핵소추를 기각하면 민주당의 탄핵권 남용, 입법부에 의한 행정부 마비 시도 행태에 대하여 헌재가 면죄부를 주는 셈이 됩니다. 그리고 이런 자가당착적 모순과 헌재의 기회주의적 행태는 국민의 승복을 가져오지 못해 사회를 더 큰 혼란에 빠뜨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에 따른 책임은 오로지 시대적 소명을 저버리고 반쪽짜리 입맛에 맞는 ‘발췌심판’을 한 헌법재판관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결론이 어떠하건 최소한 그 심리의 대상을 헌재가 일방적으로 입맛에 맞게 자르고, 건너뛰면 안 될 것입니다. 절차적 정당성, 절차에 대한 승복이 있어야 내용과 결과에 대한 승복도 따라오게 된다는 기본적 법적 정의의 관념을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선거시스템과 관련하여서는 부정선거의 유무가 아닌, 부정이 개입할 수 있는 시스템적 약점이 있는지, 이 약점을 선관위가 얼마나 시정하기 위한 점을 객관적으로 보여주었는지 파악해야 할 것입니다. 교통사고의 확률이 아주 낮은 평생 모범 운전자라도 자동차보험을 드는 것은 혹시라도 모를 그 낮은 확률에 따른 사고 발생에 대비해서입니다. 민주주의 정당성의 근간인 선거시스템에 맹점이 있다면 그 위험성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는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단순하게 부정선거가 있다, 없다의 논란으로 치환한 다음, 부정선거의 증거가 없으니 판단할 필요가 없다고 소위 쟁점을 ‘걷어차버리면’ 사안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고, 재판관으로서 직무를 유기하는 것입니다.
코를 훌쩍이며 요리하는 주방장이 있다고 칩시다. 콧물이 떨어지는 것을 봤다는 사람도 있고, 보지는 못했으나 찜찜해서 못 먹겠다는 손님도 있는데도 주인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음식을 권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부정선거가 있다고 단정하지 않는 사람들 조차도 이런 의문을 제기합니다. 예컨대, 가장 논란이 많은 관외사전투표의 경우 중앙선관위나 우체국 모두 행정안전부의 주민등록시스템을 바탕으로 연동되어 있는데, 관외사전투표지를 제3의 장소에서 출력하여 우체국 전산망을 이용하여 정상적으로 사전투표소에서 이송되어 접수된 것으로 가장하고, 다른 한편으로 외부 해킹으로 선거인 명부를 조작할 가능성은 전혀 없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이런 논란은 관련법에 명시된 대로 사전투표관리관이 개인 도장을 찍도록 하면 상당 부분 불식될 수 있음에도, 중앙선관위가 한사코 이를 거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지 출력을 고집함으로써 사실상 사전투표관리관의 직접 확인 여부가 불가능하게 하고, 어디에서건 투표용지 인쇄가 가능하도록 길을 기술적으로 열어두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선관위의 막무가내 이미지 입력 고집이 실수를 가장하여 열쇠를 반복적으로 떨어뜨리는 자, 그 열쇠를 주워 문을 여는 자, 이렇게 역할 분담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으로 이어지는 것은 선관위 스스로 초래한 것입니다
여러 가능성 중 하나의 사례를 들었습니다만, 최소한 이런 류의 의구심이 합리적이라면 헌재는 이번 탄핵심판 과정에서 피청구인 대통령이 비상계엄의 큰 동기 중의 하나로 꼽고 있는 선거시스템의 문제와 선관위의 자기시정에 대한 기대가능성 여부 등을 충분히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 현재 탄핵심판에 회부되어 있는 피청구인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수사기관의 영장청구가 있고, 실제로 법원이 영장을 발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리건대 본인은 윤석열 대통령과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고 변호인단의 일원도 아닙니다.
그러나 법조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 시대에 법학 교수로 불리며, “법으로 밥 벌어먹고 있는 사람”으로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하겠기에 말씀드립니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헌정사상 처음으로 청구되고, 발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영장에 대하여 이 문제가 갖는 헌정적 의미를 생각하여 반드시 헌법재판소의 신중하고도 무게있는 합리적 판단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아마도 영장이 발부되면 변호인단은 이 영장 발부행위 자체가 대통령의 헌법상 배타적 권한행사에 해당하여 사법심사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이유 등으로 영장의 효력을 다투는 효력정지가처분, 그리고 본안으로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이럴 경우 귀 재판관을 비롯한 헌재 재판관들은 이 문제에 관하여 조속한 결정을 내려야 할 것입니다.
비상계엄의 발동은 헌법상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까닭에 사법심사의 대상에서 배제되고, 가사 문제가 되더라도 직권남용 해당 여부가 될터인데, 권력의 정점에서 국가통치권을 행사하는 대통령에게서 내란죄의 양대 구성요건 중 하나인 주관적 요건인 ‘목적’을 찾기란 어렵습니다.
더구나 피청구인 대통령이 입법부로부터 야기된 행정부 마비, 외부적 감시와 내부적 자기시정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선거시스템의 취약점 등을 바로 잡기 위해 헌법수호책임을 명분으로 삼은 이 사건에서, ‘국헌문란의 목적’이 있다고 수사기관이 몰아 부친다고 그것이 사실로 확정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목적’은 지금 계류 중인 탄핵심판절차를 통해 우선 헌법재판소에서 가려져야 하는 것입니다. 대통령의 고유권한에 속하는 비상계엄 발동의 위헌, 위법성이 헌재에서 먼저 가려지기 전에 수사기관에서 목적범인 내란죄를 전제하고 그 목적이 위헌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헌법과 법률의 법 적용의 체계성에 부합하지 않고 헌재가 판단해야 할 것을 수사기관이 나서서 해결사 노릇을 하겠다는 것이어서 위헌적이고, 오히려 수사기관의 위법 문제도 생길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이 과정에서 취득한 증거의 증거능력 문제까지 포함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에 대한 영장이 집행되어 영어의 몸이 된 상태에서 탄핵 심판을 받게 놔둔다면 그 방어권을 심각히 침해ㆍ제한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헌재 심리의 충실성ㆍ공정성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고, 그런 과정을 거쳐 결론을 낸들 과연 그 결정이 헌재의 결정이라고 해서 흔쾌히 국민이 받아들이고 사회적 갈등이 치유되고 통합될 것인지, 시국이 안정될 것인지 상식적으로 판단해 보기 바랍니다.
이렇게 된다면 무죄추정의 원칙은 물론 대통령의 헌법상 고유권한 행사라는 헌법적 논쟁을 헌재가 무시하고, 파면이라는 답을 정해 놓고 일부 정치권과 쉽게 들끓는 여론과 합세하여 절차적 규정을 담고 있는 계엄법이라는 단행법률 (law)에만 기대어 사법 린치를 가하여, 결국 윤석열 대통령 개인이 아니라, 이 나라 헌법 질서 체계 전반 (the Laws)을 중태에 빠뜨리고, 정작 헌재 자신도 상위의 헌법이 요구하는 절차적 정당성을 저버렸다는 비난과 책임을 면키 어려울 것입니다.
지금의 이 사태와 관련하여 금년 2024. 7. 1. 미 연방대법원에서 트럼프가 재선 과정에서 벌였던 선거사기 주장 관련 기소되었던 사건에서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대통령의 재임 중 권한행사와 관련하여 내린 판결문 일부를 소개합니다.
헌법재판연구관들의 조력도 많이 받고 있으니 이미 다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그래도 다시 한번 주요 판결 요지를 말씀드립니다.
SUPREME COURT OF THE UNITED STATES
No. 23–939
DONALD J. TRUMP, PETITIONER v. UNITED STATES
ON WRIT OF CERTIORARI TO THE UNITED STATES COURT OF APPEALS FOR THE DISTRICT OF COLUMBIA CIRCUIT
핵심은 대통령의 권한 행사 중 공식 행위, 특히 헌법이나 헌법원리에 근거한 권한 행사에 대하여는 형사소추로부터 절대적 면책이 허용되어야 하고, 이는 사법심사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취한 행위에 대하여 공소제기가 가능한지를 보기 위해서는 헌법상 대통령의 권한을 우선 파악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개별적 법률 (laws)을 넘어 헌법과 그 정신을 포함한 법체제 (the Laws) 전반을 생각해야 하는 까닭에, 대통령의 권한이 정당한가와 권한 행사를 통해 하려 했던 동인 (動因)을 혼동해서는 안 되고, 또한 대통령의 권한은 하위 법률을 위반했다는 것만으로 바로 권한 밖의 행위로 간주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법부 (우리의 경우 헌재)는 법의 권력 구조에 미칠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영향을 보아야 하고, 대통령이 권한을 행사하게 된 동기는 원천적으로 사법심사에서 배제된다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행동할 수 있는 권한은 필연적으로 “의회의 행위나 헌법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다(stem[s] either from an act of Congress or from the Constitution itself.).” 특히 헌법자체에서 나오는 경우 대통령의 권한은 종종 “최종적이고 논쟁의 여지가 없고, 다른 논의나 절차에 대한 배제적 성격 (conclusive and preclusive)”을 갖는다.
종국적이며 배제적인 권한을 행사함에 있어 대통령은 “의회의 명시적 또는 묵시적 의지와 양립할 수 없는 (incompatible with the expressed or implied will of Congress)” 조치도 취할 수 있다. 대통령의 배타적 헌법상의 권한 (The exclusive constitutional authority)은 “그에 관한 의회의 행위를 제한한다 (disabl[es] the Congress from acting upon the subject).” 그리고 법원은 헌법이 대통령에게 배타적으로 부여한 권한에 따라 대통령이 행동할 때 “대통령의 재량권에 대한 사법심사를 할 권한이 없다 (no power to control [the President’s] discretion).”
위 판결문 7면
대통령의 행위가 그의 “종국적이면서 배제적인” 헌법상 권한 내에서 이루어진 경우 이에 대하여 의회는 법률로 막을 수 없고, 법원은 사법심사를 할 수 없다. 따라서 의회의 법률은 그것이 대통령을 특정하여 제정되어 있는 것이건, 아니면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법률이건 이것으로 대통령이 그의 배타적 헌법적 권한 내에서 행한 행위를 범죄화할 수는 없다. 법원 역시 그러한 대통령의 행위에 대한 수사에 따라 기소된 형사 사건에 관하여는 심리할 수 없는 것이고, 이에 따라 이 법원은 대통령이 헌법상 권한의 배타적인 영역 내에서 행한 행위에 대해 형사 소추로부터 절대적으로 면제된다고 판시하는 바이다. 위 판결문 8~9면
이 사건은 전례 없는 성격을 지니고 있고, 매우 중요한 헌법적 질문들을 제기함에도 불구하고, 하급심들은 신속함에 매몰되어 판결을 내렸다. 하급심 법원들은 대통령이 면책을 누리는 유형은 없다고 이를 배척하였기 때문에 공소장에 적시된 사실 중 공식적인 것과 비공식적인 것을 구분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분석을 하지 않았다. 위 판결문 16면
이 법원이 인정하고 있는 면책은 대통령의 공식 책임의 “외곽 경계 (outer perimeter)”까지 확장되며, 이는 그 행위가 “명백하게 또는 뚜렷하게 그의 권한을 벗어나지 않는 한 (not manifestly or palpably beyond [his] authority)” 적용되는 것이다. 위 판결문 17면
공식적인 행위와 비공식적인 행위를 구분함에 있어 법원은 대통령의 동기 (President’s motives)에 대해 조사할 수는 없다. 그러한 조사는 부적절한 목적으로 이뤄졌다는 단순한 주장 (mere allegation of improper purpose)만으로도 가장 명백한 공식 행위조차 사법적 검토 대상이 되게 할 위험이 있으며, 이는 면책을 통해 보호하려는 헌법 제2조의 공익에 대한 침해를 가져올 수 있다. 실제로, “대통령이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공식 행위를 좌우하는 동기가 언제든지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느낀다면, 이는 “정부에 위임된 공적 직무의 적절하고 효과적인 수행에 심각한 장애를 초래할 것”이다.
또한, 법원은 어떤 행위가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하위 법률을 위반했다고 주장된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비공식적인 행위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대통령은 “어떤 행위가 불법이었다는 모든 주장”에 대해 재판을 받아야 하고, 이것은 당초 면책권을 통해 달성하려는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위 판결문 18~19면
면책의 본질은 법정에서 “이를 누리는 자가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답변할 의무를 지지 않아도 되는 권리 (its possessor’s entitlement not to have to answer for his conduct)”에 있는 바, 그러므로 대통령은 기소에서 면책되는 행위에 기반하여 기소될 수 없다. 위 판결문 30면
법적 논리가 빈약한 반대의견들은 법원이 대통령을 “법 위에 (above the law)” 있도록 만들었다고 반복적으로 말만 바꿔가면서 감정에 호소하는 자극적인 주장을 한다. 위에서 말한 바 그 “수사적으로 섬뜩하다 (rhetorically chilling)”는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 (wholly unjustified).”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대통령도 비공식적 지위에서 기소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그 누구와도 달리, 대통령은 정부의 한 부서이며, 헌법은 대통령에게 광범위한 권한과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고려하고, 대통령이 헌법 제정자들이 예상한 대로 강력하게 그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은 그를 법 위에 두는 것이 아니라, 그 법이 근거를 두고 있는 헌법의 기본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면책이 없다면,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이와 같은 유형의 기소는 금세 일상화될 수 있고, 이러한 당파적 갈등의 순환으로 인해 대통령직과 정부가 약화되는 결과는 바로 헌법 제정자들이 피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런 위험성에는 눈 감은 채 소수의견은 권력분립체계의 유지를 검찰의 선의에 맡기는 것에 안주하고 있는 것이다. 위 판결문 39~40면
이 사건은 전직 대통령이 대통령 재임 중 수행한 공식 행위에 대해 기소되는 시점이 언제인가라는 지속이고도 중요한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미합중국은 그 전에는 이 질문에 답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 질문을 다룸에 있어서 정치권이나 일반 대중과 달리 미합중국 대법원이 현상적인 급박한 상황에만 매몰되어 그것만 보거나 그것만 주된 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다. 이와 같은 사건에 있어서 “일시적인 결과 (transient results)”에만 초점을 맞추게 되면 권력 분립과 미합중국 공화국의 미래에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위 판결문 41면
그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는 “파당의 모략에 견디기에 너무 무력한 정부 (too feeble to withstand the enterprises of faction)”는 “복수심으로 잔뜩 날을 세운 한 파당이 다른 파당을 번갈아 지배하는 (alternate domination of one faction over another, sharpened by the spirit of revenge)”, “가공할 전제주의 (frightful despotism)”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악순환을 피하는 길은 지배권력이 “적절히 분배되고 조정된 상태 (properly distributed and adjusted)”를 유지토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이 사건에 이 법원의 결론을 이끌어 간 것은 이러한 과거, 현재, 미래를 잇는 지속적 원칙들이다. 대통령은 비공식적 행위에 대하여는 면책을 누릴 수 없고, 대통령이 하는 모든 일이 다 공식적인 것은 아니다. 대통령은 법 위에 있지 않다. 그러나 의회(및 의회가 제정한 법률)가 헌법에 따라 행정부의 책임을 수행하는 대통령의 행위를 형사사건으로 범죄화할 수는 없다.
헌법 제정자들이 설계한 권력 분립 체계는 항상 활기차고 독립적인 행정부를 요구해 왔다. 따라서 대통령은 자신의 핵심적인 헌법적 권한을 행사한 것으로 인해 기소될 수 없으며, 대통령은 그의 모든 공식행위에 대하여는 최소한 형사소추로부터의 추정적 면책을 누릴 권리가 있는 바, 이러한 면책은 정파, 정책, 정당에 관계없이 모든 대통령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다.
이에 법원은 D.C. 순회 항소법원의 판결을 취소하고 당원에서 설시한 견해에 따라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하기 위해 원심을 파기하고 환송한다.
위 판결문 42~43면
혹자는 만약 이번 사건에서 헌재가 탄핵을 기각한다면 대통령이 ‘장난’처럼 비상계엄을 발동해도 된다는 나쁜 선례를 남길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명백히 전후 사실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본인은 마침 이번 계엄이 있기 직전인 2024. 12. 2.부터 12. 3. 오전까지 전국의 법학교수들을 상대로 한 주, 객관식 온라인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결과를 보면 민주당의 예산삭감, 잇다른 탄핵 등이 입법권의 남용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압도적이었습니다 (아래 관련기사. 월간조선 2024. 12. 3.)
지난 12월 2일부터 12월 3일까지 국민법문화의식연구소 (이호선 소장, 국민대 법대 학장)는 전국의 법학교수 1,200명에게 온라인 설문을 통해 입법ㆍ행정ㆍ사법 각 권력기관의 권한행사와 대치에 대해 법학자들의 평가를 구했다.
감사원장 탄핵에 대한 의견을 묻는 문항에는 ‘야당의 탄핵권 남용이다’는 답변이 79%, ‘탄핵은 정당하다’는 답변이 13%였다. ‘모르겠다’는 답변은 6%로 드러났다. ‘무응답’은 2%였다. 이어 ‘야당의 검사 탄핵 정당성’을 묻는 질문에는 ‘개별수사에 대한 입법권 간섭으로 탄핵권 남용’이라는 답변이 79%로 가장 많았다. ‘탄핵사유가 명확해 탄핵은 정당하다.’는 응답도 13%를 기록했다, ‘잘 모르겠다’는 6%, ‘무응답’은 2% 였다.
이어 ‘야당이 검찰 지휘라인에 대한 탄핵을 주도하는 것’에 대해서는 ‘검찰 전반의 위축과 수사지연을 가져오는 행위로 탄핵권 남용’이라는 답변이 75%로 가장 많았다. 반면 ‘수사지휘에 대한 책임자로 탄핵은 정당하다’는 답변은 19% 였다. ‘잘 모르겠다’는 답변과 ‘무응답’은 각각 2%, 4%를 기록했다. 또 야당 주도로 ‘방통위 위원장·부위원장 급여를 삭감하는 것’에 대한 응답에는 ‘독립기관성을 해치는 행위’라는 입장이 70%, ‘입법부의 정당한 예산권 행사’라는 응답이 25%를 기록했다. ‘잘 모르겠다’ 2%, ‘무응답’은 4%를 기록했다.
지역화폐 등 야당이 독자적으로 예산증액을 시도하는 것에 대해서는 ‘정부의 예산편성권 침해, 국민의 세 부담을 증감시킨다’는 입장이 75%로 가장 많았다. ‘야당도 나름의 정책을 추진할 수 있으므로 증액해 주어야 한다’는 입장은 15%를 기록했다.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6%, 무응답은 4%였다.
https://monthly.chosun.com/client/mdaily/daily_view.asp?idx=20897&Newsnumb=20241220897
비상계엄이 없었다면 국회해산이나 의원소환제와 같은 대칭적 견제 수단이 부재한 상태에서 마음놓고 행정부를 마비시키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던 야당의 행태는 아마도 엄청난 국민의 반감을 샀을 것이고, 헌법 전반을 포함한 전반적인 법체계의 문제점이 공론화되었을 것입니다. 당연히 야당의 행태는 입법권 남용, 나아가 의회독재라는 평가까지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비상계엄이라는 돌발사태로 이제는 야당의 행태보다 비상계엄에 여론의 시선이 몰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헌법재판소라면 한쪽 눈은 그 원인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는 12. 3 이전의 야당의 행태에 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탄핵 인용 여부를 심리ㆍ결정함에 있어서는 양자를 서로 공평하게 재어 본 다음, 심판 결과가 헌정 체계 전반과 우리 사회에, 장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봐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탄핵을 기각하면 계엄이 일상화될 것이라는 시각은 논리적 근거도, 현실에 대한 고민도 없는 과장된 감정적 선동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탄핵을 인용하면 어떤 결과가 올까요. 12. 3. 이전의 야당, 민주당의 모든 행태, 여기에 12. 3 이후에도 계속하여 보여주고 있는 일당독재에 가까운 횡포, 입법부의 옷을 걸치고 벌이는 모든 행태가 면죄부를 받고 정당한 것으로 인식될 것입니다. 이런 행태를 헌재가 공인해줌으로써 초래할 부작용에 대한 깊은 고민이 없다면 헌법 수호 기관의 구성원으로서의 자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행태의 만연, 다시 말해 앞으로도 과반의 의석을 갖고 있는 정당은 무시로 고위공직자들을 탄핵하여 그 직무를 정지시키고, 나아가 행정부를 통째로 마비시킬 수도 있고, 예산을 삭감하여 국가기능을 멈춰 세워도 된다는 관행 하나가 확립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행태가 탄핵소추 기각 등과 같이 잘못되었다는 판정을 받더라도 정작 본인들은 국회의원 소환이나 국회해산 등과 같은 어떠한 제재도 받지 않습니다. 보장된 무책임에, 헌재가 추인한 무한한 입법권 행사, 대통령이 비상계엄에서 언급한 ‘괴물’이 당시에는 성급한 개인적인 판단이었을지 모르나, 미래에 이러한 ‘괴물’이 노골적으로 여의도와 대한민국을 헤집어 놓을 것임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탄핵에 관해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후유증은 남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어떤 후유증이 그나마 상대적으로 덜할 것인가, 이 근본적인 고민을 해야 합니다.
과반의 의석을 갖고 있는 제1당, 그리고 그 1당이 사실상 사당(私黨)처럼 운영된다면, 그 1인의 이익을 위해 온 국가의 정상적 국정운영을 인질로 맡기는 것이 타당한지, 그런 선례를 남기는 것이 귀 재판관에게 주어진 이 시대의 역할인지 진지하게 판단해 주기 바랍니다.
가을 등잔불 아래 책 덮고 살아온 날들을 생각하자니
글줄이나 안다고 하는 사람으로 살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秋鐙揜卷懷千古 (추등엄권회천고) 難作人間識字人 (난작인간식자인)
매천(梅泉) 황현(黃玹)이 남긴 시(詩)의 일부입니다.
부디 법치주의와 자유민주체제의 수호기관으로 명(命)받은 소임을 무겁게 생각하여 대중과 정치에 영합하지 않고 헌법의 대원리와 법체계 전반에 걸친 시각으로 대한민국의 먼 장래까지 내다보는 결정을 내려주길 바랍니다.
짧지 않은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건안하시길 기원합니다.
2024년 12월 31일
이호선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