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석의 新쾌도난마] “경의선‧동해선 남북 연결도로 폭파는 북한의 자충수일 뿐”

합참이 15일 공개한 북한의 동해선과 경의선 남북 연결도로 폭파 모습.

북한이 15일 경의선‧동해선 남북 연결도로를 폭파했다. 이날 정오쯤 경의선 및 동해선 남북 연결도로 군사분계선(MDL) 이북 일부 구간을 폭파한 것이다. 북한의 이 같은 행위는 남북 육로를 단절하고 요새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당연히 이런 북한의 도발은 한국 언론에 의해 집중 보도된다. 신문의 경우 1면 톱을 비롯해 해설이 따라가고, 방송의 경우도 톱에 부속 기사가 몇 개 따라붙는다. 그런데 그거야말로 북한측이 원하는 바다.

사실 양 도로노선이 끊어질 경우, 아쉬운 건 북측이다. 언젠가 남북이 다시 해빙무드로 바뀌었을 때 연결도로 복원 문제가 테이블 위에 올려질 테고, 그렇게 되면 협상 판에서 이니셔티브는 당연히 한국 편에 있다. 그건 상황에 따라 상당히 메가톤급일 수도 또 약간 경량급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여느 때와 같이 이번에도 한국 언론이 집중보도하니 불감청不敢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인 셈이다.

2020년 6월 16일 북한은 판문점선언의 결실인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전격 폭파했다. 2018년 4월 27일 남북 정상이 합의한 ‘판문점선언’에 따라 그해 9월 개성에 문을 연 연락사무소가 개소 1년 9개월 만에 사라진 것이다. 그때 역시 국내 언론은 물론 각국 언론 모두 집중 보도했다. 하늘색 투명 유리로 외관을 장식한 4층짜리 우아한 건물이 폭삭 주저앉는 모습은 그걸 바라보는 남한 당국자와 국민들 가슴에 대못을 박는 광경이었지만, 북한 김정은 일행에겐 엄청난 축제(?)인 셈이었다. 특히 그 건물은 2018년 9월 문을 연 역사적 건물이다. 하지만 통일부가 초기 비용 8600만원만 국회 승인을 받은 뒤 1백배가 넘는 100억원 가까운 비용을 개·보수에 사용해 처음부터 대북 제재 위반 논란이 일었다. 3년간 건설 및 운영비용 등으로 들어간 비용은 총 170억원으로 전액 남한 국민들 호주머니에서 나왔다.

따라서 남북 연결도로 폭파와는 또 다른 의미를 지닌 북한의 역사적 폭거다. 그렇다면 그에 상응하는 조치, 예컨대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등의 치명적 대응을 시발로 단계적 대응에 들어감으로써 북한의 버릇을 고쳐 놨어야 했다. 그러나 남한의 대응은 없었다. 그건 이미 1년 전 예견됐던 일이었다.

2019년 광복절 문재인 대통령의 담화 연설에 대해 북한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대변인 명의 담화를 통해 문재인의 연설을 “삶은 소대가리(the boiled head of a cow)도 앙천대소할 노릇”이라는 망발로 비난하고 나섰다. 이 발언은 그보다 한 달 전 발표된 김여정의 담화에서 합동참모본부를 언급하면서 “처신머리 골라할 줄 모르는 데서는 둘째로 가라면 섭섭해 할 특등 머저리들(They are the idiot and top the world’s list in misbehavior)”이라고 한 표현과 일맥상통했다. 영어를 병기한 이유는 북한이 대남 비난 성명을 낼 때도 일단은 영문서류 형태로 내기 때문이다.

1994년 한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이른바 ‘불바다 사건’이 떠오른다. 그해 3월 19일 판문점에서 열린 제8차 남북 특사교환 실무접촉에서 당시 통일원 송영대 차관과 대좌했던 북한 대표단장 박영수가 회담 중 한 발언이다.

박: 여기서 서울이 멀지 않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은, 불바다가 되고 말아요.
송: 아니 지금…
박: 송 선생도 아마 살아나기 어려울 게요.
송: 아니,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박: 그렇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
송: 아니, 그러면 우리가 가만히 있을 거 같아요?
박: 여기에 대해서⋯ 심사숙고를 해야 된다.
송: 전쟁 선언 하는 겁니까?
박: 그쪽에서 전쟁선언을 했다는 거에요. 말을 거 듣지 않고⋯ 뭐, 졸고 있소?

서울 시내가 판문점에서 50여 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이 발언으로 한반도 전쟁 위기가 고조됐다. 북한의 강력한 도발에는 강력한 대응으로 맞서야 한다. 평범한 진리다. 대신 은근한 공세엔 더 은근한 대응으로 맞장구쳐 줌으로써 상대를 혼란시킬 필요가 있다.

이에 해당하는 사례 하나 소개한다. 평양 출신의 외교천재 이범석이 남북적십자회담 수석대표 시절이었던 1973년 북한 대표단이 서울을 방문했을 때였다. 숙소이자 회담장인 워커힐호텔로 향하는 차속에서 벌어진 이 대표와 북측 대표단간에 오간 동문서답은 지금도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판문점에서부터 워커힐로 향하는 도중, 서울 도심에 가까워질수록 수많은 차량과 생동감 넘치는 현대화의 현장들을 보면서 점차 당황한 모습을 보인 북측 수석대표.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 거리가 텅 비어 있고 내세울 만한 자랑거리도 드문 북한의 실정과는 극명히 대비됐기 때문이다.

서울의 발전상에 심기가 뒤틀린 북측 대표단장은 이 대표에게 “대단하십니다. 남한의 발전상을 보여주려는 뜻은 좋지만, 저토록 많은 차량을 어디서 다 불러 모았습니까?”라고 빈정댔다고 한다. 그러자 이 대표는 즉각 “아무렴요. 무척 힘들었죠. 하지만 저 건물들을 여기로 옮기는 일은 훨씬 더 힘들었죠”라고 응수했다고 한다. 북한의 행태를 보면 이 속담이 생각난다.

“짓는 개는 물지 않는다(Barking dog never bi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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